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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의 발자취를 정확히 그려내고자 하는 학문이다. 종종 사료의 소실이나 역사학자가 행하는 해석의 주관과 방향에 의해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판이한 결론이 내려질 수는 있지만, 그것은 과거의 사건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관점과 인상만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는 손톱만큼의 영향도 주지 못한다. 이처럼 과거는 확고부동한 불변성을 가졌으며, 역사라는 학문은 변함 없는 과거를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더 높고 명확한 경지의 불변성을 지속적으로 좇는 성질을 지녔다. 미처 확언할 수 없는 사건과 시대에 대해 각자가 옳다고 믿는 발자취를 최대한 정확하게 그려내려고 노력하는 많은 전공자들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주장과 반박을 학계에 투고해 더 명확한 과거를 묘사하는 것에 기여하고 있다.
오늘 이야기할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명확히 보이지 않는 사건을 최대한 명확하고 세밀하게 그리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는 전공자들 중 한명이다. 그의 필생의 역작 『총,균,쇠』로 그려낸, 인종마다, 지역마다 다른 역사가 진행된 이유는 인종, 문화의 차이가 아닌 지역 환경적 특성의 차이 때문임을 증명하고자 한 '그림'은 학계에서도 오랜 기간동안 주류 여론으로 자리잡았다. 지엽적인 부분에서의 반박은 나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지만, 오랜 기간동안 중심 논지에 흠집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유의미한 반박을 마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책이 학계 내에서 구축한 높은 위상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중심 논지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한다는 다소 따분한 서술을 하기 전에, 문명의 발전 속도의 차이는 식량 생산량의 차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미리 언급해두고 싶다. 『총,균,쇠』를 읽은지 오래되었거나 아직 접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점을 미리 염두에 두는 것이 내 지지부진한 글을 더 속도감 있게 읽기에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식량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의 경우, 사회 구성원들의 수도 많아져 구성원들 중 여럿이 식량 생산에 몰두하지 않더라도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다. 이러한 지역은 계급이 공고화되고 기술 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인원이 늘어나 식량을 얻기가 힘든 지역보다 기술의 발달이 현격히 빠르게 일어난다. 사실상 다이아몬드가 이 책에서 이야기한 '환경적인 차이'는, 거진 식량 생산에 유리한 지역과 유리하지 않은 지역으로 이분화해서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 정도이다.
앞서 공언한대로 획득하는 식량의 양적 측면에서 수렵 생활과 농경 생활을 바라볼 때, 수렵 채집 생활을 고수한 집단보다 식량 생산 생활을 받아들인 집단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더더욱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었다. 수렵 채집에서 식량 생산으로의 전환에 대해 세계 곳곳의 여러 생활권이 각기 다른 양상의 변화를 보인 이유는 수렵 채집과 식량 생산은 서로 경쟁하는 대안적인 생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수렵 채집 생활이 식량 생산 생활보다 좀 더 수월한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식량 생산에 중점을 둔 생활 방식이 조명받지 못했던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지역은 일찌감치 식량 생산 생활로 전환한 지역보다 문화권 내 기술 발전에 깊은 연관성을 지닌 집단의 구성원 수라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수렵으로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한 지역이 오랜 기간동안 식량을 재배하는 생활로 나아가지 못한 경우도 물론 존재했지만, 대체로 앞서 이야기한 경향을 따랐다.
