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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선정적인 묘사로 유명하다. 아마 나름 평이 괜찮은 문학 소설들 중에서 가장 선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개중 ‘야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선정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판매 금지령에 처해진 적도 있었고, 그 때문에 법적 공방도 수차례 겪은 흔치 않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름값 하나만큼은, 이러한 사건에 휘말린 덕분에 외설적인 부분이 가장 손꼽히게 되었고, 이는 작가인 데이비드 로렌스가 우려했던 그대로의 전철을 밟은 것이다.
사실 로렌스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야설이라는 오명을 받지 않기 위해 집필 당시부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었다. 내가 느낀 그대로를 가볍게 이야기하자면, 등장인물도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보다 젠체하는 상위층들을 더 천박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이들의 품성이(적어도 로렌스의 관점에서는) 천박한 인물들이라고 볼 수 없고, 마지막에는 이들이 즐겼던 육체적 쾌락이 더 이상 정신적인 교감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확실히 언급되었다. 글의 완성도 자체도 훌륭했으며, 주제 의식마저 성관계 등의 육체적 쾌락을 강조하고자 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당대 기준에서 볼 때 불륜녀 콘스탄스 레이드(이하 ‘코니’)와 불륜남 올리버 멜러즈가 정사 전후로 주고받는 희롱과 행동거지가 너무나도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로렌스의 복안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려했던 바를 벗어나지 못했다.
로렌스가 이 작품에 쏟은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에게 육체적 쾌락이란 ‘진정한 사랑’의 전체가 아닌 일부에 불과했다. 만약 총이 그가 이야기하는 진정한 사랑,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조성된 진실하고 정신적인 교감이라면 육체적 쾌락은 총의 방아쇠에 불과한 지분을 가졌을 뿐이다. 육체적 쾌락은 코니가 남편 클리포드가 그렇듯 당연하게 생각했던 계급의식을 버리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채털리의 사냥터지기이자 훗날 정을 통하는 올리버 멜러즈가 사투리를 쓰지 않고 교양 있는 어투로 말을 할 수 있음에도 굳이 사투리를 쓰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며, 더 나아가 그라는 사람 자체를 못마땅하게 보기도 하였으니 불륜을 저지르기 전 시점의 코니는 행복과 교감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내가 방아쇠라는 표현을 육체적 쾌락에 쓴 것은, 코니가 육체적인 쾌락을 맛본 덕분에 사람 간의 정신적인 교감을 건설적으로 해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남편이었던 채털리가 아내인 자신에게 기대는 것은 필연적이었고 코니 역시 그것을 긍정했지만, 채털리는 아내에게 의존하면서도 정작 아내와 남편 사이에 응당 있어야 할 정신적인 교감에는 소홀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인생에 매우 소중한 존재임은 체감하고 있었으나 서로 동등한 관계가 아닌 버팀목으로서의 유용함과 소중함으로 인식했으리라. 채털리가 타인과 담을 쌓은 이유의 대부분은 후천적으로 생긴 신체적 장애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은 사실이나, 로렌스의 시선에서의 그는 특권 의식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정신적인 교감을 거부했으며, 하다못해 신체적인 쾌감마저도 전혀 줄 수 없었으니 긍정적으로 묘사할래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불륜을 옹호하는 모양새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정신적인 교감을 전혀 받지 못한 아내와, 젊은 시절 이성과 주고받은 뒤틀린 교감으로 인해 생긴 깊은 상처를 애써 덮고 살아가던 사냥터지기. 서로가 주고받은 애정 덕분에 두 사람 모두 인생을 열정적이게 살아갈 수 있었다는 내용은, 실상 두 사람만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은 불행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불륜의 전형적인 과정과 결과를 밟았다. 이들의 행적은 명백한 불륜이나, 적어도 로렌스는 산업화로 인해 바닥을 친 인권, 그럼에도 아직도 건재한 특권층들의 뒤틀린 열망과 신분제, 위선, 남녀차별 등을 이 두 사람의 불륜을 통해 비판하려 했음은 확실하다. 작가가 생각한 가치를 투영한 대상들의 행적은 사회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잘못된 것이 맞지만, 비판 대상에게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그 덕분에 더더욱 강렬하고 뇌리에 남게 되었다.
로렌스가 믿어 의심치 않던 주제 의식이 불륜을 통해 전달했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세상, 뼈가 빠지게 일해도 신분의 상승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세상, 사람을 바라보고 아끼는 것이 아닌 성공과 돈에 집착하는 세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지극히 계산적이고 비인간적인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이 긍정할 것이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릇 따뜻한 이해와 공감이 싹터야 한다는 작가의 중심 주제는 앞선 사회비판적인 면모보다 더더욱 열렬한 호응을 받았으면 받았지 더 미적지근한 호응을 받을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21세기에 다다른 이후부터 사람 사이의 관계가 경직되고 냉랭해졌다는 현상을 체감했기 때문에. 하지만 로렌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관점이 먼 훗날 사람들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 내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일생은 영국이 가장 찬란했던 시기임과 동시에, 사람 개개인의 가치는 최저점을 찍었을 시기였다. 당연히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시기의 식자였던 그는, 어쩌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공고화된 특권층들을 불륜 관계의 남녀 밑에 위치시키는 파격적인 수를 둠으로써. 불륜이라는 자극적이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널리 관철시켜야한다는 조급함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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