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챕터: 1부 팡틴 1편 올바른 사람.
정해진 분량을 읽으신 분들은
댓글에 각자 감상을 이야기하시거나
다른 사람의 감상을 보고 토의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토의는 1월 23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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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상:
빅토르 위고는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펜은 사건과 인물의 모든 사소한 디테일을 다루며 쉴새없이 움직인다. 그의 최고의 작품인 <레 미제라블>에서 이러한 성향은 더욱 두드러져서, 장발장의 이야기를 서술하다가도 갑자기 수녀원의 역사를 논하고 파리 하수구를 설명하는 등 이야기가 갑자기 뜬금포로 빠지는 일이 잦다. 현대의 독자가 읽는다면 반드시 쓸데없는 이야기로 지면을 낭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이 <쓸데없는 이야기>가 계속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위고 본인의 천재성을 더욱 부각시킬뿐더러, 오히려 그 존재를 통해 전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즉 이 장광설은 단순히 원고료를 더 받아내겠다는 하찮은 욕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위고가 쓰고 싶었기 때문에 쓴 것이며, 글에 있어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겠다.
정기수가 번역한 민음사판 <레 미제라블>을 기준으로 할 때, 위고는 무려 112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디뉴의 주교이신 샤를 프랑수아 비앵브뉘 미리엘 예하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비앵브뉘 예하는 1편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올바른 사람이다. 그는 주교좌의 고정 수입인 1만 5,000 리브르 중에서 1만 4천 리브르를 기부하고, 18세기 초에 건축된 웅장한 석조 건물인 디뉴의 주교관 또한 가난한 병자들을 위하여 내어놓는다. 그는, 잠시 위고의 말을 빌리자면, “확신을 갖고 설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웅변 그대로” 강론하고 말한다. 그는 검소하고, 청빈하며, 그 누구보다도 신실하고, 빈자를 위하여 생활한다. 로마의 정교 입장에서 보자면 그는 전혀 흠잡을 만한 데가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적어도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기준에서 본다면) 결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의 사상이 다분히 반혁명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황제 나폴레옹을 지지하지 않을뿐더러, 혁명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아마 이는 그의 가족이 혁명으로 파산하고 귀족의 위치를 누리던 가문이 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리라. 이는 그가 중간에 국민의회 의원 G의 임종을 지켜보며 나눈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혁명을 대놓고 비극이요 광기라고 칭하며, 앙시앵 레짐에 대한 어떤 애착마저 드러낸다. 인성적으로는 올바르고 완벽한 사람이지만, 사상적으로는 뒤떨어진 옛날의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올바른 사람으로부터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1-1 올바른 사람 감상평 :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익히 접한 요약된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주교는 장발장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초반부 잠깐 나오는 인물이지만 실제 원작에서 그의 삶만을 묘사하는데 한국어판 기준 100페이지를 넘게 할애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의 삶에 관해 읽으면 읽을수록 이 묘사는 불필요한 장광설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치그치 위고가 장광설을 좀 늘어놓는 경향이 있긴 해도 쓸데없는 말은 안 하더라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무리 성직자라지만 따뜻하게 먹여주고 재워주는 은혜를 베풀어줬더니 도둑질을 해버리는 사람을 그렇게 자비롭게 용서하고 남은 촛대마저 가져가라고 쥐어줄 수가 있을까 미리엘 주교의 평소 삶이 어땠는지를 읽고 나니까 비로소 알꺼같은 부분인데 예전에는 어째서 '이런 자비도 세상에 있을 수 있는거지' 라며 넘어갔던건지 모르겠다.
얼핏 보면 쓸데없어 보이고 지루한 여담일 수 있는 게 읽다 보면 전체 줄거리를 더 탄탄하게 해 주고 인물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해 주며 인과관계를 확실하게 해 주는 거지. 아무나 이거 못해. 적어도 위고 정도는 되어야 이 정도 하는 거지
또 올바른 사람 부분을 읽으니까 남은 5권동안 레 미제라블이 어떻게 전개될것인지 알 것 같았다. 위고는 이렇게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삶을 딴 길로 새듯 집중조명하면서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이 어땠는지 그들의 생각이 어땠는지 얘기하겠지.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모든 프랑스인의 고단했던 삶을 얘기하고 싶었던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이 부분은 좀 더 읽어봐야 알 것 같은 부분이다. 적어도 올바른 사람은 불필요한 이야기로 보이지 않았음. 근데 솔직하게 다음 독회부분 까지 넘어가서 읽어버렸는데... 장발장 나오니까 더 재밌었다는건 부정할 수가 없다...
