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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ohlhammer.de/wms/instances/KOB/appDE/Theologie/Altes-Testament/Einleitung-in-das-Alte-Testament-978-3-17-030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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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bundobook.co.kr/goods/view?no=12705




원제는 《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가톨릭의 구약 성경 46권을 다루는 개론서임. 구약 전체를 다루는 개론서 중 이것보다 더 최신 학설을 소개하는 책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한국에 없고, 이것보다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면 당장 짐 싸서 유럽으로 유학가길 추천함.



길게 설명 안하고, 그냥 발췌문만 몇 개 던지겠음. 발췌문과 쪽수는 한국어판 기준. 굵은 글씨는 책에서 강조된 것이고, 빨간건 내가 강조한거:























문학적 측면에서 오경의 사제계 '판'의 형성은 점진적인 작성과 편집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제계 '판'은 자신이 창작해 낸 P 본문들을 비 P 본문들과 고유한 방식으로 결합시켜 제시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독특한 작품이다. "한편 '부가적으로' (즉, 변형시키지 않은 채) 제시하고, 다른 한편 종종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불연속적인 접합을 통해 제시한다.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구약성경의 책들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모순과 중복 따위의 단순한 실상이 아니라, 본문 안의 그런 불균형을 거의 의식적으로 감수하는, 또는 심지어 야기하는 합성이다."(Erhard Blum, Esra, die Mosetora und die persische Politik, 235-236). 블룸에 따르면, 대체로 오늘날의 오경과 동일시되는 오경의 이 사제계 판은 (기존의) 비P 본문들과 특별히 창작된 P 본문들이 의식적으로 불연속적인 하나의 논술로 합쳐진 '혼종 합성'이다. 성경 내에서 독특한 이 혼종 합성은 유다교 내부의 이유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나의 그럴듯한 설명으로 이른바 페르시아 제국의 공인, 즉 페르시아 제국에서 통례적으로 행해지던, 지역적 또는 민족적 제의 전승과 법 전승들에 대한 페르시아 중앙정부의 승인이라는 맥락을 들 수 있겠다. 유다교 정체성의 '기본 텍스트들'에 대해 그런 '제국의 인가'를 얻어 내고자 한 유다인들의 노력이, 오경의 혼종 합성에 대한 가장 신빙성 있는 설명이다. "유다교 법 전승에 대한 페르시아 당국의 공식 인가 같은 것이 있어야 했다면, 이것은 유다교 측이 준비한 원본을 토대로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원본은 두 가지 통상적 전제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a) 원본은 오직 하나의 문서로 된 작품이어야 했다. (b) 유다교 내의 주요 집단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했다. 바로 이것에 오경이 부합했던바(오경의 전단계들에는 해당 안 됨!), 오경의 혼종적 형성과 관련하여, 합의를 위한 모종의 효과적 압력이 있었으리라는 것도 추측할 수 있다"(Esra 246-247).


189-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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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21쪽











앞에서 약술한 페르시아 '제국 인가' 가설의 문제점들을 고려하여, 오경 최종 편찬을 다시금 오히려 유다교내부의 동기에서 비롯한, 다양한 집단과 경향들의 단순한 다원적 병존을 넘어 이스라엘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노력한 사회적이고 신학적인 중재 과정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H.-C. Schmitt).

(중략)

