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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로만 표현되는 아름다움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좀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런 아름다움에 헌신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평론가가 되기도 한다. <은어에서 제비까지, 그리고 그 이후>, 신형철



/그는 그토록 철저하게 야비한 남자의 증오는 한 편의 찬송가와 같다고 단정한다. 그는 별다른 기대 없이 이 여자를 찾기로 결정한다. <알모타심으로의 접근>, 보르헤스, 송병선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후배는 내가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며,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배가 너무 고파서가 아니었다. 닭곰탕 한 그릇을 꼭 해치우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한 시대가 가만히 드러눕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 개떡 같은 음식들은 당시의 내 몸과 마음을 약탈하는 한편으로 완전히 멸망하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다. 나는 왕십리에서 그런 식으로 살아남았다. 그런데 대성식당을 필두로 내 이십 대의 증거들이 하나씩 사라지더니, 종내는 부귀집마저 떠난 것이다. 슬펐다기보다는 놀라웠다.

/어쩌면 나는 사진이 붙들어 맨 바로 그 순간에도 후미진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있었을지 모른다. 누린내 가득한 국밥에 코를 처박고서 불안과 외로움과 낙담과 또 뭐냐 아무튼 기타 도움이 안 되는 온갖 청승을 다 떨어 대며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날 부귀집을 에워싼 왕십리의 밤은 어쩐지 지금의 나로선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을 것 같다. 겪어 낸 시간은 어디론가 사라지는 대신 그렇게 켜를 이루어 눕는다.

<왕십리의 푸른 밤>, 박형서



/우리 가족에겐 조상이 십자군에 참가했다거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영웅을 배출했다는 자랑거리가 없었다.

우리는 퍽 과묵하고 비사교적인 버지니아 가계로서 미국 이주 후에 성취한 영광만을 소중히 끌어안았다. <벽 속의 쥐>, 러브크래프트, 정진영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농땡이 잘 안 되겠는데, 고모"


/이 땅 어디메고 아름답지 않은 고장이 있으랴. 그러나 아직도 얼마나 뿌리내리기 힘든 고장인가.

훈이가 젖먹이일 적, 그때 그 지랄 같은 전쟁이 지나가면서

이 나라 온 땅이 불모화해 사람들의 삶이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던져지는 걸 본 나이기에,

지레 겁을 먹고 훈이를 이 땅에 뿌리내리기 쉬운 가장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는 데까지 신경을 써가며 키웠다.

그런데 그게 빗나가고 만 것을 나는 자인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나는 가슴이 답답해서 절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후회는 아니었다. 훈이를 키우는 일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러이러하게 키우리라는 새로운 방도를 전연 알고 있지 못하니, 후회라기보다는 혼란이었다.


<카메라와 워커>, 박완서


/서점 주인은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 곁에 입식 간판을 세우고 2백 개나 되는 실내등을 전부 밝혀 영업을 알렸다.

밤이 되면 계단을 타고 번진 지하등의 불빛이 멀리서도 환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 불빛을 보고 가로수 밑을 걸어온 사람들이 지하로 내려와 단행본을 뒤적이다가 한두 권씩 사들고 가는 일이 생기면서 손님은 조금씩 늘어갔다.


/관리인이 모를 뿐이었다. 그가 모를 뿐 터널은 있다. 봐, 바람이 분다. 터널을 관통하는 바람이 이렇게.

나는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계란 껍데기를 뚫는 것처럼 쉬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양의 미래>, 황정은



/그런데 한번은 실리가… 그렇게 쓴 이야기를 밖으로 던져버린 적이 있었지… 창문 밖으로, 공영주차장과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창문으로.

그녀는 당장 그걸 주우러 내려가고 싶었지만 실리가… 실리가 도깨비처럼 눈언저리를 붉힌 채 서있었으므로 그런 실리를 지켜보느라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거실과 부엌에 달린 커다란 창들이 밤새 바람에 덜컹거렸다. 힘든 밤이었어...

