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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행복한 가정은 한 가지 모습으로 즐겁고, 불행한 가정은 각각의 모습으로 불행하다.'


대충 이런 구절로 안나 카레니나는 시작한다.


나는 이 구절이 궁금해서 책을 읽었을 뿐이다.


근데 1,500p인지는 몰랐지.




1.


불행한 가정은 각각의 모습으로 불행하겠지, 환경은 제각각으로 불완전하니까.


행복한 가정은 한 가지 모습으로 즐겁겠지, 돈으로 불만족을 외면할 수 있으니까.


행복해 보이는 외양이라는 건, 결국 돈 문제 아니겠어?


라고 나는 어떤 애한테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책으로 확인을 해보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최소한 읽고는 입을 털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1500p를 읽냐고? 15년만에 만나는 앤데 그 정도야 뭐.




2.


레빈과 카샤, 안나와 브론스키.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을 세세하게 다루어서, 너무나 세심하게 다루어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불행해지는지, 또한 행복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불륜을 했다고 해서 안나와 브론스키가 악인이라고 볼 수 없고


레빈과 카샤가 꽤나 순수한 사랑을 했다고 해서 무결점의 선인이라고도 볼 수 없다.


그들 모두 선과 악의 굴레에서 싸우고 있을 뿐이다.


이 지점을 독자에게 납득시킨 것이 작가 톨스토이의 가장 위대한 점 중에 하나가 아닐까?


보통 논문을 쓰라고 할 때 독자가 중2 정도인 것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만큼 쉽고 친절하게 써야


독자 입장에서 알아먹기 쉽기 때문이다.


쉬운지는 모르겠으나..... 말하자면 이것은 고등수학으로 치면 문학계의 수학의 정석과 같은 것이겠지.


자세히 읽고나면 다 써져있는 법이니라...라고 말하는 듯한.(그리고 잡지연재인지 신문연재인지의 형식을 빌렸기에, 자연스럽게 독자들이 이 어려움을 소화해냈을.)




3.


나는 이영도의 소설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그의 신간이었던 '오버 더..' 아 제목이 안 떠올라. 여튼 요 근래 나와서 욕먹었던 책이 있는데, 거기선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에 값을 매기면 안되는 법이야.'라는 말이 나온다.


브론스키는 안나와의 첫만남에서


자신이 가진 돈 전부를 죽은 사람의 유가족에게 준다.


왜?


브론스키가 착해서?


그는 냉정한 기사라고 보면 된다. 불륜남인 건 유감이지만, 올곧고 솔직하다.


여러 유혹에 빠져서 여러 죄를 저지르지만(대체로 여자를 후리고 다녔단 얘기다) 그릇 자체는 상당히 큰 사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는 작품 내에서 연민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오직 이 장면에서 빼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브론스키는 연민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늘 그렇듯 당당하게. 멋있게.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4.


안나 카레니나.


값이 매겨질 수 없는 것에 값이 매겨지는 순간이다.


누군가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연민과 정의에 값을 매긴 순간.


바로 이 지점이 톨스토이의 저력이다.


도끼는 폭발함으로써 정제된다면, 톨스토이는 절제함으로써 폭발한다.


값이 매겨지면, 우리는 그것으로 거래를 하게 된다.


사랑이 거래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무섭나면


동가홍상을 생각해보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똑같이(복제인간이라 치자) 둘 있더라도, 둘 중에 더 어린 여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5.


안나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첫 등장에서의 그 화려하면서도..섬세하고.. 다정하면서도 유려하며... 뭐랄까, 모든 남자의 이상형을 형상화한 듯한...


그런 정신나간 아름다움(단순히 외양만이 아니라)에도 불구하고


미친듯한 질투에 사로잡힌다.


값이 떨어지고 있기 떄문이다.


인간은 언젠가 모두 죽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죽는 게 아니라, 늙어서 병들어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안나는 브론스키에 집착한다.


그래서 안나는 만나는 남자마다 자신의 영향력을 흘려놓는다.


첫장면에서의 그 단아하고 화려한 모습이 사그라들고


연극 주연의 화려함만 남은 듯한 모습으로.




6.


안나는 이렇게 맛이 갔는데,


안나가 이렇게 맛이 가는 과정은... 세세히 말하기 귀찮다.


그러므로 두 장면만 말하면,


딸을 낳고 사경을 헤메는 안나는 자신의 죄를 외면하지 않고 그 첫장면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카레닌에게 용서를 빈다.


죽음 앞에서만이 인간은 숭고해질 수 있는 법이고,


인간 카레닌은 그것에 감응하여 인간으로서 가장 숭고한 경지에서 안나와 브론스키를 용서한다.


문제는 안나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와 그는 그 이후로 다시 나름의 방면으로 타락(나름의 모습으로 불행해지는)해간다.


하지만




7.


안나와 카레닌에겐 하나의 동아줄이 남아있으니,


그들의 자녀이다.


안나가 확실하게 맛이 가는 순간은 아들인 세료자를 포기하는 순간이고


카레닌이 그나마 맛이 덜 가는 이유는 세료자가 있기 떄문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안나는 짐(카레닌, 세료자)을 포기할수록 맛이 가는가?


가정이 한가지 모습으로 행복한 까닭은,


그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양보하기 때문이다.


헌신이 바로 가정의 행복의 근원이다.


어느 가정이라고 불만이 없겠는가, 인간이 불만을 만들어내는 존재인데.




8.


레빈은 자신의 아들을 위기해서 구하고 말한다.


'아 얘를 처음 봤을 땐 혐오와 연민밖에 없었는데... 이제야 내가 이 아이를 이렇게 사랑하는 걸 알겠읍니다.ㅎㅎ'


그렇다면 헌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연민이다.


가여운 것(공포스러워서(못생겨서) 가여운)에 대한 연민.


그것이야말로 소위 인류의 위대한 사상들이 늘 주목하고 있는,


기독교에서, 유교에서, 불교에서, 다 같이 주목하고 있는 인간의 선한 감정이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인간이 선하다는 증명이라 말했고


부처님은 대자대비라는 용어로 쉽게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크게 자비로우려면 크게 슬퍼야 한다.


기독교는... 이게 기독교 소설이니까 퉁쳐서 미안하다만 사상은 잘 모른다.


보게 된 기독교 신자는 나름의 앎을 베풀어주길 바란다. 머 여튼,




9.


그래서 내게 이 소설은 이렇게 읽혔다.


'인간은 착해지고 싶고, 그 경향에 맞춰서 살아라 좀. 니네들이 자지보지 폭발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그거보다 니넨 더 착해지고 싶어한단다;;;'


정도로 러프하게 요약되는.


그리고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안나와 브론스키의 만남이 설정되고 무려 3년 동안 연재를 하게 된...


거장 톨스토이의 집념이 존나게 돋보이는....


그런 소설이었다.




10.


딱히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두 도시 이야기처럼 '숭고함 그 자체'를 지향하는 것을 좋아하지


이러한 권선징악과 같은 모습은 취향은 아니다.


거의 같은 걸 얘기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하지만 잘 읽었네.


왜냐면



이제 그 아이를 만나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뭐가 그렇게 가여웠길래 안카를 그렇게 열심히 읽었냐고.




아는대로 아는척하다가 개망신당할 뻔했는데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