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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 독서의 배신, 깊은나무, 2020.

선입견보다는 훨씬 괜찮은 책이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실제로 겪어본 '맛'이 확실히 느껴졌기때문이었다.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거나 저자와 같이 권수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라면 분명 도움이 될 부분도 없지 않겠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사로 3년 동안 1천 권 읽기를 성공했지만 정작 남은 게 없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목표 달성에 급급해 나중가서는 어린이 그림책도 나름의 의의가 있지않냐는 자위를 하며 결국 천 권을 채운다. 하지만 그중에서는 포스트잇으로 감명깊은 문장 표시를 했거나 몇몇 문장을 필사까지 해놓고 정작 읽었는지도 까먹은 책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완전독서의 부재때문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완전독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 번 읽는 삼독과 읽고 기록하고 실천하는 삼행에 있다. 솔직히 두꺼운 비문학의 경우 삼독은 버겁다고 생각한다. 해당 학문을 업이나 덕질로 삼지 않는 이상 말이다. 내 생각에 삼독은 본인이 재밌거나 감명깊게 읽은 문학이나 삶의 원칙에 비견될 정도로 생각하는 비문학에만 해당되도 충분하다 여긴다. 저자 스스로도 모든 책을 삼독할 필요성은 없다고 하기도 하고.

읽고 기록하고 실천하는 삼행에 있어서는 백 이십프로 동감한다. 실천과 유리된 독서는 그저 글읽기에 지나지 않는다. 난 이 실천의 범위를 좀더 넓게 파악한다. 물질적 행위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사유적 측면에서 변화가 있다면 그것 역시 실천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유의 변화는 계기가 없어서 행위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라 여기기때문이다. 또한 모든 책을 실천의 영역으로 옮길 필요도 없다. 나와 반대되는 주장의 책들도 많지 않은가.

내가 가장 비판적으로 바라본 이 책의 내용은 바로 저자의 읽은 책과 읽힌 책의 구분이다. 저자에 따르면 읽은 책은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과 같이 어색하고 답답한 독서다. 읽힌 책은 그 반대로 내게 대강 걸쳐도 잘 어울리는 옷처럼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독서다. 저자는 자신은 읽은 책을 억지로 완독하느라 고생한 기억을 회상하며 애초에 책을 고를 때부터 읽힌 책을 고르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책에 대한 그정도의 취향을 지니는 사람은 드물다. 저자 역시 비록 권수채우기에 급급했을 지라도 천권을 읽고 나서야 나름대로 책을 골라 읽지 않았는가.

본디 처음에는 다 어려운 법이다. 물론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는 책을 읽어 독서 자체에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누가 보아도 쉽고 읽히는 책만 읽어버릇하면 결국 독서분야가 국한되고 만다. 설령 안 읽히는 분야의 책이라도 적어도 세 권 정도는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하루 한 권 독후감만 실천해도 저자의 과거 권수채우기 흑역사는 방지할 수 있을 것같다.  ㅋㅅ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