나중에 몰래 내려가보니 그 이야기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도록 사방으로 흩어지거나 도저히 주울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버린 뒤라서 몇 장 남아 있지 않았다.


/납작하게 구운 과자와 사탕을 파는 가게에서 그녀는 어렸을 때 명절에나 먹곤 했던 무지개 젤리를 발견했고 그걸 한 봉지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한쪽에 겸손하게 서서 과자 가게 상인이 종이를 말아 뿔처럼 만든 뒤 거기에 젤리를 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종이 뿔을 손에 쥐고 이따금 젤리를 꺼내 먹으며 계속 걸었다.


<아무도 아닌, 명실>, 황정은




/피로가 몰려왔다. 누구를 대신해서 한 일 뒤에는 늘 그랬다. 어머니는 잠들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다락방에서 CCTV를 돌려보았다. 미호가 없는 반나절 사이에 어머니가 한 일은

바나나 두개를 먹고 두 손으로 얼굴을 북북 문지르고 미동도 없이 방바닥에 앉아 있다가 침대로 들어가 누운 것이 다였다. 

혼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는 행동이었다.

<기도에 가까운>, 조경란



/훔친 자전거를 들고 지나가는 중학생들의 뒤통수에서 고개를 돌리면 거대한 오피스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 간판이 떨어져나간 흔적이 남아 있고 보이지는 않지만 엘리베이터가 서너 번 이유 없이 멈춘 적이 있으며,
역시 이제는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중학생들이 서너 번 떨어져 내린 적이 있다.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 한유주


/"소설은 그런 게 아냐. 매우 육체적인 거야. 심장이 움직이면 마음은 복종해.
우리는 시인이나 평론가와 다른 몸을 갖고 있어. 문학계의 해병대. 육체노동자. 정육점 주인이야."
"너의 그 확신이 나는 불길해." <옥수수와 나>, 김영하


/천성적으로 소심한 소냐는 예전에도 자기가 누구보다 더 쉽게 파멸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누구든 대가를 치르는 일 없이 그녀를 쉽게 모욕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고 온순하고 고분고분하게 대하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느낀 절망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조광 이월호의 동해는 작년 육칠월경에 쓴 냉한삼곡의 열작입니다. 그 작품을 가지고 지금의 이상을 촌도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과거를 돌아보니 회한뿐입니다. /가끔 글을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서울의 흙을 밟아볼는지 아직은 망연합니다. 우제 이상


이상의 편지글에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었다. 허수아비는 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춤을 췄다. 러시아인은 걸린 부분을 하나씩 풀어주었고,

허수아비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다시 춤을 추며 밤 속으로 멀어져 갔다. 러시아인은 손을 흔들면서 그의 등에 대고 러시아어로 소리쳤다.

"잘 가."


/해는 막 졌고 저녁놀이 도시를 역광으로 비추고 있었다. 도시는 놀리는 가축 우리를 둘러싸고 쭉 뻗은 목가적인 텅 빈 공간을 낮은 절벽처럼 감싸고 있었다. 

도시는 폭격기가 올까봐 등화관제를 했다. 그래서 빌리는 해가 질 때 도시가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 가운데 하나를 드레스덴에서는 볼 수 없었다. 

도시가 불을 하나씩 반짝반짝 켜는 것. 그런 불빛을 반사할 만한 커다란 강이 있어, 이 강 덕분에 밤의 반짝임은 정말 예뻤을 터였다. 그 강은 엘베 강이었다.


<제 5도살장>, 보네거트, 정영목



/"이봐요, 손님이 만약 물고기라면, 대자연이 그쪽을 보살펴주지 않을 것 같소? 겨울이 되기만 하면 물고기들이 죄다 얼어죽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죠?"

