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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문학동네, 2020.

먼저 내가 하루키에 대해 읽은 책이라곤 노르웨이의 숲뿐이라는 점을 짚고 가야겠다. 그렇기에 이 단편소설집이 주는 현실과 공상의 무분별한 전환과 비경계성은 솔직히 말해 당혹스러웠다. 다 읽고나니 대강 작가가 하고픈 큰 주제가 무엇인지 얼핏 잡히는 듯 싶으면서도 내가 하루키 문학에 문외한이어서 틀린 것 같기도 하다. 결국은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는 글들이 아니려나. 솔직히 글 내내 작가의 자의식이 뿜어나오고 있어서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체 스스로에 대해서 '존나 뛰어나지는 않지만 어디가서 꿇리지는 않음'류의 표현이 외모부터 지적인 영역까지 얼마나 나오는지는 다른 의미로 좀 웃겼다.

그리고 왜 이리 섹스에 집착(?)하는 지 모르겠는데 그게 하루키 문학의 특징이라면 뭐 알겠다만 내 취향은 더더욱 아니다. 8가지 이야기 중 첫번째의 '돌베게에'부터 무슨 같은 알바생 집에 느닷없이 쳐들어가 느닷없이 옷을 벗고 느닷없이 "있지, 절정일 때 어쩌면 다른 남자 이름을 부를지도 모르는데, 상관없어?" 물어본 뒤 스스로 수건을 입에 문채 섹스를 하는, 이거 완전 라노벌 아닌가 싶은 등장인물이 나오다보니 초장부터 읽을 맛이 영 떨어진게 사실이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이나 '일인칭 단수'는 나름대로 읽어볼 만 했다. 다른 글들도 그렇게 막 나쁘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데 하나같이 주인공 남성을 위해 소환되는 여성 등장인물들의 취급이 거슬리긴 했다. 까놓고 말해 여성이 이 책에 실린 글들에 보편적인 문학성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인내심이 필요하지 싶다.

하루키 월드에 잘 아는 사람의 평론이라도 뒤에 써져 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