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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인간의 역사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단어이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욕망을 관통하며 모든 것을 축약해놓은 단어이기도 하다. 항상 사람은 이 돈, 당시의 화폐 가치의 많고 적음의 여부에 따라 삶의 방향과 방식,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물론 현대사회에 들어서도 바뀐 점은 없었다. 오히려 발전하고 다양하게 바뀐 삶의 방식에 맞춰 더욱 악랄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조세희는 대부분의 사람이 첫 번째로 추구하던 이 가치 앞에 무언가를 내세운다. 바로 인간이 인간이라 불리는 이유, 인간다운 삶의 가치에 대해서 말이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깊이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아니면 모른척했던, 그런 사회의 가장자리를 꼬집어낸다. 난쏘공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적이 없다." 조세희의 글은 천국 속에 살던 현대인들에게 다가온 충격이었으며, 잠깐이나마 지옥을 직접 체험하게 만들어준다.


난쏘공은 영수, 영호, 영희 세 남매의 시점으로 사회를 체험하며 바라본다. 이미 순수와 이성과 같이 보이지 않는 가치는 물질의 밑에 있으며 약자를 지켜주어야 할 법은 강자와 물질의 곁을 지킨다. 그런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세 남매의 삶은 참담하다. 난쟁이 가족의 삶이 지옥과도 같은 이유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은 대물림 된다. 난쟁이와 그의 부인이 노비 집안 출신이라는 노비 매매 문서는 지금까지 그 가난이 되풀이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영수 또한 노비 매매 문서를 읽고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이 지옥은 세 가지 길이 있다. 다음 세대로 가난을 되물려 주던가, 이웃집의 명희처럼 모든 것을 끊어버리던가, 아니면 성공해서 가난의 되물림을 끊는 길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의 시스템은 약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고 하고 싶어 했던 영수는 그토록 들어가지 않겠다던 공장으로 들어가 일을 한다. 벗어날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시스템이 너무나도 안타까우며 차갑게 느껴진다.


소설 속의 사람들 또한 너무나도 차갑고, 잔인하다. 입주권을 만원을 깎아주지 않으면 안 사겠다는 아줌마, 입주권으로 영희를 산 재벌 남자, 공장의 부조리함을 항의하려다 동료 직원에게 밀고 당해 잘린 영수와 영호. 진심을 물질보다 위에 놓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런 일들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잔인하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결국 이 문장은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글이며 우리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방송 매체에서 보여주는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흘리는 눈물은 결국 스쳐 지나가는, 휘발되는 감정이다. 대중들에게 그런 감정은 잠깐의 자극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기만적인 이야기들에 취해 우리는 진정성의 가치를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결국 글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간단하면서 충격적인 진리를 담아낸 조세희의 글 또한 말이다. 그렇지만 난쏘공은 어떤 힘이 있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사람을 바꿀 힘이. 난쏘공은 그런 강한 진정성의 힘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아닐지, 잔인하고 추악한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가치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말이다. 수도꼭지의 작은 물줄기 하나에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던 신애처럼 말이다. 난쏘공은 제목 그대로 조세희가 사회에 쏘아 올린 정말 아주 작은 그런 공이다. 결국 언젠가는 떨어질지라도 하늘을 보며 종이비행기를 날릴 수 있는 조세희의 마음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답다. 


참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임. 안 읽어본 독붕이는 없겠지만 혹시 있다면 꼭 읽어보길 바랄게 정말 좋은 작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