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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역사
1. 소크라테스
고대 그리스에 한 남자가 있었다. 못생긴 외모에 벗겨진 머리를 가진 이 남성은 그만의 특이한 논증을 통해 아테네 귀족과 시민들을 농락했고, 끝내 그들에게 사형 선고를 받아 죽는다. 변증법과 산파술의 대가였던 이 대머리의 이름은 소크라테스였다.
고대 그리스, 적어도 니체가 생각한 고대 그리스의 사회는 변증법이나 산파술 따위가 전혀 필요없는 사회였다. 인간은 논증이 아닌 그 자신의 삶으로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인간의 본능은 그러한 인간들의 손아귀에서 적절하게 통제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본능은 점차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었고, 방종과 타락이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다. 그렇게 썩어 버린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나타난 것이 소크라테스였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못생긴 외모, 그리고 천한 출생 신분에 주목하며 그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복수심, 그리스의 귀족들을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고자 하는 뒤틀린 욕망으로부터 기원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복수심에 불타던 그는 귀족들을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그들에게 그토록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그는 끝내 성난 아테네 시민들이 내린 독배를 마시고 죽지만, 그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썩어버린 고대 그리스 사회의 사상을 발로 걷어차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2. 플라톤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었다. 그는 이원론자였다. 그는 세상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와 '우리가 볼 수 없는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믿었고, 후자의 세계야말로 진정한 세계, 본질로 가득한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라는 사상을 내세웠다.
이 때부터 인간은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하였고, 스스로를 노예화하기 시작했다고 니체는 말한다. 더 이상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인간은 이성을 통해 본능을 짓눌러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 했지만, 동시에 스스로도 이성에 짓눌리게 되었다. 자연히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은, 이성이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데아의 세계보다 하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인간의 삶의 목표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저 너머 어디론가로 떠나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인간에게 희망이 있었다. 플라톤은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이성을 갈고 닦음으로써 이데아의 세계로 진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인간이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음으로 등장한 우상은 이 작은 희망마저 없애버렸다.
3.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는 플라톤의 사상을 민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재편하여 자신들의 사상으로 편입시켰다. 그 결과 '저편의 세계'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한낱 인간은 절대로 도달하지 못하는 완전무결한 세계가 되었다. 이른바 '신'의 세계가 탄생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인간은 완전한 노예가 되었다고 니체는 말한다. 인간은 더 이상 무언가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신의 뜻에 맡길 뿐이다. 인간은 더 이상 무언가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책임을 지는 것은 그들의 '주인'인 신이다. 인간은 더 이상 몰락하고 극복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영혼의 평안'이다. 아무 긴장도, 고통도 견디지 않고서 얻는 껍데기뿐인 평안.
우상의 황혼과 초인의 새벽
니체는 이 우상들, 인간을 지배하고 노예화한 이 우상들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며, 그 자신부터 '쇠망치를 들고' 그것들을 깨부수려 한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우상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고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또 긍정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비로소 가축의 무리가 아닌 '초인'이 될 수 있다.
초인은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우상들이 인간을 끌고 다니기 위해 만든 도덕과 계율 따위의 사슬은 그의 행동을 제한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어떤 것이든, 심지어는 자신마저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다.
초인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 그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몰락한다. 스스로의 실패로 인한 책임을 온전히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는 극복한다. 몰락하고 극복하고, 또 몰락하고 극복하며, 그는 그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또 한없이 긍정한다.
초인은 본능을 정신화한다. 날것의 성욕은 짐승의 그것과 같다. 그것이 만드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아무나 덮치는 저열한 강간범이다. 하지만 정신화된 성욕은 사랑이 된다. 사랑은 짐승이 아닌, 서로를 존중하며 아끼는 두 명의 인간을 만든다.
날것의 적의는 폭력과 살인을 부른다. 그것이 만드는 것은 인간들이 서로를 거세시키고 절멸시키려 하는 지옥도이다. 하지만 정신화된 적의를 가진 인간은 자신의 적을 인정하고 그와 경쟁하여 끝내 그를 뛰어넘는, 스스로에게서 승리하는 인간이 된다.
현대의 우상과 니체
힘든 세상이다. 인간은 물질적 풍요를 느끼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빈곤하다. 소크라테스가 그리스 사회를 퇴락시킨 것이 아닌, 퇴락한 그리스 사회로부터 소크라테스가 탄생했듯, 데카당으로 가득한 사회는 우상이 만들어지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확실성을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은 우상으로 가득 찬 세계, 확실성으로 가득 찬 것 '같아 보이는' 거짓된 세계를 만들어 그곳으로 도피한다.
사실 요즘에는 개인이 그러한 거짓 세계를 만들어 낼 필요도 없다. 극도로 발전된 현대의 기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의 입맛에 꼭 맞는 각자의 우상들을 제공해 준다. 왼쪽에 선 사람들은 '왼쪽만이 옳다!'라는 내용의 정보만을 접하면서 점점 더 왼쪽으로 치우치고, 오른편에 선 사람들은 '오른쪽만이 진리다!'라는 내용의 정보만을 접하면서 점점 더 오른쪽으로 치우친다. 그리고 그렇게 치우칠대로 치우친 인간들은 서로에게 욕을 퍼붓고 서로를 헐뜯기만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현대의 우상들은 이제 사람들을 단순한 노예가 아닌 검투사 노예로 만들었다. 검투사 노예들이 싸우면서 흘리는 피는 우상에 스며들어 우상을 보다 더 크고 단단하게 만든다. 승자따위 없는 콜로세움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쩌면 현대인들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초인'의 의미를 되새기고, '초인'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아닐까.
오 한번 봐봐야겠네 재밌겠다
와 개꿀잼이겠네.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