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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상류사회의 일원이었던 래리가 헤픈 삶 (창녀)을 사는 소피 맥도날드와 결혼한다 했을때
화자인 작가에게 래리의 전 약혼자인 이사벨은, 래리가 왜 저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묻는데
이때 작가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줌
마태복음의 구절을 인용, 응용한 거였는데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에게 3번 유혹받았다는거는 많이들 아는 이야기일 거임
마태에 따르면 예수는 결국 유혹을 뿌리쳤고
그런데 작가는, 사탄이 네번째 유혹을 했다고 이야기함
그 유혹은, 그 어떤 달콤한 것도 아닌
"네가 모욕과 고통을 참아내고, 가시왕관을 쓴 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수 있다면 너는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만큼 위대한 사랑이 어디있겠느냐?"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거란 유혹이었음
즉, 예수는 자기희생이라는 욕망에 굴복했다는 말인 동시에, 래리의 행동이 소피를 위한 사랑도, 물질적 욕구도 아닌
자기희생이라는, "정욕과 배고픔마저 이겨낼 수 없는", 거대한 욕망이라는 거였고,
또 작가는 자기희생을 하는 순간,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보다 위대하다고 말함
왜냐하면, 신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자기희생이라는 행위 자체를 할 수 없고
차선으로 자신의 아들 (예수) 를 희생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인데
자기희생이라는 행위를 거대한 욕망이라 해석한거도 흥미로웠고
또 각종 종교인, 그리고 봉사자들이 어떻게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수 있었던 듯함
오 그 비유가 이런 뜻이었구만
내가 레리를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위선적 인물이라 생각하는 계기중 하나임. 그거 말고는 해탈했으면 고행을 일부러 계속하기보다는 물질적인것에 아예 신경을 꺼야 하는데 레리는 굳이 물질적 풍요를 신경쓰고 염려해서 일부러 자기 부를 없엔 것부터가 소승불교에서 한때 유행하다가 비난의 대상이 된 자학적 고행 아니고 뭐겠어
나는 사실 불교 역사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있지는 않고, 법구경이나 숫타니파타를 꽤 자주 펼쳐보는 수준인데 어딘가에서 수행자가 무의미한 고행을 감행하는 걸 비판하는 구절을 읽어서 나온 억측이다. 단어는 정확하지 않아도 레리의 고행이 모순되고 비판받을 행위라는 걸 말하고싶었음
레리가 인도에서 고행의 무가치를 느끼고 소피를 통해 자신의 위선을 자각한 뒤에 재산을 포기하고 운전사가 된 행위는 '가난으로서 고행하기 위함'이 아닌 '대중 속에 섞임을 위함'이라 생각하면 레리가 그때까지 물질에 연연하고 그 생각에 정념을 방해받는다고만 볼수는 없겠네. 다른사람 말 듣고 생각 바뀌는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 부분이 결국 래리가 깨달음을 얻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함
와 진짜 생각도 못해본 의견이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