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바틀비, 2020.
지금이야 한국의 평균 1년 독서량에 비하면 책을 꽤나 읽는 편이지만 입대 전까지만 해도 나는 평균을 깎아먹는 존재였다. 스타크래프트 인터넷 방송을 하루에 대여섯 시간, 주말에는 열 두 시간도 틀어놓고 노트북으로 게임이나 하며 지냈다. 그러지 않으면 술을 마셨고 유튜브를 보고 티비를 봤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닥 재미도 감흥도 없었던 스무 살의 나날이었다.
이런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입대하고부터다. 자대 배치를 받으면 싸지방이나 티비라도 있지만 훈련소에서의 유흥거리라고는 같은 훈련병들과 숫자야구를 하거나 국방일보를 읽거나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불침번 동안 조교가 읽다 냅둔 2015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제아무리 책, 특히 문학에 관심 없는 나라도 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읽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유혹이었다. 대상작은 김숨의 뿌리이야기였는데 중학교 때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맞나 모르겠다)을 읽은 이후 처음 접한 소설이었다. 1시간 반 가량의 불침번 동안 조교와 교관들이 오나 안 오나 살살 봐가며 읽어야 했기에 작품집 중 김숨의 해당 작품밖에 읽을 수밖에 없었지만 매우 대단한 충격이었다. 와 이런 게 소설이구나 싶었다. 이후 훈련소를 수료한 뒤 페이스북에 이렇게 얘기했다.
“군대와 같이 사회와 단절된 공간은 어찌 생각하면 독서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나는 입대 전에 군에서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관련 서적만 읽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불침번 근무 중에 읽은 짧은 소설은 그 생각을 바꾸게 했다. '토지'도, '태백산맥'도, 하루키도,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스티븐 킹도, 요 네스뵈도 읽고싶다. 소설도 읽고 교양서적도 읽고 전문서적도 읽으며 지내고 싶다. 하긴, 명령과 통제와 불합리와 모순 속에서 지내려면 독서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2017년 5월 31일에 쓰인 이 다짐은 반을 실행했고 반은 실행하지 않았다. 2019년 1월 15일에 전역하기까지 329권의 책을 읽었으니 독서에 기댄 것은 실행했다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저 위 글에 쓰인 작품과 작가들의 책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일단 군대라는 물리적 환경 상 내가 읽고 싶다고 해서 저런 책들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부대에 있는 책들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상병즈음 책을 대략 150여 권 넘게 읽었을 때 대대가 근처 도서관과 MOU를 맺어 중대별로 서너명 씩 달에 두 번 수요일 오후에 간부 인솔 하 해당 도서관에 가서 부대 이름으로 책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짐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이 구비되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그때쯤 되니 내가 대강 무슨 책을 잘 읽어내고 좋아하는지 나름의 취향이 생겼다.
그 취향이 생기지 전에는 그저 유명한 작품과 작가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뭔가 그래야만 할 것 같았지만 책을 어느정도 읽어버릇하니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그렇게 오늘날까지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제외한다면 다짐 속 작품과 작가들을 읽지 않고 있다. 토지나 스티븐 킹의 작법서 정도는 읽어볼 의향이 있긴 하지만 그리 의욕이 생기진 않는다.
아무튼 내가 군에서 300여 권이 넘는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순전히 군대라는 환경덕분이었다. 매일 주어지는 세 시간 가량의 개인정비시간과 두 시간의 야간연등, 주말 등 휴일에 주어지는 하루 종일 쉴 수 있는 시간들 등 마음먹고 책만 읽는다면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는 휴대폰도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서 스마트폰이라는 독서의 가장 커다란 적의 방해도 없었다. 그렇게 한 번 자리 잡은 독서 습관덕분에 수많은 유혹들이 즐비한 사회에 나와서도 비록 군대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한국 독서량 평균을 올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군대와 같은 환경은 주어지지 않는다. 생업과 일상에 이리저리 채이다 보면 겨우겨우 주어지는 황금같은 휴일은 지인들과 어딜 놀러간다든가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를 마신다든가 따위를 하기에도 바쁘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책 한 번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책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뭘 읽어야 하지 고민하다가 베스트셀러의 목록에서 하나 고르는 것이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라 해서 다 좋은 책들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내심 고민해 고른 책이 하필이면 별로인 베스트셀러인 경우 그 길로 아예 독서와의 연을 끊어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러한 경우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이 책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는 저자가 직접 시중의 베스트셀러를 읽어 나름의 평가를 내린다. 사실 책 좀 읽는 사람들이라면 진저리칠만한 책들이 목차를 가득 채운다. 같은 책 내에서도 하는 말이 상반되는 자기계발서! 죽떡먹과 곰돌이 푸의 힐링서적! 판에 박힌 대중소설! 맨날 똑같은 썰 푸는 프랑스 대머리 베르베르 아저씨와 반도체로 코로나를 치유하는 김진명! 끝판왕 《반.일종족주의》! 이걸 다 읽어낸 저자에게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다.
개중에는 나도 몇 권 읽은 책들이 있긴 하다. 《미 비포 유》라던가 《오베라는 남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말이다. 모두 군대에서 읽은 책들인데 저자의 서평을 읽다보니 어? 그렇네? 하면서 정작 내가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개연성이나 캐릭터성 등이 심히 문제가 있었구나하게 됐다. 그때는 그저 “재밌다 ㅎㅎ”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는데 이렇게 저자의 서평을 통해 다른 시각에서 책을 관망할 수 있어서 매우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만일 지금 다시 읽으면 내가 이러한 문제들을 감지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과 함께.
그리고 내가 안 읽었고 또 읽긴 싫지만 궁금은 한 책들, 예를 들어 그 놈의 유튜브 광고로 수십 번은 본 것 같은 “내 딸을 죽인 놈들을 15년 뒤에 죽여주세요!”의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나 “런던의 한 복판에 시신이 한 구 나타났다!”의 《봉제인형 살인사건》, 대체 저작권은 어떻게 처리한 것일까 궁금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등등을 저자를 통해 접할 수 있었는데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나무에게 미안할 책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는지도 연구대상이지 싶다.
그래도 책의 마지막 장은 《사피엔스》, 《팩트풀니스》 등 많이 팔렸으면서도 나름 괜찮은 책들을 다루고 있다(물론 이 장에 포함된 《반.일종족주의》는 제외하고). 이 책에서 그나마 아쉬웠던 부분을 찾자면 아마 이 장일텐데 《사피엔스》와 《팩트풀니스》 두 책 모두 내용과 관점에 대해 꽤나 진지한 비판들이 이루어지는 책들임에도 그러한 얘기가 소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기야 그러한 얘기들을 다루는 이들 자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아쉬움을 저자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부당할 것이다.
개인의 경험과 책의 내용을 잘 버무려 위트를 겉들인 이 책이 초보 독자들에게 유용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이 책이 이 책을 위한 초보 독자들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사실 다 그렇지 않은가. 어떤 지향점을 가진 글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 글을 꼭 읽고 생각을 고쳐먹을 사람들은 안 읽고 그 글을 읽지 않아도 애시당초 글에서 말하는 바대로 생각하고 행해왔던 사람들만 글을 읽는다. 비단 이 책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인 게토화인데 알고리즘에 힘입어 더더욱 이와 같은 문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만 같아 걱정이다.
ㅋㅋㅋㅋㅋㅋ 웃픈 현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