유배에서 돌아온 뒤 이스라엘의 신학에는 (아주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두 가지 (구체적으로 더 세분해야 하려니와) 주요 경향이 특히 우세했다: ① 신정神政 경향. ② 종말론적 경향. 이 두 경향의 특징과 차이는 페르시아 세계 제국이라는 환경 안에 있던 이스라엘의 유배에서 돌아온 초기 역사(유배 종료, 성전 재건과 봉헌, 예루살렘을 유다 종교의 상당히 자율적인 중심지로서 확립)에 대한 상이한 해석들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신정적 경향은 이 상황을 원칙적으로 이렇게 해석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미 다시금 현존하니, 전 세계적인 페르시아 제국이 현존하는 하느님 나라로,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전 제의가 이 구원의 실현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페르시아를 통해 간접적으로 행사되는 보편적인 하느님의 통치권). 이 테두리 안에서 그 구원을 완전케 하려는 움직임과 관련된 기대들이 페르시아 제국을 통한 야훼의 세계 지배와 정치적 수단들에 정향定向되었다. 이 입장에서는 종말론적 유보가,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을 넘어서는, 야훼 친히 가져다주실 이스라엘을 위한 철저한 전환에 대한 기대가 결여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이 예언자들의 기대가 이미 실현되었다고 보는 신정적 사상을 종말론적 입장들과 구별짓는다. 더 정확히 말해, 한편으로는 신명기계 전통의 종말론적 입장과 구별되니, 여기서는 페르시아 시대를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좀 완화된 때로 판단하며,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그리고 이민족들의 세계를 거슬러 가져다주실 (시간상 전혀 정해져 있지 않은) 축복의 전환을 고대한다. 또 한편으로는 예언자 전통의 종말론적 입장과도 구별되니, 여기서는 페르시아 시대가 구원으로의 전환의 전조로 ··· 간주되기도 하지만 이 구원은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을 넘어 야훼 친히 그리고 곧장 당신의 왕권을 시온에서 행사하시게 될 때 비로소 포괄적으로 돌출하게 된다"(O.H. Steck, Abschluß der Prophetie 15-16의 각주 13).

유다의 다양한 주체·집단들(사제 계급은 신정적 경향, 평신도 동아리들은 종말론적 경향, 두 경향의 교차·중첩도 물론 있었음)에 의해 선호된 이 두 경향은 오경 안에, 설화적 구조뿐 아니라 입법적 구조에서도, 병치되어 있기 떄문에, 우리는 일종의 긴장 가득한 타협에 관해 말할 수 있다. 설화적 부분들에서 이스라엘의 기원사에 관한 두 가지 관찰 방식이 경쟁하고 있다. 사제계 관점은 천지창조로 말미암아 그리고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하느님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구원 질서들이 영구히 확립되었어ㅡ며,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이 질서들에 부합하는 삶을 통해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예언자적 정신으로 고취된 관점은 이스라엘의 기원을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또 이민족들 세계와 함께하시는 역사, 역동적이고 늘 심판과 구원의 긴장 아래 있으며 원칙적으로 열려 있는 역사의 시작으로 해석한다.

입법적 부분들에서도 두 경향은 강조점을 달리한다. 이는 오경에 통합된 이스라엘의 (세부적으로는 여러모로 서로 가까운) 세 가지 '근본 규범들'인 탈출기 20-23장(십계명과 계약의 책), 레위기 1-26장(특히 17-26장의 '성결법') 그리고 신명기 5-28장에서 특히 뚜렷이 드러난다. 오경 한가운데 배치된 사제계 근본 규범은 주로 제의법·종교법적인 범주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거룩하고 정결한 공동체로 규정짓는다. 반면 (테두리로서) 그 앞뒤에 배치된 탈출기 20-23장과 신명기 5-28장의 두 근본 규범은[각기 맨 앞에 '윤리 십계명'(탈출기 20장과 신명기 5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의 변형태는 레위기 19장에도 나온다] 한 가족이라는 이상에서 영감을 받아 '형제(자매)다운' 백성이라는 이상을 펼쳐 보이는바, 이 이상은 항구적 개혁 과정에서 실현되어야만 할 터였다.

신학적 절충 작품인 오경은 "다양한 시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신정주의자들은 오경 시작 부분에서 이미 세상 질서와 이스라엘 질서에 관한 영구히 타당한 근본적 규범들을 발견했고, 이것이 당시 페르시아 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예루살렘에 성전을 가지고 있는 유다의 실존에서 실현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명기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도 자신들의 규범과 역사적 관점들이 오경 안에 통합·보전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예언자 무리와 마찬가지로 페르시아 제국을 넘어서는 구원의 대전환에 대한 자신들의 매우 원대한 희망의 근거를 창세기와 신명기의 약속들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O.H. Steck, Abschluß der Prophetie 18-19).