그치 위고 같은 위대한 작가니까 이런 이야기를 써낼 수 있는거겠지
올바른사람까지만 읽었는데 장광설이라는 느낌은 1도 들지 않았어. 상원의원과의 대화 그리고 국민의회의원과의 토론 장면은 아주 흥미로웠음!!
나도 112p까지 읽으면서 지루한지 모르고 읽었음. 만약 이 글에 불필요한 장광설들이 가득했다면 지루했을 것 같음.
그런데 민음사 기준 63페이지 미리엘 주교가 상원의원이라 대화할 때 밤을 곁들인 거위 요리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트뤼프를 곁들인 칠면조 요리나 같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않됨 설명해줄 갤러 있어?
트뤼플을 곁들인 칠면조 요리가 상대적으로 수준이 높잖아. 거기서 상원의원이 한 말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얼토당토없으며 민중의 편리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주장이었으니 그걸 비유해서 밤을 곁들인 거위 요리(신앙)이 가난한 자들(민중)에게는 트뤼플을 곁들인 칠면조 요리(가치 있는 것)가 된다고 한 말 같음. - dc App
아 그런 뜻이겠네 고마워~~
미리엘 주교의 반혁명적 성향은, 혁명으로 주교의 집안이 망하고 망명중에 아내가 폐병으로 죽는 등 개인적 이유도 있겠고, 또 기독교인이자 주교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프랑스혁명의 반기독교적인 성격과 책의 1장에서 단두대, 가혹한 1793년으로 언급되고 있는 공포정치에 당연히 찬성할 수 없었을듯..
결국 미리엘 주교도 평범한 사람이라는거지..
책에도 나오지.. 단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고
11p"진위 여부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에 관한 소문은 흔히 그 사람의 생애나 특히 운명에서, 그 사람 실제 행위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나는 소문을 믿지 않으려고함. 내가 직접 확인하고 본 것이 아니면 그것의 진위여부를 알 수 없기에 특히 어떤 사람에 대한 소문은 항상 경계함. 13p"도시에 말 많은 사람은 흔해도 생각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때도 그러하듯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음. 생각하기 보다 자신이 보고싶은대로 보고 말하고싶은 대로 소문을 취사선택함. 말하는 사람은 많음.
수 많은 정보가 주어진 현재에도 소문은 날것으로 받아들여짐. 특히, 각자가 믿고싶은 소문에만 정보는 취사선택되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함.
13p"그러나 그의 이름이 오르는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분이었으리라. 그것은 풍설이고, 말이고, 이야기여서, 남부 지방의 힘찬 말로 이른바 횡성수설에 불과했으리라." 빅토르 위고가 말한 것처럼 나는 횡설수설에 불과할지 모르는 소문에 대해서 경계하고, 내 것으로 진실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그 소문은 내가 생각해볼만한 것이 되리라 생각했음.
미리엘 주교가 접한 미지의 빛 - 왕년의 국민의회 의원 G가 참 멋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한건 나뿐이냐..
이 부분이 1편의 포인트 였다고 생각함 22동의
그가 하는 말 중에 “양심이란 우리가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타고난 학문의 양”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말을 듣고 미리엘 주교님이 놀란 것처럼 나도 약간 놀랐다. 이 말인즉슨 그.. 인성이나 공감능력, 측은지심 같은 능력도 이성이나 지능의 문제라는 그런 뜻 아니냐
자신이 진실로 믿는 신념을 실제로 행하는 삶은 그 결과가 선이든 악이든 진실한 인생을 살았음에 멋있는 것 같음.
멋있는 사람이지 그 의원 만나기 전에 신같은걸 믿는건 비빌 언덕이 필요한 빈자들을 위한거라고 하는 귀족한테 그렇게 자기가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안다고 착각한채로 죽으면 그것도 좋은 인생이라고 한방 먹인 주교인데 그 주교한테 말로 안 밀리시는 분...
