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달, 2016.
한번 읽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지는 않는 편이다. 세상에 읽을 책은 많은데 굳이 한 번 읽은 책을 일부분도 아닌 전체를 정독할 필요성을 딱히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독후감을 남기지 않으면 자연스레 시간을 들여 읽어놓고도 내용을 까먹거나 읽었을 때의 감정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나마 비문학은 읽고 나면 적어도 몇 줄로 책의 핵심 내용을 설명할 수라도 있지만 문학은 대강의 줄거리만 잔존할 뿐이다.
반면 노래는 한 번 꽂히면 며칠에 걸쳐 수십, 수백 번이고 반복해 듣는 편이다. 물론 노래를 듣는데 독서만큼의 시간과 집중이 필요치 않은만큼 둘을 비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한 노래를 그렇게 수십, 수백 번 반복해 듣다보면 확실히 첫날에 10번 들었을 때와 일주일 뒤 100번 들었을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그냥 흘러보낸 가사들에 관심이 가고 가수의 호흡에 관심이 가고 어쩔 때는 온전히 가사에만 집중을 해보고 어쩔 때는 온전히 목소리를 제외한 소리에만 집중을 해보며 놀라고 신기해하면서 매력을 찾아나선다.
이 책의 저자 이랑의 노래들은 그런 나의 노래 목록 중 단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스무 살때 처음 접했을 때는 멜로디와 음색에 매력을 느껴 가사를 외울 생각도 없이 그저 흥얼거렸다면 이후 군대에 들어와서는 노트에 노래 가사들을 써서는 야간 근무할 때 속으로 불러도 보고 선임이 잘 땐 조그맣게 소리내 불러도 보고 그랬다. 몇 가지 노래 가사를 올려보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내가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에 대해서"
-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또 사람 죽는 것처럼 울었지
인천공항에서도 나리타공항에서도울지 말자고 서로 힘내서 약속해놓고 돌아오며 내내
언제 또 만날까 아무런 약속도 되어있지 않고
어쩌면 오늘 이후로 다시 만날 리 없는
귀한 내 친구들아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그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선수 쳐버리자"
다 유튜브에 영상들이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한 번 찾아 들어보도록 하고.. 뭐 아무튼 나는 군생활 동안 이랑의 노래들에서 매우 큰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가 썼다는 에세이에도 관심이 갔고 이 책은 상병 즈음 샀던 것 같다. 그렇게 이 책은 내가 근 3년 동안 손가락에 손을 꼽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며 재독한 책이 되었다. 오늘로 총 네 번인가 읽은 것같다.
책의 내용은 그저 이랑의 삶에 대해 구구절절 풀어쓴 평범한 에세이다. 10살이 넘는 고양이 준이치를 기르며 사랑해와 고마워에 인색하지만 사람과는 잘 사귀며 학교를 자퇴한 뒤 17살때부터 잡지에 만화를 그리며 생계를 꾸려나가온 뭐 그런 사람의 삶과 잡설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읽다보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힐링이 되고 살아갈 자신이 생긴다. 오늘 이 책은 읽은 이유도 마음에 안식이 필요해서 였을까. 두번째와 세번째는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설레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전날 이 책을 읽어야겠다 다짐을 하고 읽었다. 반면 오늘은 충동적이었다.
새벽에 후배와 전화를 하다 아침에 만났고 그를 포함한 다른 후배들과 이제는 갈 일이 드물 과방에서 서로 할 일을 하다가 금세 10cm 가까이 쌓여버린 눈내림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이런 날 낮술을 하지 않는 건 강호의 도리가 아니었다. 후배는 돈이 없었고 나는 돈이 있었기에 한 끼 식사치고는 과한 금액이지만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내가 사는 수밖에 없었다. 둘이서 감자탕에 소주 두 병을 마셨다. 오면서 유튜브 저장목록의 이랑 노래를 들으려다가 말았다. 집에 와서 이랑 노래를 듣고 잠에 빠졌다. 그렇게 3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처음 든 생각이 오늘 독후감은 이랑의 책을 읽고 쓰자는 것이었다. 왜였을까. 어쩌면 나는 책 자체의 내용보다도 내가 이랑의 노래와 책에 느껴왔던 그간의 감정들을 반추하는 것을 더 중점으로 두는 것은 아닐까.
태어나 처음으로 네 번째 다시 읽은 책인 이랑의 에세이는
역시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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