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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실존주의

프란츠카프카는 20세기 대표작가중 하나로 손꼽히고,그의 작품중에서가장 유명하고 가장 중요한 작품은 바로 ‘변신’이다.변신의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는 잠자고 일어났더니 커다란 벌레로 변해있었고, 그의 가족들은 그 벌레를 그레고르라고 인식하지만 벌레가 되어버린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내 그를 저버리고혐오하게 되고, 그레고르는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이야기만보면 왜 변신이라는 작품이 높게 평가 받는지 이해를 하지 못할수도 있다.일단 사람이벌레로 변한다는 이야기는 터무니 없고, 결말도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된것도 없이 그레고르가 죽는것으로끝나, 일반적인 관점으로 볼땐 그냥 기괴한 이야기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을것이다.하지만대중문학의 목적이 새로운 경험을 느끼게 하고 그로 인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면, 순수문학의 목적은 깊은생각을 하게하고, 그로 인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게 한다.이 순수문학의 관점으로 보았을때, 변신은 매우 훌륭한 소설이다.
변신을 비롯한 카프카의 소설들은 대부분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예를 들어,다른 단편인 ‘율법 앞에서’는주인공이 율법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문지기로부터 저지당하여 평생을 기다리고,부탁하다가 결국 생을 마감한다.이런 스타일의이야기는 순수문학의 목적인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오는데아주 효과적이다.상상해보자, 만약 ‘일을 하는 노동자’를표현한 두가지 그림이 있는데, 하나는 매우 사실적이게 표현한 그림이고 하나는 매우 비현실적이고 기괴하게 그린 그림이라고 가정한다면, 전자에서는 일을 하는 노동자의 표정, 그의얼굴에 맺힌 땀방울등을 통하여 우리는 노동자의 일이 매우 고단하고 힘들다는 것을 알수 있지만 그외의 것은 알기가 힘들것이다.하지만후자의 그림에서 노동자의 몸이 기괴하게 비틀려 있다던지, 손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고,눈코입이 그려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단순히 노동이 고되고 힘들다는것을 넘어서, ‘사회에서의 노동자는 결국 생명이 아니라 도구로서 이용된다’라는 해석을 할수도 있지 않을까? 카프카의소설 같은 경우는 후자의 그림과 같은 경우인데, 많은 사람들은 카프카의 소설을 실존주의적인 관점에서이를 해석한다.
실존주의의 의미는 대단히 모호하고,이를 확실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예를들수는 있다.예를 들어의자는 앉기 위하여 실존한다 따라서 앉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자라고 할수 없는것이다.하지만만약 이것을 인간으로 치환한다면 어떨까?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실존할까? 그리고 만약 그 ‘무언가’를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간이라고 할수 없을까?카프카의변신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숨겨놓았는데, 이 해답은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제부터 변신에서의 실존주의에 대한 해답을 나만의 방식으로 분석해 볼것이다.

1.변신의 ‘이유’에 대해 분석하기.작중 그레고르잠자가 벌레로 변신하지만, 이에 따른 어떠한 설명도 존재하지 않고, 마땅한이유또한 존재하지 않는다.소설을읽는 독자들은 그레고르가 아무 이유나 설명도 없이 벌레로 변한 것을 보며, 이상하다거나 아니면 비합리적이라고느낄것인데,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레고르와 상황과 달리 모든 것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일까?그레고르는아무런 이유도 없이 벌레로 변하여, 모든 혐오와 증오를 받으며, 공격당하고짓밟혀 결국 죽음에 이른다.소설에서의‘변신’은 현실의 부조리함과 혼란스러움을 나타내는데,모든 인간은세상에 태어나지만 마치 그레고르의 변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태어나야 하는 아무런 이유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따라서변신은 인간의 탄생 혹은 존재를 의미하는데, 이 해석의 따르면 인간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태어나서 그레고르가 그랬듯 공격당하고 짓밟히도록 실존한다는것이다.즉, 인간의 실존은 무의미하며 마치 벌레의 생존과 같이 고통스러운것이라고 해석할수 있다.

2.변신의 ‘인간관계’에 대해 분석하기상술한해석은 변신에서의 변신 그 자체로 인간의 실존을 해석했다면, 두번째 해석은 변신에서의 인간관계, 다시 말하자면 가족관계를 통해 인간의 실존을 해석해보고자 한다.변신에서의그레고르는 비록 벌레로 변했지만, 스스로 인간으로서 실존한다고 믿고 있으며, 이는 작중 그레고르가 여동생의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부분인 ‘음악에 이토록 감동받는데도 그가 정녕 괴물이란 말인가?’라는 독백에서 알수가 있다.하지만 그가 생각하는것과는 별개로, 그의 가족들은 그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잠자의 여동생은 ‘저런 괴물을 오빠의 이름으로 부를수는 없다’라고까지 말한다.대체 가족들은그레고르를 왜 인간이나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괴물로 여기며 그를 혐오하는것일까?여기서잠자의 가족들은 인간사회를 은유한것이라 해석할수 있는데, 그렇다면 잠자의 모습은 인간사회가 거부하는모습이라고 해석할수 있다.잠자는원래 집안의 가장이었으며, 잠자가 벌레로 변하여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게 되자 가족들이 그를 원망하는대목이 나온다.이것을단순히 잠자와 그의 가족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로 치환하자면,사회가원하는 모습( 괴물이 아닌 모습)이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앉지 못하는 의자는 의자로서 실존하지 못하듯, 인간도 인간으로 실존하지못한다는 사회적인 여론을 비판한다고 해석할수도 있다.

이 두가지해석이 내가 변신을 읽으면서 나의 나름대로 찾은 의미인데, 이 두가지 해석이 맞을지 틀린지는 아무도모르고 또 중요하지도 않다.프란츠카프카는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다.그 말처럼, 문학작품을 읽고 본인만의 생각과 해석으로 세상을 보는 또다른 시야를 갖는 것이 문학의 진정한의미이자 기쁨 아닐까.


첨 시작할땐 되게 공들여서 썼는데 후반부는 귀찮아서 대충 씀ㅋㅋㅋ그리 잘 쓴 글은 아니지만 평가하고 피드백주면 감사하겠음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