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승완, 총잡이들, 들녘, 2016.
최근에 일어난 문학 공모전 표절 사건을 접하자마자 생각난 책이 바로 이 소설이었다. 언젠가 시놉시스를 접하고 한 번 읽어보려고 했는데 딱 지금 시점이 몰입하기 좋을 것같아서 저번 주말에 주문했고 오늘 다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공노명. 그는 이름없는 무명 소설가로 노량진 고시텔에서 스스로 ‘잡문 콘테스트’라 부르는 별별 공모전들에 응모해 상금을 타 근근이 먹고 살아간다. 최근 들어 영 벌이가 신통치 못한 그는 얼떨결에 옆방에 사는 여자의 이름을 빌리는 대신 상금을 타면 일부를 떼어주는 식의 ‘박리다매’까지 강행한다. 그런 그에게 대학 시절 동기이자 출판사에 다니는 황이 은밀한 제안을 건넨다. 황은 주인공에게 자신의 출판사에서 50주년 기념으로 상금 3억짜리 장편소설 공모전을 개최하는데 자신이 심사의원으로 참여해 주인공에게 한 표를 줄 테니 만일 당선된다면 3억 중 1억을 달라고 얘기한다. 주인공은 1억을 5천만 원으로 깎은 뒤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2년을 넘게 소설 집필과 담을 쌓은 그는 차마 심사를 받는 본선까지 오를 자신조차 없었다. 한편 그는 최근 들어 계속해서 온갖 공모전들을 휩쓰는 동일한 이름을 발견한 뒤 그 역시 자신처럼 무명의 소설가인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그를 만나 황과의 비밀을 알려준 뒤 같이 소설 집필을 해 상금을 절반으로 나누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 은밀한 약속은 우연히 옆집 여자에게 알려지고 결국 그녀 역시 장편소설 집필에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소설의 내용을 자신들처럼 세 명이 모여 함께 소설 집필을 공모하는 내용으로 정한다. 문제는 소설 속 소설의 내용을 무엇으로 할까의 문제였다. 축구, 복싱, 타조 경기 등등의 내용이 나오다가 주인공의 아이디어에 의해 서부극으로 정해진다. 그들은 소설 속 소설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본따 서로를 부르게 된다. 주인공은 노래하는 돌, 무명 소설가는 매케인, 옆방 여자는 치코로 각자의 이름을 정한다.
그러나 서부극과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주인공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소설 공모전에 도전하는 옆방의 절름발이 남자가 쓴 서부극 소설의 내용을 주인공이 흘핏 본 뒤 베낀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치코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절름발이 남자가 방을 떠날 때 소설을 삭제하자고 바람을 넣는다. 그는 술김에 그러기로 약속을 하고 다음날 시도하지만 차마 성공하지 못한다.
주인공과 매케인, 치코의 동맹은 점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치코는 주인공에게 매케인이 자신에게 집적거리고 집에까지 찾아온다고 하소연한다. 주인공이 매케인에게 그러한 얘기를 꺼내자 매케인은 일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이 빠졌다고 말한다. 바로 치코가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이 쓰고 있는 소설을 보여주며 첨삭을 받고 있었음을 목격한 뒤로 감시를 하였던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주인공은 둘의 말 중 어느 쪽이 사실인지 고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매케인의 긴급한 연락을 받고 찾아간 치코의 옥탑방에서 매케인과 치코는 방문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매케인은 셋이 쓰는 소설말고도 자신만 따로 쓰는 소설이 있었고 그 초고를 치코에게 보여줬는데 그것이 온데간데 사라진 것이 실랑이의 발단이었다. 초고가 사라진데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치코의 모습에 매케인은 식도를 들어 위협하다 끝내 자신의 팔목에 칼을 갖다돼 자해를 한다. 자해 소동을 마무리하고 고시텔에 돌아온 주인공에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옆방의 절름발이 남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주인공은 그와 제대로 된 식사 한 번 못 해본걸 안타깝게 여긴다.
