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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연 그토록 완벽하게 자신의 천성을 배반할 수 있는 존재일까? 가령 한순간이라도. (111p)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간단한 문장이다. 그러나 질문을 살짝 바꾸어 '고쳐 쓸 수 없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입술의 갯수만큼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천성, 태도, 마음가짐, 본능, 솜씨, 재능. 시간이라는 직선의 축 위에서 끝없는 변주를 거듭하는 삶의 주인인 사람더러 이런 문장을 달아준다는 것은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은 죽도록 바꾸고 싶어도 안 바뀌지만 어떤 것은 죽도록 지켜내고 싶어도 끝끝내 변화하고 만다. 그리고 '고쳐 쓸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선택으로 주어진 것도 아닌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변하는 그것이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과 공존할 수 없는 숙명인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억울하다 못해 목놓아 절규하고 싶을 만큼 괴로울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동성애자이며, 사회의 보편성과 배치되는 자신의 성적 지향성에 의해 고뇌에 시달린다. 누가 그를 탓할 수 있을까? 작품의 제목이 가면의 고백인 것은, 주인공이 작품 속에서 내내 사회가 요구하는 '평범한 존재'가 되기 위해 가면을 썼음을 의미한다. 이성의 육체에 욕정하지 않는, 그러나 반대로 동성의 육체─특히 취향에 맞는 것이라면 적나라하다 싶을 만큼─에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욕정하는 그의 가면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과는 완벽하게 배치되는 모습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연극적인 주인공의 태도와 더불어 작품의 주인공이 불치병처럼 시달리는, 어쩌면 그가 써야 했던 가면의 부작용인 '죄에 앞서는 회한'으로 대표되는 불안, 그리고 불안을 외면하기 위해 주인공이 스스로 꾸며낸 자기기만까지 서술 속에 덧대어지며 언뜻 보기에 작품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별개로 주인공의 심리를 파고들고 그에게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주인공과 독자 사이의 난처한 간극을 메워주는 것은 작품의 후반, 소노코와 키스를 한 뒤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당한' 주인공의 절망이다. 그가 여지껏 가면을 쓰고 자기기만을 해왔던 심리는 단순히 '사회에 섞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적인 태도만이 아니라 '사회에 섞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사회에 섞일 수 없는 숙명을 가진 인물만이 가질 수 있는 비참한 바람에서 비롯된 일종의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여지껏 자기기만과 다층적인 고뇌 속에 뒤엉켜 쉬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던 그의 비극적인 숙명은 이 순간 완성되어 독자들의 눈앞에 발가벗겨 내놓아진다. 주인공은 소노코와 입술을 맞대며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소노코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의 눈앞에서 사랑의 두근거림에 젖어 있었다. 이 순간엔 무엇도 없다. 부조리한 공허. 고즈넉하고도 파괴적인 허무가 작품의 정서를 통째로 지배하고 자신의 불안을 애써 기만으로 외면해가며 사랑을 빌미로 자신의 '정상성'에 유일한 희망을 걸었던 주인공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숙명을 피할 수도 달아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이 장면 이후로 물 흐르듯이 주인공이 소노코의 마음을 배신하고 그 뒤의 해후에서도 끝내 마음의 간극을 처음처럼 좁히지 못하고 결말까지 다다르는 서사는 한없이 차갑고 무미건조하다. 둘 사이에는 설렘 대신 불안이, 기대 대신 걱정이, 사랑 대신 모호함이 자리할 뿐이다. 어떤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미시마 유키오는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듯 내보이는 깊은 통찰과 범인의 시각 너머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끄집어내어 문장으로 새로이 빚어낼 줄 아는 작가다. 그런 그가 굳이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작품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다 아무렇지 않게 결말을 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저 그가 타고난 비극이 그에게 잔혹한 냉소를 던졌을 때, 그가 도대체 무엇을 느꼈던 것인지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죄에 앞서는 회한이라는 안타까운 숙명 앞에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한 청년의 몰락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