만약 일찌감치 수렵 생활을 청산한 여러 집단이 농경 생활을 비슷한 시기에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주변에 식량화할 만한 품종들이 존재하는지의 여부가 환경이 기술 발전에 야기한 두 번째 관문이자 우연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애초 맛이 좋지 못하고 섭취 시 번거로움이 뒤따르기 십상인 야생 식물들이 고정적인 식량이 되는 과정도 '같은 품종 중 우연히' 당도와 영양분이 높은 돌연변이 품종을 확보하고 재배해야 한다는 세 번째 우연이 두 번째 우연 뒤를 바짝 따랐다. 이 세 가지 관문이자 우연을 빠르게 충족한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긴 기간동안 많은 인원을 기술 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이 과정을 동시기 최고 수준의 농경 문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 즉 내 표현을 재활용하자면 세 가지 관문을 그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통과한 페르시아 만의 '초승달 지대'를 예로 들어서 설명했고, 이 지역에서 품종화된 작물들의 수와 영양가가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우월했다는 점을 들어 문명 발전의 첫단추부터 유라시아 대륙이 아메리카 대륙보다 유리했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농경이 식량 생산이 미친 영향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집단의 생활을 더더욱 안정화시키고 식량 생산에 확실한 도움이 된 존재인 가축들의 경우에도 유라시아에서 대부분 최초로 가축화되었다는 점이 더더욱 유라시아가 아메리카 대륙에 비해 빠른 기술의 발전을 맛보았다는 결과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유용한 동식물의 가축화와 재배는 집단 구성원의 수와 기술 발전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켰지만, 질병의 경우는 인과관계가 정반대였다. 인원이 더 많은 집단의 경우 더 폭넓은 질병에 감염되었고, 그 집단은 그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가축화한 동물로부터 감염된 질병도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유라시아에 떠돌았기 때문에 더더욱 유라시아인들이 면역력을 가진 질병의 수는 다른 대륙에 거주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아메라카 대륙보다 유라시아 대륙이 많은 인원수를 바탕으로 더 빠른 기술의 발전을 이룩한 덕분에 아메리카인이 유라시아 대륙에 도착하는 것보다 유라시아인이,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먼저 접촉할 수 있었고, 아메리카인들은 유럽인들이 겪었던 폭넓고 치명적인 질병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유럽인들이 보다 쉽게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다이아몬드의 의견에 의하면 하다못해 대륙의 생김새마저도 아메리카인들에게 웃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모양은 가로로 길쭉하고, 아메리카 대륙의 모양은 세로로 길쭉하게 생겼다. 유라시아 대륙처럼 가로로 길쭉한 땅덩어리의 경우 위도가 같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비슷한 기후와 온도를 공유하는 지역이 많고, 이는 종자와 가축들의 장점이 더 범용성있게 받아들여질 지역이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메리카 대륙은 세로로 길쭉하게 생긴 대륙이므로, 위도가 달라 특정 지역에 잘 자라는 종자더라도 이동 거리가 길수록 위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에 잘 자라지 않는 지역을 마주하기 쉬웠으며, 이 때문에 전 대륙에 널리 퍼지지 못했다고 보았다. 다이아몬드가 이 책 전역에서 제시한 '우연'들은, 전부 유라시아 대륙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아메리카 대륙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기에 다이아몬드가 만약 황인, 흑인들이 유라시아에 살고 백인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에 살았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국제 정세가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 것은 무리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다이아몬드의 의견에 따르면 대륙간 발전 속도가 다른 이유는 인종의 차이가 아닌 환경의 차이가 야기한 역사적 흐름이다. 내용의 분배 역시 자신의 뉴기니에서 연구할 때의 색다른 경험이나 피사로가 잉카 제국의 왕인 아타우알파를 생포하는 사건이 유라시아 대륙인들이, 즉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인들을 정복한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전에 배치시켜 흥미와 자기 주장의 몰입도를 높혔다. 단점이라고 하기엔 뭐한 개인적인 의문점이 하나 있다면, 환경적인 요소에 집중해 유라시아 대륙이 아메리카 대륙보다 앞서간 이유는 120% 설명되었지만, 왜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시아인들을 제외한 유럽인들만이 도착했는지, 혹은 유럽인들이 전세계 각지에 자신들의 깃발을 꽂고 다닐 때 아시아는 왜 그러지 못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이 책에 수록되어 있지 않는 이유는 확실히 알고 있다. 이 책은 대륙간 차이의 '선천적인' 요소만을 다룬 책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와 비슷한 주제에 대해 완성도 있고, 근사한 '그림'을 그려낸 전문가에게 그와 비슷한 주제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리 특이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보통 무리해서라도 단점이나 호불호가 갈릴 만한 요소를 독후감에 포함시키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 책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도 찾아내지 못했다. 전공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꼬집을만한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비전공자의 눈에서는 그랬다. 더할 나위 없이 마냥 좋기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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