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아시아, 2017.
사실 책 한 권이라 치기에는 너무 짧은 분량이다. 본문과 작가의 창작노트, 해설과 비평을 합쳐 겨우 백 쪽이 넘고 그나마도 사진으로 보다싶이 영어가 절반을 차지해 실제 소설의 분량은 한 30p 쯤 되려나. 뭐, 가끔은 이렇게 한 권 읽었다고 얘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분량은 작지만 할 말은 많다. 소설은 제목과 같이 피씨주의, 즉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 다룬다. 일단 내용부터 추려보자.
책은 1년에 1권의 장편소설-그중 첫 세편이 모두 미디어화됨으로써 출판사로 하여금 최소한의 중박 정도는 기대할 수준인-을 총 여섯 권 써온 작가 P씨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P의 네번째 장편소설이 SNS(묘사상 트위터) 상에서 논란의 중심에 오르는데부터 시작한다. 신작의 등장인물들의 묘사때문이다. 주요 악인으로 등장한 불법체류자, 남편의 돈을 떼먹고 도망가는 결혼이주여성, 때때로 화를 참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병신, 귀머거리를 들어가면서도 그를 감싸주고 위로하는 미모의 청각장애인 여성 등의 묘사는 SNS 이용자들에게 아주 가루가 되도록 비판받는다. 소설은 그러한 비판을 아주 자세히 보여주는데 트위터에서의 피씨주의 판을 접해온 사람이라면 어디서 많이 본 얘기들이 난무하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름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작가 P의 계정은 여전히 묵묵부답인채 한가로이 사진이나 찍어 올린다. 그를 대리한 출판사의 사과문 역시 수많은 비판을 받는다. 결국 P는 계정을 만든 이래 처음으로 사진이나 책 속의 글귀가 아닌 멘션을 올린다.
"저는 다큐가 아닌 소설을 썼을 뿐입니다. 소설로 누군가를 다치게 할 생각은 지금도 앞으로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본의 아니게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불편을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설정상 그렇게밖에 쓸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용 진행을 위해서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직업이나 처지나 성별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봐도 느낌이 살지 않아서 원래 생각대로 썼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들을 고려하고 지나치게 균형을 맞추려다 전체의 그림이 어그러지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소설의 개연성과 완성도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보았습니다. 현실에 아주 없는 일을 쓴 것도 아니고 소설적 과장과 허구가 들어간 겁니다."
이제 P의 멘션들을 향한 비판은 가히 폭주라 부를 만한다. 느낌이 안 사는 건 작가의 부족한 능력때문이다, 설정상 그렇게밖에 안 된다면 애당초 설정부터 바꿔라, 소설적 과장과 허구는 왜 만날 약자만을 대상으로 하나, 그렇게 다른 걸 다 내다버리기까지 해서 쓴 개연성과 완성도에 본인은 만족하나 등등등...
이후 해당 소설은 미디어화도 되지않고 출판사도 다른 신간 홍보에 집중하면서 점차 사람들에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P의 다섯번째 장편소설이 출간된다. 이번 소설은 이전까지의 주인공이 모두 30대 남성이었다는 비판을 비롯해 전작을 향한 비판을 감안한 것마냥 40대 모와 10대 딸이 주인공인 잔잔한 가족드라마다. 하지만 비판의 화살은 멈추지 않는다. 왜 시어머니의 병수발은 큰며느리인 주인공이 도맡아야 하는가, 시어머니의 죽음 이후 주인공의 가출하기 전 빨래와 반찬을 해놓는 건 가부장제 사회가 원하는 전형적인 어머니상일 뿐이다, 원조교제를 하러 나간 딸이 18살인걸 알자 용돈만을 쥐어준 남성은 성매매 남성을 향한 판타지이자 면죄부에 불과하다, 작가의 인식을 보니 아내가 불쌍하다 등등등... P는 이러한 비판에 단 하나의 멘션을 남긴다.
"현실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며 무엇보다도 저한테는 아내가 없습니다."
P의 이같은 멘션은 단 3건의 반응만이 달린 채 타임라인 바깥으로 밀려나고 결국 이 소설 역시 큰 각광을 받지 못한다.
이후 P의 마지막 소설이 출간된다. 소년원의 아이들이 모여 농구팀을 만들어 우승한다는 매우 단조롭고 평이한 이야기로 P의 팬들은 P의 소설이 지닌 매력인 사회를 향한 냉소가 사라졌다고 혹평한다. 한편 강간미수범도 있는 범죄자를 미화했다,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진 이들이 모두 범죄자란 것인가, 왜 어머니가 집을 나간 것만 문제시되고 아버지의 책임은 나타나지 않는가란 비판 역시 다시금 나타나고 그렇게 P의 계정은 사라진다.
이 모든 과정을 그저 관망하던 화자-네번째 소설부터 비판이 일어나자 더이상 P의 책을 남들에게 선물로 주지 않는 주부-에게 연속으로 문자가 네 통 온다. 돈을 빌려달라고 반협박하는 남동생의 문자, 아버지의 검사비 24만 원의 영수증을 찍어 보낸 어머니의 문자, 내일 모레 제사는 몇 시에 올 꺼냐는 큰형님의 문자, 그리고 정말 다 없던 일로 해도 괜찮겠냐고, 기지급된 계약금은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출판사로부터의 문자. 그렇다. 화자가 곧 P였던 것이다.
자 이제 내용을 알았으니 이 소설이 무얼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 얘기해보자. 저자가 창작노트에 친절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 소설이 현재의 혼란이, 나 자신뿐 아니라 어떤 이들에게 혹여 그럴듯하거나 편리한 알리바이로 작용하지는 않기를."이라고 써놯듯 이 소설이
트위터 피씨주의자들 다 죽어라! 이게 K-대중독재다!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물론 그렇게 읽을 마음으로 읽는다면 충분히 그리 작용하겠지만서도).
소설 속 P를 향한 비판을 봐보자. 틀린 말은 없다. 모두 정의로운 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치적 올바름을 지닌 소설은 존재할 수 있는가? 소위 재현의 윤리라 불리우는 것은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 재현 자체가 지니는 폭력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소설과 현실은 완전히 구분되거나 동일시될 수 있는가? 양자 간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이러한 물음들에 천착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피씨주의에 관한 책이라 보기보다 소설 그 자체에 관한 얘기라 봐야 하지 않을까. 다만 그러한 얘기를 유발하는 기제로써 작금의 유행하는 피씨주의를 이용한 것이 아닐까.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소설이 현실과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를 지닌 채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 비단 소설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문화 전반에 관한 물음과 고민을 작가 나름대로 써내려간 소설인 것 같다. 전술한대로 짧으니 관심 있다면 한번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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