라그/// 그리고 나서 얻은게 결국 멸시와 조소, 중상, 추방, 고독, 외로운 죽음 .. ㅠㅠ
ㄹㅇ - dc App
“프랑스혁명은 이유가 있었소. 그 분노는 미래에 용서를 받을 것이오. 그 결과는 더 나은 세계요.” ㅠㅠ 감동
아..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였음.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 해야할까.. 어쩌면 구세대를 상징하는 미리엘주교와 대립되는 신세대(연령대는 비슷하지만..) 캐릭터를 상징하는듯이 느껴짐.
추가로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한테 다 줘버린 은식기와 은촛대들... 주교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사치품이었다는 묘사가 있더라 반짝거리는게 이쁘다고 가지고 있었다던데... 그걸 후에 다 줘버릴꺼라는걸 알고 보니까 유일한 소유욕의 상징이었던 물건들마저 자기의 신념을 위해 나눠준걸로 미리엘 주교도 장발장과의 만남으로 더 높은 차원의 사람이 된건 아닐까 싶음
그러게 .. 그러고보니 주교님은 G와 만난 이후에도 더 높은 차원의 사람이 됨... 대단한 분이셔 미리엘 할배 짱
이 부분을 보고 장발장과의 미래를 떠올리니까 미리엘 주교는 올바른 선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작중 시간적 배경인 1700년대 후반-1800년대 초반은 조선 정조 말기-순조의 시대였으며 홍경래의 난, 세도정치 등으로 사회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였다. 작품은 미리엘에 대해 그의 소박하고 남을 돕는 올바르고 신실한 사람임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10. 미지의 빛을 접한 주교에서 의원 G와 미묘한 긴장과 갈등이 있는 대화, 12. 비앵브희 예하의 고독에서는 성공의 사기성, 군중들의 우매함 등을 이야기 하는 신선하고 다른 리듬의 이야기들도 있어 읽는 맛이 있었다.
좋았던 문장으로는 "우리는 현실에서는 구체제를 무너뜨렸지만, 사상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었소. 폐습을 타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오. 풍조를 바꾸어야 하호. 풍차는 없어졌지만 바람은 남아있소", "권리에는 분노가 있는 것이오. 권리의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요.", "맨발로 걸어다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사륜마차를 타고 다니는 그런 사람 중 하나오", "진보의 난폭함을 혁명이라 부르오. 혁명이 끝나면 사람들은 인정하오. 인류는 곤혹을 치렀으나 진보했음을", "바다에 비치는 별자리와 진창의 진흙에 나 있는 오리 발자국을 혼동한다. 진실한 가치와 성공의 허울뿐인 유사성이 사람들을 속인다"
좀 이상했던 부분은 미리엘 주교에 대해 키가 매우 작아서 높이 있는 걸 집을 수 없어 도움을 청했다는 묘사가 있는데, 후반부에 키는 크지 않았으나... 라고 설명한 부분이 좀 어색하다고 느꼈고 매우 검소한 식사를 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미리엘을 보면서 작고 꽤 수척한 모습일 거라 상상하며 읽었는데 좀 뚱뚱한 편이라는 묘사가 있어서 뭔가 깼음
마지막 문장 개쩌는데 왜 난 기억에 없지 - dc App
마지막문장 "그들은 오리들의 발바닥이 진창의 물컹물컹한 개흙 위에 님긴 별모양의 자국들을 창천의 성좌들과 혼동한다 " 펭귄 번역임. 이래서 다들 민음 읽는구나
창천의 성좌.. - dc App
'바다에 비치는 별자리'와 '창천의 성좌'는 아예 다른데? 전자는 밤하늘의 별이 밤바다에 '비치는' 거고 후자는 그냥 맑은 하늘에 별자리라는 뜻이잖아? 꽤 다르구나 번역이...