221-224쪽












4. 전기 예언서들(ㄱ)의 출전 자료와 서술 경향

노트(ㄴ)에 따르면, DtrG(ㄷ)가 "어쨌거나 '사실'史實에 근거한 서술을 제공하고자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기 예언서 편저자들은 여호수아로부터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역사를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있듯이) 멋대로 지어내지도 마음대로 표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출전들'에 의존해 그것을 발췌했으며 많은 경우 자기네 작품에 그대로 옮겼다. 그 출전들은 물론 거의 모두 국가 존립 시기의 것들이다. DtrG는 이런 유형의 역사 서술에 이를테면 원료를 공급해 주는 국가라는 사회제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국가 '이전'의 이스라엘에 관한 '역사적' 서술은 현대적 의미에서는 별로 '사실史實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연속되던 역사 서술은 유배 이후 시기에 다시 중단된다.

여호수아기는 특히 장소와 지경地境 이름 목록들과 원인담Ätiologie적인 개별적 이야기들을, 판관기는 영웅담 등을 자료로 이용한다. 국가와 관련 있는, 그러나 아직 하나의 포괄적 역사서를 목적으로 쓰이지는 않은 사무엘기와 열왕기의 출전들은 세 종류로 구별할 수 있다.

국가의 운영과 자체 관리에 필요한, 문서고에서 행정에 사용되었던 문서: 여기 속하는 것들로는 최고위 관리들 명단(1열왕 4,1-6), 솔로몬의 '지방들'을 통한 지파 지역들의 행정 기술상의 재편성(아마 포고도 고려했을 것이다)에 관한 목록(1열왕 4,7-19) 등이 있다. 그 밖에 분석적 특성을 지닌 연감이나 총체적 기술記述들이 있는데, 이것은 신진 관리 교육과 국가·관청의 여러 의식儀式 등에 활용되었다. 예컨대 "솔로몬의 '실록'(직역하면 '날들의 사건들의 기록')"(1열왕 11,41),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19), '유다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29) 같은 것들이다. 열왕기에서 자료로 사용된 정보들의 큰 부분은 여기서 유래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열왕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료다. 끝으로 국가와 이런저런 제도의 기틀을 잡은 사건을 집중 강조한 텍스트들도, 국가의 자기 성취에 중요했다. 이집트에서 여기에 사용된 것이 '제왕 칙령'이라는 양식이었다. 이것이 사무엘기 하권 7장 '나탄 예언'의 본보기였던 것 같다. 기능이 이와 유사한 또 다른 텍스트로는, 유다의 요시야 임금 재위 18년(기원전 622/621년)에 있었던 율법서의 발견과 임금 및 백성의 율법 준수 서약 이야기를 전해 주는 열왕기 하권 22-23장의 바탕 텍스트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자료로 사용된 계약 체결 보도는 다음 범주에도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선전의 맥락에서 유래하는 텍스트: 문학적으로 수준 높은 이 텍스트들은 성경 기술 기법의 정점을 이룬다. 그러나 오늘날 이 텍스트들은 그 경계 설정과 통일성이 논란되고 있다.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다윗 왕국이 세워짐으로써 이스라엘의 중심이 중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진 것을 정당화한 '계약 궤 이야기'(1사무 4,1-7; 2사무 6,2-23)가 있다. 그 밖에 '다윗의 승승장구 이야기'(1사무 16,14-2사무 5,10)는 사울의 죄과와 실패 그리고 다윗의 무죄함과 하느님이 이루어 주신 성공을 제시하는 한편, 야훼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를 하느님-직접성의 거룩한 영역으로 옮기고, 그의 불가침성을 통해 그가 책임지는 국가 또한 터부화했다. 아마 문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웅대한 서술인 '왕위 계승 이야기'(2사무 9-20장; 1열왕 1-2장)도 국가 선전에 복무했는데, 임금에게 충성스럽고 '왕궁 내근內勤적'이지만, 한편으론 솔로몬을 비판했다.

