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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사단장 죽이기>뿐만 아니라 하루키 문학 전반에 대한 신선한 관점을 얻게 되어 좋았음. 특히 하루키 문학에 지속해서 등장하는 재즈 등의 음악을 "어떤 고상한 분위기를 자아내려는" 의도로 해석한 것이나, 노르웨이의 숲을 포함한 하루키 소설의 등장인물이 전부 "인공적 제작품"처럼 느껴진다는 저자의 분석은 숙고할 필요가 있어 보임.


2. 하루키의 의도를 "현실 - 판타지의 해명할 수 없는 영역 자체의 의미를 제시하려" 하는 것이라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위해 의도적으로 1인칭 남성 화자의 서술 시점을 택한다고 분석함. 또 1인칭 시점으로 인해 타자와의 거리가 증폭되고, 이는 공간뿐만 아니라 인물에게도 비밀스러운 정조가 발생하게 한다고 설명함. 이 부분을 읽고 <일인칭 단수>와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대사가 떠올랐음(특히 화자의 내면적 변화를 독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저자는 화자 - 독자의 불일치를 작가가 의도한 것일지 궁금해하는데, 이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음). 시점에 대한 이러한 분석이 <일인칭 단수> 해석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음.


3. 저자는 소설에서 제기하는 물음(예를 들어 '초상화는 ...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그림에 나타내는 것')을 스스로 "터프하게" 끝까지 탐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사단장 죽이기>가 아쉽다고 말함. 확실히 지금까지의 스타일의 한계는 이미 본 듯하니, 여기에서 질적 도약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 같음. 하지만 그 해답이 '관념적인 대답을 스스로 설정한 작품'인지는 의문이 듦. 난 사르트르식의 사회참여가 방안이 되리라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언더그라운드>를 읽어봐야겠음.



평점은 4점(5점 만점). 저자의 하루키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좋은 글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