레미제라블의 방향성을 보여준 장이라고 생각함. 독자가 특정 인물의 특성을 인식하고 그 특성에 따라 그 인물의 행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사실 이 정도의 분량은 절대 필요치 않지. 몇 문장만 할애해도 특정 인물에 대한 인상 정도는 충분히 강렬하게 남길 수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고가 이렇게 기나긴 페이지를 할애한 것은, 레 미제라블이 - dc App
인물들 개개인뿐만 아니라 그 인물들의 모습에서 시대를 포착해서 그려내고자 했던 소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1장은 비록 미리엘 신부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당시의 문화, 정치, 종교 등 시대적 배경을 모두 볼 수 있었지 않음? 앞으로 레 미제라블이 어떻게 이야기를 펼쳐갈 작정인지 독자에게 제대로 인식시켜준 장이라고 생각한다. - dc App
맞음 미리엘 주교의 삶을 묘사했는데 당시 프랑스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그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었는지까지 보이는거 같았음
동의함
동의함. 제목이 장 발장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인 이유가 있지
각 인물상이 가진 역사를 볼 수 있었음 ㅇㅇ
1장 다 읽고나서 프랑스혁명 연표 펼쳐서 1793년에 벌어진 사건들이랑 나폴레옹까지 훑어봤음. 역사 공부도 하게 해주는 소설 ㅋㅋ
내 예상보다 역사적인 얘기가 많이 나와서 놀랐음....
ㄹㅇ 나무위키에 연도만 쳐도 그 해당년도의 역사적사실 나오길래 같이 보면서 읽음.
내가 묘하다 여긴 점은 상원의원이나 혁명의원이나 둘 다 신을 믿지 않았고, 주교의 철학적인 입장에서 대립하는 인물인데 주교의 태도가 180도 달랐다는 점임. 혁명의원에게 가족의 일이 있어 적대적인 것은 둘째치고 상원의원은 놀리는 태도였다면, 혁명의원에 대해서는 진중했다는 게 의문임.
상원의원의 말이 단순히 더 가벼웠기때문이라서 라기에는 상원의원의 논리도 상당했던거 같아서
상원의원은 주교의 삶의 근간과도 같은 신앙이라는 것을 부정하려 했으니 한방 먹여준거 같고... 국민의원은 주교가 아직 놓지 못한 세속적인 편견을 차근차근 반박해줬으니 주교가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부터 자기가 더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걸 느낀거 아닐까
비슷하긴 한데, 내가 느끼기에는 비웃기 위해 갖는 신념(상원의원)과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신념(혁명의원)의 무게의 차이인가 싶더라 혁명의원이 말한게 더 세속적인 것에 대한 대화였던건가?
나도 사실 무신론자라서 말이지 상원의원 말을 읽으면서 이게 맞지~ 라고 생각했는데 주교의 대사에 한방 먹었잖아 자기가 세상 모든걸 알고 무덤에 간다고 알면 좋은거라고... 무신론자들에게는 신은 없다 신은 오갈데 없는 인간들의 허상이다 이런 주장이 논리있겠지만
사실 신을 믿는 사람들한테 그런 논리들은 그냥 아몰라 없어 그런건 그냥 없어 라고 주장하는거처럼 들리지 않을까? 그래서 주교도 그렇게 대답했을꺼 같음
나도 무교로 지냈던 기간이 길어서 상원의원 말이 위트를 갖춘 논리적인 말로 들렸는데ㅋㅋㅋㅋ 궁금한건, 혁명의원에게는 왜 똑같이 허를 찌르지 않았는가였음. 더 논리적였나? 애초에 혁명의원이 싸움을 건게 아니기에?? 누리고 있지 않은 사치를 근거로 비난을 했는데도 왜 참아준건질 모르겠음
주교가 왕당파이고 혁명의원들에 대해 안 좋은 의견을 가졌다는것 자체가 성직자가 되기 전의 인생의 연장선이니까 세속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음
그런건 아닐까? 주교가 그 사람을 만나보기도 전에 그 사람 집에 가려다 발길을 돌렸던 일종의 선입견, 혁명과 나폴레옹을 꺼리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때문에 애초부터 국민의원과의 대화를 죄책감 같은걸 가지고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 그런 차이점은 확실히 있었겠다. 버리지 못한 세속적인(정치적인) 부분이 평소의 주교답지 않은 모습을 만들어낸건가? 오히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장면인건가??