자해 소동 이후 매케인은 연락두절이 되었고 결국 치코와 주인공만이 남아 소설을 마무리하고 투고한다. 하지만 공모전의 결과는 수준 미달로 인한 당선작 없음이었다. 그 뒤 매케인과 연락이 닿아 만난 자리에서 주인공은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된다. 실은 그의 대학동기 황이 매케인에게도 같은 제안을 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매케인은 공모전의 결과가 나온 후 황으로부터 애초부터 출판사는 당선작을 뽑을 생각이 없었으며 그저 3억이라는 거금이 걸린 공모전을 통해 출판사 홍보 효과를 노린 것같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인공에게 전한다. 망연자실한채 여전히 공모전 사이트를 뒤적거리던 어느날 주인공은 치코가 웹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발견하고 그의 당선작이 바로 자신과 치코가 함께 쓴 소설과 절름발이 남자의 소설을 짜깁기한 내용임에 분노한다. 흥신소를 통해 겨우겨우 마주한 치코는 돈이 급해서 그랬다면서 무릎을 꿇고 빌고 주인공은 치코에게 당신은 작가가 아닌 글쓰기 기계라며 진정한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이 기억을 잊지 말라고 쏘아붙인 뒤 그를 떠난다. 책은 그 뒤 그가 다시금 소설을 쓸 마음을 다잡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일단 총평하자면 이야기 자체는 스무스하게 잘 읽히고 소재도 꽤나 흥미진진하지만 개연성이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당장 극초반에 주인공과 치코가 처음 만나는 장면도 그렇다. 아무리 돈이 급하다지만 처음 보는 옆 고시텔 방 사람에게 돈 200만 원을 빌려달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치코에게 공모전 이름을 빌려주는 대신 상금을 20% 떼어주겠다는 주인공의 제안까지는 뭐 그럭저럭 이해가 가지만 얼마 안 가 치코가 주인공의 도움 없이 혼자 글을 써 공모전에 당선되는 등 갑작스런 글쓰기 능력을 보여주는 건 또 무엇인가. 게다가 주인공의 대학 동기인 황은 무명 소설가인 매케인을 어떻게 알고 찾아갔으며 대체 매케인의 무얼 믿고 직장에서 잘릴 수도 있는 그런 제안을 했다는 말인가.
또 과거에 주인공이 직장에서 나와 소설가를 준비할 때 같이 동거했던 애인에게 했던 짓(술처먹고 직장 다니느라 늦게 들어오는 애인에게 너도 내가 한심하지? 오늘은 또 어떤 놈이랑 들러붙어 먹다가 이제오니? 등등 전형적인 문학한.남 짓거리)이나 평생 고생한 어머니에 대해 무심한 모습 등은 왜 썼는지 모르겠다. 독자가 주인공에게 분노를 유발하는 시도라면 이해가 가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아니면 글쟁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딱 저정도 수준의 인간들이라는 일종의 폭로인가? 후자라면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결말부에 들어서는 더욱 이야기가 좀 이상해지는데 갑자기 웬 중소기업 사장의 회고록을 대필하는 대가로 2천만 원을 받아 치코를 찾는 흥신소 비용에 썼다는데 어느 누가 책 한 권 안 낸 작가를 어떻게 알아 그런 작업을 몇 천만원씩 주면서 맡기는지 모르겠다. 혹여나 출판사 친구인 황을 통해 그런 작업을 구했다는 식의 얘기라도 있음 모르겠는데 그냥 딱 한 문장으로 이러이러해서 흥신소 낼 돈 생김ㅋ 이래버리면 뭐 어쩌라는 건지. 그렇게 돈 써가며 찾은 치코에게 갑자기 작가 어쩌구 하면서 일갈하는 것도 참 웃긴게 적어도 주인공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결국 마지막 장에서 한 때의 글쓰기 수업 제자에게 소설가라는 직업을 극구 반대하던 이전과는 달리 소설가라는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라는 문자를 보내며 ‘잡문 콘테스트’인 공모전이 아닌 소설 집필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끝나는데 이게 뭔가 싶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주인공이 진정한 작가로 거듭나는 것이 끝인가? 나는 솔직히 이런 교과서적인 해피엔딩보다 좀 더 어두운 얘기를 원했기에 아쉽다는 감정을 숨길 수 없다.
소재도 나름 참신하고 이야기 자체는 술술 읽어나가는데 다 읽고 나니 이게 맞나? 싶은 부분이 많은 그런 소설이었다. 아, 소설 속 소설인 서부극은 진짜 재밌더라.
결말부가 참 묘하네 - dc App
이런 내용이었구나.. 다시 읽어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