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혼자가 되면 나를 위협하곤 하던 암울한 초조감에 더하여 오늘 아침 소노코를 보았을 때 내 존재의 밑바탕을 뒤흔든 그 슬픔이 다시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것이 오늘 내가 내뱉은 말 한 마디 한 마디, 내가 했던 행동 하나하나의 거짓됨을 거침없이 폭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면 그 모두가 거짓일지도 모른다고 망설이는 괴로운 억측보다는 거짓이라는 단정이 그나마 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것을 일부러 폭로하는 방법이 어느 틈엔가 내게는 편한 것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우도 인간의 근본적인 조건이라고 할 것, 인간의 마음의 확실한 조직이라고 할 것에 대한 집요한 불안은 나의 내적인 성찰을 아무런 실익도 없는 헛된 쳇바퀴 돌기로 이끌어갈 뿐이었다. 다른 청년이라면 어떻게 느낄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어떻게 느낄까, 이런 강박관념이 나를 다그치고 몰아세워서 내가 확실하게 얻었다고 생각한 행복의 한 조각조차 금세 산산조각내고 마는 것이었다.
요약해서 나를 불신하는 나의 내면이 끊임없이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과 나의 내면의 다름을 인식시키는 방향으로 나를 다그치고 몰아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느샌가부터 자신의 모든 행동들이 자신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위인지 아니면 남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기한 것인지 고통스럽게 성찰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자신의 행동 전부를 거짓이라고 단정짓는 편한 방법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라는 뜻이야?
그 해석이 맞는 듯 위악적인 말과 행동의 내뱉음을 통해 그간 내 모습 속에 나의 진정성이 심어져 있는지 아닌지 판가름 하는 어렵고도 모호한 줄타기를 포기하고 모조리 거짓 가면쓰기 계산적인 눈치보기의 영리함으로 일차원화하면 악의 일부 저질의 일부가 될 지언정 마음은 편하다는 뜻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