난 그렇게 느꼈음 국민의원은 주교가 응당 놓아줬어야하는데 놓아주지 못하고 자기 안에서 잠들게 냅뒀던 세속적인 부분을 제대로 깨우는 사람이었으니까 주교도 평소와 달랐던거 같음
내가 가장 강렬하게 읽은 곳은 여기였던 거 같음. 신민들의 대표자와 시민들의 대표자가 자신의 인생을 대화로 녹인듯한 대화였음. 혁명의원이 이긴 거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토론이 아니었다고도 느껴지더라 그저 둘 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내 뱉은 거 같음
주교가 상원의원과 국민의회의원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점은 이런 거라고 생각함. 주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임. 미리엘 주교는 ‘사랑’을 하고 있고 그것이 그의 사상의 전부라고 나옴. 그런데 상원의원의 철학에는 사랑이 없음. 하지만 국민의회의 원의 신념과 그의 인생은 ‘민중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함. 주교와는 방향성이 다를 뿐 공통점이 있는거
그래서 상원의원에게는 한방 날려줄 뿐 진지하게 맘을 열고 대화할 가치는 없음 하지만 국민의회의원과의 대화는 주교에게 사랑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했던거임
아 와 개쩐다 그런건 생각을 못해봤음. 어디서 깊이감에 차이가 생기는 걸까 고민해봤는데 그거구나 맞네 사랑의 부재가 신념의 경박함을 가져온거네
이거 좋다
예전에 장광설 때문에 질려서 중도 하차했는데 이게 번역이 잘 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직 초반부라서 그런건지 꽤 재미있게 봤음. 실상 1장은 미리엘이라는 인물 소개의 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몇몇 가지 에피소드를 잘 엮어서 인물의 특징과 당대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었음. 위고식 장광설의 특징은 인물의 특징을 부각시키면서도 그 안에서 당대 시대상을 잘 녹여내는 것이 아닐까 싶음. 그렇게 본다면 그 시대에 그런 인물이 나온 것은 필연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미리엘이 다른 건 다 포기하면서도 은식기만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게 귀족이었던 본성을 버리지 못함을 의미하지 않나 싶음. 그렇다면 미리엘의 헌신적인 행동들은 신앙으로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귀족적인 생각, 노블리스 오블리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함.
그러면 은식기도 나중에 포기하는 건 미리엘이 완전히 귀족적인 삶을 버린 거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함. 장발장에게 선행을 베풀면서 미리엘 신부 본인도 더 완전한 인간이 된 게 아닐까 싶음 - dc App
오 재밌다 이거
이말 듣고 생각햐보니 그런것같네. 100% 신앙에서 나오는 헌신보다는 본인이 서민, 취약계층 보다는 우월적인 위치에서 선행과 헌신적인 행동들이 나오는것 같다. 당시 시대적 배경과 미리엘의 출신성분을 본다면 뭐 당연한 얘기겠지...
난 일부러 위고 소설 두개 읽고 배경 대충 읽어보고 시작했는데 적응되서 그런지 생각보다 빠르게 읽히더라. 한 인물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 지루할수도 있는데, 한가지에 대해서 이렇게나 길면서도 재밌고 흥미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위고가 정말 대단하ㄷㅏ는 생각이 들었음 ㅋㅋ 우리 교구에도 미리엘같은 신부 있었우면 좋겠다 은식기나 쌔비게
나도, 위고는 처음이지만 워낙에 악명을 들어와서.. 조금은 걱정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지루하지도 않았고, 몰입도 잘 되었어. 심지어 100p가 넘어가는 미리엘 주교의 이야기가 곁다리 스토리라는 점을 알고있었음에도..
좀 늦게 시작을 했습니다. 고전을 읽을때 기쁨 중에 하나가 삶의 지혜를 읽을 수 있어서입니다. 레미레라블 1장도 많은 지혜의 문장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미리엘 주교의 캐릭터가 참 본받을 점이 많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운 캐릭이었습니다. 남의 위해서 희생하는 성직자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길게 설명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사소한 거까지 보여주려는 듯했지만 진짜로 살아있는듯한 생생함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아직 1장이라서 그런지 아님 제가 이 책에 매력을 알지 못하는건지 아님 제 수준이 못한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확실한건 독회를 참여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꺼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2장을 다 읽고는 2차 독회에 댓글을 달겠습니다. 벌써 4차까지 갔고 이틀 후면 5차인데
언제 따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열심히 읽어서 따라잡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