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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요조는 어렸을때 부터 자신이 보통사람들과는 다른다는 걸 눈치챈다. 보통사람들이 재밌어 하는 것을 이해 못하고, 소위 말하는 가족들 간의 '정'이란 것을 지각할 뿐 느끼진 못한다. 하지만 요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못견뎌 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고 싶지도 않은 선물(사자탈)을 받고 싶다고, 다들 잠자고 있는 늦은 밤 아버지의 수첩에 조심스럽게 메모해 놓는다. 요조의 메모를 보곤 아버지는 흡족해 하며 사자탈을 사온다. 사실 요조는 생일에 어떤 것도 받고 싶지 않았고 굳이 받는다면 책 정도가 그나마 나았을 뿐이었다. 다만, 아빠는 생일선물로 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요조는 그 못마땅함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나는 이 선물 일화가 소설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봤다. 또한 여기서 소설을 대표하는 단어를 뽑아냈다. 바로 '이중성'이다. 요조의 아버지만 봐도 그렇다. 선물을 사주는 행위는 겉으로는 분명 아들 요조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주고 싶은 것(사자탈)을 끝내 사준다.이로써 선물은 아들에 대한 애정이란 의미와 함께 강압이란 의미도 동시에 띠게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애정의 대상이지만 본의(?) 아니게 강압의 대상으로 대하는 이중성을 띤다.
이중성은 주인공 요조를 바라보는 내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요조는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행동함과 동시에 사람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어한다. 이 이중적인 욕구에 대한 요조의 독백을 읽고 있으면, 내 마음을 읽힌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욕망과 뒤떨어져 홀로 있고 싶어하는 욕망이 충돌하는 요즘인데, 딱 걸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뭐 이런 인간이 다있나. 너무 예민한거 아니냐.  보통사람의 영역에서 한창 나가버린 요조에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이 동질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주는 요조란 인물이 기이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완독 후에도 그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그 동질감과 이질감이 혼합된 느낌은  ‘인간의 내면’이란 판도라 상자라도 연 것처럼 강렬했기 때문이다. 
요조는 가면을 쓰고, 철저히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그럭저럭 잘 통한다. 물론 그 가면을 간파한 녀석이 있긴 했지만. 고등학교를 도쿄로 가면서 요조의 인생은 완전히 꼬인다. 가면이 고등학교에서 잘 안통했거와, 호리키라는 녀석을 만났기 때문이다. 요조는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호리키라는 녀석을 만난건데, 겉으로 보기에는 둘다 다를바 없는 놈팽이다. 학교는 안나가고, 무전취음하고, 매춘부를 만나러 다니고.
하루는 호리키가 요조의 집에 놀러온다. 옥상에서 술판을 벌이면서 둘은 낱말게임을 한다. 이 낱말게임이란게  반대말을 대는 거다. 반대말 가지고 서로 빈정대다가 감정만 상한다. 충분히 감정이 상한뒤 호리키는 배고프다며 콩을 가지러 내려갔다가 깜짝 놀라며 올라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 요조도 내려간다.  1층에선 요조의 부인인 요시코가 겁탈당하고 있었다. 요조는 놀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2층으로 올라가버린다. 요시코를 겁탈한 놈은 요조의 그린 만화를 받으러 다니는 장사치였다. 호리키는 일이 벌어진 직후 이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딱하긴 한데, 너도 이제 좀 깨달은게 있겠지? 난 이제 두번 다시 여기 안 올 거야. 여긴 그냥 지옥 그 자체네...... 그래도 요시코는 용서해라. 너도 어차피 제대로 된 놈은 아니잖아? 이만 실례한다.”
호리키는 요조를 친구로 보지 않고 자기보다 밑에 있는 생물 내지는 사물쯤으로 여긴 것이다. 호리키는 완전히 이중적인 인간이었다. 요조는 이 일로 인간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사라진다.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겉과 속이 다른 인간들에게 완전히 탈진해버린 것이다. 그 탈진에는 요시코의 겁탈도 한몫했다. 요시코는 순수한 사람이었을 뿐이고. 겁탈당하기전 '아무짓도 안한'다는 그 장사치의 말을 믿었을 뿐이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과연 소설제목 <인간실격>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인물들 하나하나를 겨냥하게 된다. 매춘을, 마약을, 유부녀와 그짓을 하는 요조가 인간실격인가, 아니면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요조의 아버지와 형, 그리고 호리키인가. 그리고 인간들을 하나하나 조명해 나가다보면 그들에게서 추악한 냄새가 난다. 인간들은 이다지도 냄새나는 것들이었나.뭐 누가 인간실격인지 그게 대순가. 소설의 인물들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인간들의 속속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족할뿐이다.
<인간실격>은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똑바로 서서 인간들을 바라보게 한다. 뭐 실존주의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어떤 것인지 바라보게 하는 것이 실존주의라면 <인간실격>은 철저히 실존주의 소설이다. 
얼마되지 않은 독후감을 썼다. 독후감을 쓸때마다 빡셌지만, 이번이 최고조였다. 머리속에 에서 많은 것들이 떠올랐지만, 너무 많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인간실격>은 정말 감당하기 힘든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