"그럼요, 하지만 … " "그렇게 생각하면 됐어요." <호밀밭의 파수꾼>, 샐린저, 공경희



/여자도 알지 못하는 새 직원들이 늘었고 그만큼 큐비클 수도 늘어나 있었다. 무수한 가로선들을 무수한 세로선들이 나누고 있었다. 미로 같았다. 그 많은 큐비클 어디에선가 누군가의 머리가 불쑥 드러나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면 그게 설사 사람이 아니라 문어라 해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후, 가로지르다>, 하성란



/내 이맘때의 글쓰기에 대해 동료들과 농담처럼 이야기하다가 시인 김정환의 '만년문학은 치매의 문학이다'라는 그럴듯한 소리를 얻어듣게 되었다.

/이맘때의 내 문학은 치열한 전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쓸어버린 뒤의 폐허에 남아 있는 연민을 위한 것이 되리라. <낯익은 세상> 작가의 말, 황석영



/묘지의 오솔길을 걷다가 조금 떨어진 곳의 장례식이 눈에 띄었다. 장례식을 주관하는 사람은 품 안 가득히 꽃을 안고 친지,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한 사람 앞에 하나씩. 그는 사비나에게도 하나를 내밀었다. 그녀는 장례 행렬에 끼어들었다.여러 묘지 장식물을 돌아가야만 했다. 그녀는 몸을 숙여 내려다 보았다.

구덩이는 아주 깊었다. 그녀는 꽃을 던졌다. 꽃은 작은 나선을 그리다가 관에 부딪혔다. 보헤미아에는 이처럼 깊은 무덤이 없다.


/문화부장관으로부터 사력을 다해 도망치려 했지만 장관은 그의 관까지 따라왔다. 그는 무덤 앞에서 소련 연방공화국에 대한 시인의 사랑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어쩌면 그는 이런 황당무계한 말을 퍼부어 시인을 벌떡 일어나게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세계는 너무 추해서 누구도 죽은 자 사이에서 부활하기를 원치 않았다.


/유일하게 사진기들이 찰칵거리는 소리만 이국 벌레들의 노래처럼 그 침묵 속에서 울렸을 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쿤데라, 이재룡



/모든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는 다른 작가들이 성취한 것에 의해 그들의 가치를 평가했고, 다른 작가들은 그가 구상하고 계획 중인 것들로 평가해 주기를 원했다.


<비밀의 기적>, 보르헤스, 송병선



/피 묻은 이부자리 위에서 힘없이 흔드는 손이 내일 권총 방아쇠를 잡아당기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오늘 저녁 마지막으로 용서를 해주고 작별을 고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림자 박물관>, 제수알도 부팔리노, 이승수



/언제나 '사랑하며 존경하는 아버님께'로 시작하지만 끝에 가서는 마구 흥분하다가 결국엔 화를 내고 마는 것이었다. 

마음은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다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하고 싶은데 능력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용경식



/어쩌면 우리는 이 생을 산다는 건 땅에 소금을 뿌리거나 얼음 조각을 옮기는 일처럼 그렇게 무용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런 말들을 뜨겁게 나눌 수 있게 될지도 모를텐데. <자기 앞의 생> 서평, 조경란



/심지어 누나는 할머니의 말을 노트에 받아 적기도 했다. 누나 말에 의하면 그걸 두세 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슬퍼진다고 했다.

누나는 아버지에게 미친년이란 욕을 자주 들었다. 할머니 꿈을 꾸고 나니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


<휴가>, 윤성희



/수학은 형태와 양에만 작용한다.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한 명을 더하면 2인가? 진리는 제한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은 이 세상에서 죄악이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것은 수학이 아니었다. 그저 판타지를 판 것 뿐이다. 그러니 …… 차라리 유령을 믿어라.

그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그냥 강의실을 나왔다. 웅성거릴 줄 알았지만 모두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몸>, 박성원



/얼마나 걸렸을까? 몇 초 안 걸렸을 거야. 내 몸이 완전히 물 속에 빠질 때까지는. 그런데 내게는 무척 긴 시간이었지. 

내가 허우적거리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물장구를 치고, 첨벙대고. 