많이 비판하면서도 국가를 사회적인 모든 것의 당연한 틀로 여기는, 비국가적 삶의 맥락에서 유래하는 텍스트: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민담·영웅담·전설들의 매우 큰 블록이 있는데, 그 중심에는 대개 예언자가 자리 잡고 있다[사무엘(1사무 1-3장), 엘리야와 엘리사(1열왕 17장-2열왕 8장), 이사야(2열왕 19-20장) 등].

DtrG를 조립한 출전들의 지평은 모든 사회문제의 해결 방책으로서의 국가였다. 최종 형태의 DtrG가 국가를 회고하는 관점은, 국가 붕괴 이후 물론 바뀌었다. 그래서 (적어도 유배 중의) dtr(ㄹ) 편집은 자기 자료를 상당히 국가 비판적인 서술 경향에 맞추었다.

5. 신학적 메시지로서의 신명기계 역사서

신명기계 역사서의 유배 시기 최종 편저자들은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생성·존재·멸망했던 시간을 오로지 기만당한 자들의 분노 안에서만 회고할 수 있었다. 그들의 작품은 '국가에 대한 분노의 회고'였다(로핑크)(ㅁ).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결코 인간의 분노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 속에 떨어진 하느님의 분노였다. 이 '분노'는 이미 이스라엘 이전 이집트에서 매우 현실적으로 채택되었던 정치신학의 한 개념이었다: 주권자의 분노는 억압받는 이들의 권리 관철과 구원을 위한 정치적 열정이었다(아스만). 그런 까닭에 dtr 역사가들은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이 하느님 분노의 비밀을 캐보려 노력한다.

그들의 결정적 물음은 이것이다: "왜 야훼께서 이 땅에 이렇게 하셨는가? 타오르는 이 큰 분노는 어찌 된 것인가?"(신명 29,23). 답은 다른 신들에게로 이스라엘의 이탈과, 이스라엘을 이방 제의들로 미혹한 임근들의 죄에 있다. 이 노선이 이 책군群의 편집을 관통한다. 이것은 DtrG가 하느님의 분노에 관해 말하는 두 가지 표현 틀에서 아주 명확히 드러난다: '분노 정식'('야훼의 분노가 ~를 거슬러 타오른다', 또는 '야훼께서 분노에 빠지신다')과 '상심 정식'(어떤 인간 또는 이스라엘이 '야훼를 상심시켰다'). 야훼의 분노에 관한 말은 이 역사서의 모든 책에 나오지만, 신명기와 열왕기에 무더기로 나타난다. 분노 정식은 이스라엘의 야훼 이반離反에 관한 정형화된 묘사들의 정점에 으레 등장한다(예: 판관 10,6-7). 이 정식은 사실상 계약이 꺠어졌음을 나타내며(예: 신명 29,22-27; 여호 23,16; 판관 2,20; 2열왕 17,15-18), 또한 하느님께서 심판·징벌하시리라는 언급과 언제나 결부되어 있다. 상심 정식은 하느님의 징벌과 반드시 결부되어 있지는 않다. 이 정식의 전형적 맥락은 임금에 대한 판결이다(예: 1열왕 16,26;22,53-54; 2열왕 21,6). 이 분노라는 주제의 논구에서, 신명기계 역사서에 대한 노트의 해석―이스라엘의 멸망에 직면하여 하느님을 정당화하기―이 옳았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어쨌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한 줄기 가냘픈 불빛이 비치고 있다. 과연 북 왕국(엄밀하게는 남 왕국도 포함된다)에 대한 이 책 화자話者의 종결 요약인 열왕기 하권 17장에서, 그리고 특히 열왕기 하권 21-24장의 (그러니까 므나쎄부터) 임금들에 대한 평가에서, 예전에는 매우 일의적一意的이었던 하느님의 분노라는 옛 개념이 절멸에서 유배로 완화된다. 옛 정식에서는 하느님의 분노가 이스라엘의 존재를 완전히 그리고 전면적으로 끝장낼 기세였다. 그러나 이제 이 분노는 다만 이스라엘이 야훼의 면전에서 (무엇보다도 그분의 모든 제의적 현존으로부터) '물리쳐지는'(2열왕 17,18.23; 23,27; 24,3), 아니 '내던져지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유배 정식'이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아시리아(2열왕 17,23) 또는 바빌론(24,20)으로의 유형流刑이다. 이 정식은, 열왕기 하권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훗날의 유배에 대한 통고인 신명기 29,21-27에 이미 도입된다. 이 땅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가 소돔과 고모라에서처럼 맹렬히 불타오른 후, 이스라엘은 '다만' 제 땅에서 뽑혀 다른 땅으로 내던져질 터였다.

