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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드디어 천왕봉에 다다랐습니다...

흔히 등산은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하다고들 합니다. 대하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읽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것을 잊어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현실적으로 대하소설을 일일이 다 기억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고, 결국엔 ‘기억해야할 것’과 ‘잊어야할 것’을 선별해야 합니다.

<지리산> 7권을 읽는 것이 오르막길이라면,

감상을 정리하고,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보고, 더 나아가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는 것이 내리막길의 의무입니다.

아직 지리산 종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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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2주만에 <지리산>을 끝냈음. 토지 50일, 태백산맥 40일, 산하 46일에 비하면 매우 일찍 끝낸 편이긴 함. (물론 산하는 대출문제 때문에 늦어진 거고, 지금 같은 상황이었으면 비슷한 시기에 끝냈을 것 같긴 함.)

일단 제대로 된 감상문은 나중에 쓸 생각이고, 그냥 간단히 이병주와 <지리산>의 매력을 소개하고자 함.

20~30년대 출생의 일본어 세대 작가들은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데는 서툴지만, 대신에 일제시대, 한국전쟁을 견뎌낸 화려한 인생 경험과 일본어 번역서로 다져진 박학다식함이 있음.

특히 이병주는 잡다하고 폭넓은 지식으로 유명한 사람임. 지적으로 세상에 꿇릴 사람이 없다고 자부하였던 남재희 의원이 유일하게 한수 접었던 상대가 이병주라고 함. (요건 독갤에서 들음.)

<지리산> 역시 그의 입체적인 시야와 깊이 있는 통찰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철저히 팩트에 근거하여 남로당과 빨치산을 예리하게 분석해내고 있음. 뒤에 작가가 밝히기를, 지리산에 나오는 거의 모든 내용이 실화라고 함. 실제로 이현상, 하준규, 이태 전부 실존 인물이기도 하고.

어쩌면 <지리산>은 더욱 장대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이병주는 그걸 거부했음. 일체의 센티멘탈리즘을 부정하고, 오직 객관적인 눈으로 빨치산들을 바라보고 있음.

그런 의미에서, 빨치산들이 어깨동무하며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소설적인 상상력’에 의거한 것이고,

방금 막 죽은 빨치산의 시체에서 이 한무더기가 기어오르는 모습,

죽은 빨치산 전우가 씹고 있던 생쌀을 꺼내 배를 채우는 모습,

그 입술에 붙은 밥풀까지도 주워먹는 모습,

그럼에도 공산당이니 공화국이니 해가며, 위신 차리기에 급급한 간부들.

이게 바로 이병주가 목도한 빨치산의 현실이란 것임.

영혼은 의기투합하여 항일운동을 하던 괘관산 시절에 머물러 있지만, 몸은 동상으로 썩어 문드러진 발을 내리치는 통증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괴리. 그것이야말로 이병주가 담아내려 했던 박태영의 좌절이고, 동시에 이병주의 좌절인 것임.

결국 <지리산>은 이병주의 이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겠다.

“나는 지리산을 실패할 작정을 전제로 쓴다. 민족의 거창한 좌절을 실패 없이 묘사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이 내게는 없다. 좌절의 기록이 좌절할 수 있을 수도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최선을 다해 나의 문학적 신념을 <지리산>에 순교할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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