그런 풍경이 필름이 끊어진 극장 스크린처럼 멀어지는가 싶더니 코와 입안으로 물이 들어왔고, 그 다음은 완전히 캄캄한 공포 뿐이었어. 

그리고,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지. 이제 그애에게도 그렇겠구나.



<동욱>, 김연수



/어느 조그만 케이블 방송사가 새로 만든 (그러나 시청률 부진으로 약 2년 뒤 폐지된) 기인과 달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빛바랜 화면 속에서,

김기수 씨는 라면 그릇을 들고 환하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저 찡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들 하지만) 웃고 있다.


/진행자는 날카롭고 비판적이면서도 단호하기 그지없는 질문을 연달아 던져댔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동영상을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 앞에서

김기수 씨는 그저 이마의 땀만 닦으며 무릎에 놓인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을 접었다 폈다 할 뿐이었다. (결국 방송이 끝나갈 즈음, 그 책의 표지는 완전히 닳아버리고 만다) <라면의 황제>, 김희선



/일천구백삼십사 년의 이 세상에도 기적이 있다. 그것은 P가 굶어 죽지 아니한 것이다. (...) 

그에게는 그러한 용기도 없다. 그러면서도 죽지 아니하고 살아 있다.

그렇지만 죽기보다 더 귀찮은 일은 그를 잠시도 해방시켜 주지 아니한다.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드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 하는 까닭이다.

침침한 방 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을 알 길이 없다.


/나는 이불 속에서 아내에게 사죄하였다. 그것은 네 오해라고...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날개>, 이상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


/모든 것이 흔히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 때문이라고 아내의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 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무진기행>, 김승옥



/훌륭한 번역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두말할 필요 없이 어학 실력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특히 픽션의 경우) 나름의 편파적인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것만 있다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내 작품이 번역될 때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편파적인 사랑이야말로 내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이영미



/언젠가 아빠는 내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김욱동



/그리고 온 세상의 여러 계단을 둘이서 나란히 오르내리고 싶다. (…) 잠자는 오래도록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모닥불을 쬐듯이 혼자서 그 온기를 조용히 맛보았다. 그러고는 마음을 정하고 검은 지팡이를 들고 계단으로 향했다.

다시 2층으로 가서 옷을 올바르게 입는 방법을 어떻게든 깨쳐보자. 그것이 우선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 세계는 그의 학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잠자>, 하루키, 양윤옥



/77쪽 분량이었다. 그것은 짧은 것이었지만 그의 소유였다. 그것은 그가 가진 전부였다. 그의 이야기였다. 당신도 알다시피 한 남자의 이야기는 그의 부적이다.

그의 이야기를 빼앗는 것은 그의 부적을 갈취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 사람의 존재와 같은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소설과 이산종교>, 신진범 (원래 출처는 잘 모르겠네요)



/사실, 지연은 이미 후속편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민들레와인편'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다만 지연이 망설이는 것은, 이렇게 자신의 내밀한 정서를 남들에게 까보이는 것에 대해 어떤 종류의 껄끄러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연이 느끼는 껄끄러움은 일종의 부끄러움이었다. 아니, 부끄러움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떨리는 어조르 자신의 진정을 엿보였을 때 행여나 조소를 받지는 않을까.


<언젠가 크리스마스 섬 홍게의 행진>, 조현



아름다운 건, 하루오를 제외한 모든 것이다.

그게 하루오의 말이었는데, 어딘지 건조한 그 말이 그때는 아주 조용하고 희박한 공기처럼 느껴져서, 뭐라고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절반 이상의 하루오>, 이장욱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맥주. 안주. 이것을 주세요...... 알은 자기가 말한 문장의 뜻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어떤 단어가 어떤 뜻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알은 어쩐지 다급해진 목소리로 다른 문장들을 내뱉었다. 여보세요....... 울지 마세요........ 그렇지 않습니다.......


<올드 맨 리버>, 이장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