하느님의 분노에 대한 통고는 (하느님의 자비 덕분에 방식이 바뀌기는 했지만) 실현되었다. 하지만 분노의 관점에서 파행적 역사에 대한 회고(이것은 전기 예언서의 전체 모습을 그 역사의 종말에 입각해 판단한다)가, 언제까지나 결정적인 마지막 말은 아니다. 유배 중에도, 하느님의 분노가 완전히 가라앉은 뒤, 여전히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정체성이 존재한다. 비록 이 이스라엘은 예전에 자신에게 약속되었던 것을 모두 빼앗겼지만 말이다. DtrG의 설계에서는 모세와 사무엘이 역사의 본원적 해석자들이다. 사무엘은 국가 창설을 (이스라엘이 토라를 준수했다면, 이 사회형태도 이스라엘에게 가능했을 터이지만) 처음부터 재앙으로의 길로 판단했다(1사무 8장과 12장; 신명 17-14-20의 임금의 지켜야 할 규정도 참조). 그래서 두 임금이 지나선 실현되지 못한 미래 언명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인즉, 이 작품의 시작인 신명기 4장과 30장에 나오는 모세의 역사 해석이다. 이 본문들은 가장 후대의 편집들에서 유래하는데,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미래를 펼쳐 보이는 말을 그대로 옮긴다. 그런 까닭에 이 본문들은 높은 권위를 지니고 있다. 이 본문들의 관점은 하느님 이반과 유배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개(신명 4,23-31)와 하느님에 의한 귀향과 마음의 할례[이로 말미암아 이제 이스라엘은 사랑의 계명과 신명기의 모든 사회적 규범을 지킬 수 있다(신명 30,1-10)]를 포괄한다. 비할 바 없이 슬기롭고 의로운 이 (dtr) 토라를 통해 이스라엘은, 임금과 국가 없이도, 하느님의 사회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더이상 성전이 필요하지 않으니, 이스라엘이 언제 어디서든 야훼를 부르면 그분은 토라를 통해 도와주시고 가까이 계셔 주시기 때문이다(신명 4,6-8). 바야흐로 이 보문들의 관점에서 전체 DtrG와 그 분노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현재 정경에서는 이 점이 더 분명하니, 여기서는 신명기가 오경의 한 부분이고 따라서 더 높은 규범적 지위를 지니고 있기 떄문이다.

DtrG가 수행하는 하느님 백성과 국가의 결연結緣과의 비판적 대결, 그리고 더나아가 (국가 형태로 조직된 사회들에 맞선) 국가 없는 대척對蹠 사회로서의 하느님 백성이라는 유토피아와의 진지한 씨름을 앞에 두고 이런 물음이 제기된다: 그리스도교와 유다교 역사의 거대한 전개 과정들(비잔틴의 신정국가로부터 그리스도교 중세를 거쳐 유사신학적 실재인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에 이르기까지)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나 많은 '그리스도교 사회론들'과 해방신학들의 발아發芽를, DtrG에 담겨 있는 이스라엘의 체험에 비추어 어찌 판단해야 할까?

345-349쪽

발췌자 주석:

ㄱ. 전기 예언서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을 말함. 유다교에서는 이 책들을 그리스도교에서와 달리 예언서(느비임)로 분류.

ㄴ. 마르틴 노트(Martin Noth)

ㄷ. 신명기계 역사서(Deuteronomistisches Geschichtswerk). 즉 신명기,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 이는 전기 예언서와 범위가 겹침.

ㄹ. 신명기계(deuteromistisch).

ㅁ. 노르베르트 로핑크(Norbert Lohf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