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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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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과 거짓, 연극과 현실이 뒤섞인 소설이다. '마법'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의 외딴 섬, 프락소스의 별장에는 온갖 이야기들과 신비로운 비밀들이 넘치고, 그것들은 마치 유령처럼 주위를 배회하는 재현극이 되어 마법사의 지휘에 따라 관중을 현혹한다. 그 연극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니콜라스는 추측과 관찰을 통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탐색하며, 이 거대한 연극 속의 배역들과 힘을 합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고자 한다.

 더군다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글은 일종의 추리 소설일지도 모른다. (비록 추리 소설에서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진실 탐색의 낙관성에 동의하는 글은 아니지만.) 글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과 주인공을 작중에서 계속 끌어당기는 추진력이 추리 소설의 그것과 같다. 실제로 나는 <마법사>를 추리 스릴러를 읽듯 읽어나갔다. 소설 내부의 장치들 역시, 일본 서브컬쳐에서 자주 등장하곤 하는 극중극 모티브와 메타적인 아이러니에 익숙하다면 그런 것들을 소비하듯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한 글이다. 상술한 내용을 보고 혹시라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면 아래의 글들은 일단 나중으로 미뤄두는 게 좋으리라 생각한다. 치명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작가가 글을 쓸 때 유도한 재미가 상당히 반감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럼 마저 이야기를 해보자. 제목처럼 <마법사>는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거짓말이다. <마법사>는 물론 환상적인 면모가 상당히 많고 흥미진진한 장르 소설이지만, 판타지만은 아니다. 책을 절반쯤 읽고 나면 독자도 알 수 있지만 제목의 '마법사'는 사실 마법사가 아니고, 이 소설에서 정말로 비현실적인 마법이라고 할 만한 것은 특별히 없다. 그저 사람을 끝까지 현혹하고 속이려드는 거대한 연극이 있을 뿐.

 이 연극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마법사와 같이 신비스러운 면모를 늘 보이며 니콜라스를 속이려 드는 노인 콘키스는 니콜라스에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해준다. 삶의 아이러니한 잔혹함과 자유의 무게 등에 대한 묵직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이야기들은 마치 이 비밀스러운 노인, 콘키스의 실제 삶이나 현재 콘키스가 니콜라스와 함께 있는 이 구도를 다른 식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날 밤이면 이 이야기에 해당되는 현상들, 사자들의 유령이 종종 별장 주위를 배회하며 주술적인 장면, 역사적인 참혹함을 재현한다.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고, 이걸 보는 니콜라스가 무언가 신비스러운 깨달음을 얻고자 하게끔 말이다.

 물론 콘키스는 니콜라스에게 깨달음을 촉구하는 사람이다. 콘키스는 니콜라스에게 무의식적인 두 개의 연극을 요구한다. 하나는 콘키스가 볼 수 있는 한에서, 이 별장에서 일어나는 괴상한 사건들과 콘키스의 연극적인 태도를 따라 매번 주제나 인물에 대한 설정이 달라지는 거짓말에 동참하는 것. 또 하나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다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식해 그처럼 연극의 함정 속에 빠진 두 여인들과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면서도, 어딘가에서 콘키스가 모든 걸 지켜보고 있고 이 과정들까지 그가 계산한 것은 아닌가 우려하며 이 행동들까지도 마치 누군가가 지켜보는 듯한 연극인 양 연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 후자가 니콜라스를 속박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엄밀히 말해, 니콜라스는 섬에 오기 전부터 이미 가상의 관객들 속에서 연기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현재 그와 사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관계를 끊을 수 있는 뭔가 거리감 있는 다른 배우처럼 느껴졌고, 그는 이 질척거리고 색채 부족한 런던에서는 자신이 특별해질 수도, 불멸하는 예술가로 남을 수도 없다고 생각해 그의 관중인 미래를 위해 연인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고, 후련한 마음으로 그리스로 떠난다. 콘키스는 니콜라스가 그렇게 살아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메타-연극 속의 니콜라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을 연기자로서 의식한다. 그렇기에, 일종의 충격 효과로서 최후의 환상적 연출과 함께 연극과 현실을 분리하고 연극의 허구성을 확실히 부각하는 클라이맥스가 다가왔을 때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다. 그가 자신이 당한 폭력에 대한 분노를 이겨내고, 자신의 변화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는 그 뒤로도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허나 분명히 소설 최후의 순간의 니콜라스는 더 이상 가상의 시선을 쫓는 연기자가 아니다.

 이상의 전개를 보면 분명하지만, 이 소설은 상당히 복잡하고 현실과 허구를 고의적으로 뒤섞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다. 그것도, 소설에서 화자의 입을 통해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한 사람의 삶을 극형식으로 은유하고, 이 극을 다른 사람의 삶의 틀을 씌워 만든 극으로 덮어씌우고 재차 이 극과 현실을 혼동시키며 기어이 극을 파국까지 밀어붙이는 식의, 줄여놓으니 괴상망측하기까지 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말이다. 시대적인 영향 탓인지 프로이트 철학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도 해 노골적인 에로티즘과 성애 묘사까지 가득하다. 재미는 있지만 재미를 위해 작위적인 전개를 쓰느라 일부 완성도를 희생시킨 부분도 있어, 평론가가 잡으면 흥분할 수밖에 없는 글이리라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조금 아쉬웠다. 제목 <마법사> 자체가 글의 환상성을 예상시켰던 데다가 작중의 다양한 신화적/오컬트적 모티브들이 분명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암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런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니콜라스라는 인물의 성장에 중점을 둔 소설이지만, 성장을 위한 틀에는 동화적인 환상성 대신 냉철하고 괴팍하기까지 한 정신 분석 이론이 벽돌 역할을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이 글이 나왔다면, 그 땐 어쩌면 정말로 마법적인 요소들이 들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까지 느껴진다. 역시 현실보다는 환상이 더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