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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에 관한 책 중 언젠가 다시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대중음악이나 대중문화를 다루는 책들은 뭔가 팬보이 마냥 얕고 사소한 정보들을 흥분해서 잡다하게 늘어놓거나, 아니면 아예 역사서처럼 재미 없이 이미 이 주제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만한 주요한 일들만을 이야기할 때가 잦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음악 책은 알렉스 로스의 <나머지는 소음이다>지만, 현재는 품절 상태라 집에도 원서로만 갖고 있을 뿐이다. 참 얄궂게도 양서들, 개중에서도 내 맘에 쏙 드는 책들은 참 쉽게 품절되는 것만 같다. (비슷한 일이 암호학 책인 <코드브레이커>에도 있었고, 결국 이쪽도 원서로만 만족한다.)그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구매한 것이자, 몇 안 되는 재독 욕구를 불러 일으킨 책이 바로 이 <레트로 마니아>다.
대중음악에 대한 책이라고 썼지만, 사실 <레트로 마니아>는 음악만에 대한 책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현재의 대중음악을 소재로 삼아, 대중음악과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이야기하고 그 문제점, 자기파멸적일 정도로 자폐적인 복고 경향을 진단하는 책이다. 대중음악이 60-80년대에 어찌나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워지고, 발전해 나가며 패션, 정체성 등등의 대중문화를 어떻게 이끌어나갔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그 왕관을 잃고 전위적인 입장은 커녕 새로운 '팝'의 의미조차 잃고 후위에 서게 되었는지를 대조한다. 그것도 강박적일 정도로 수많은 다양한 예시들을 통해, 독자가 어떤 식으로든 반박하려고 하기도 전에 기가 질리도록 말이다.
그러니 독자는 이 책을 두 가지 다른 점에 주목해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이 과거지향적인 사회 현상의 대두와 그 문제점이다. 대중음악만큼 심하지는 않다지만 복고 열풍 자체는 현재, 2021년까지도 상당한 힘을 갖고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복고 열풍과는 확실히 다른 색깔을 띠는 것이, 이 복고는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를 가리키며 그것을 우리의 미래처럼 이야기하고 있으니 진보는 당연히 아니고 퇴보도 아니며 말 그대로 정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말이 없다. <레트로 마니아>에서 나오는 재밌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이 '과거를 미래를 보듯이 본다'는 말이다. 그 방식조차 사람마다 달라, 어떤 사람들은 (사실 본인은 겪어본 적도 없는)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막연한 향수를 느끼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과거 사람들이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를 그리워 하며, 자기들도 그들처럼 미래를 꿈꿔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이야기한다. 그건 참 남한테 설명하기도 힘든 괴상한 감정이고, 이런 감정이 일반적인 사회는 분명 귀신에 홀린 사회다.
또 하나는 이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해 소재로 쓰인 대중음악 그 자체다. 이 책을 읽은 것이 이번으로 두 번째인데, 이상하게도 처음 읽을 때는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어 읽기 시작했다가 사회의 문제점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번에 다시 읽을 때는 문제점 진단을 위한 논리나 그 수사법이나 다시 보려다, 근거나 참고자료로 나온 수많은 음악 레퍼런스들에 감탄하게 되었다. (어쩌면 처음 읽을 당시에는 아직 대중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해 여기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 중 대다수를 잘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레트로 마니아>의 저자, 사이먼 레이놀즈 자체가 긴 경력을 가진 음악 평론가인데다 희귀 음반 수집에도 도가 텄기 때문에 근거로서 이야기하는 음악 이야기 뿐 아니라 그저 개인적인 경험이나 다른 음악 애호가 이야기만 늘어놓을 때조차 괜히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흥분되는 감이 있다. 실제로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듣고 싶어져 재생한 음반만 서른 장은 넘을 것이다.
다만 그런 기분 좋은 기대감과는 별개로 사이먼이 이 음악들에 대해 평하는 논조가 그리 좋지 않아 편하게 읽고 있을 수만은 없다. 힙합을 포함해도 솔직히 요즘 대중음악은 확실히 뭔가 새로운 장르나 혁신이라고 할 만한 것이 특별히 없다시피 하고, 락 씬은 포스트펑크 같은 옛날 옛적 음악을 되새김질하고 실험 음악도 영 맥아리가 없다. (내가 아는 한에서 그나마 새로운 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소위 '해체 클럽'이니 뭐니 하는 것이었는데, 솔직히 지금 보면 베이퍼웨이브만큼의 영향력도, 잠재력도 없는 것 같다.) 사이먼은 플라잉 로터스,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 등의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자기지시적인 음악이라고 평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전에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음악 매니아가 내게 요즘의 새롭고 좋은 음악을 한 번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나는 원오트릭스의 <R Plus Seven>을 추천했었고 그 때 그의 반응은, 좋기는 한데, 이게 정말 '새로운' 거냐는 눈치였다.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고, 이 책을 읽으며 그 때의 기억이 유독 명확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분명하리라. 늘 과거엔 아직 내가 듣지 못한 새롭고 놀라운 음악들이 아직도 가득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아쉬움이 가득한 시대다.
이런 책, 컨텐츠로 시대를 진단하는 책이, 너무 좋은데 아는 책이라곤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하고 이 책 말고는 모름... 이런 게 또 있을까?
솔직히 별로 생각나는 건 없음... 있으면 추천 받음. 마크 피셔(K-punk)가 사이먼 레이놀즈랑 친하고 사상도 어느 정도 비슷해서 글도 비슷하게 매력적으로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대중음악만 생각하고 읽었다가 혼났던 책.. ㅋㅋㅋ
사실 복고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화두인 것 같기도 하고(특히 건축에서).. 또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만이 옳은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
또 어떤 사람들은 '과거 사람들이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를 그리워 하며, 자기들도 그들처럼 미래를 꿈꿔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