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참 좋아져서...
왕년에 아버님께서 읽으시던 책 내용을 기억하고 한 번 던진 이야기였는데,
근거 자료를 간단히 찾아보니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가 금새 여럿 검색되어 나옵니다.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의 기사만 캡처해도 충분하겠죠.
왕년에 아버님이 읽으시던 책은 <남산의 부장들 KCIA>라는 책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의 군부 통치 시절에 대한 연재 기사들을 묶은 책이 줄줄이 출간된 적이 있는데,
<남산의 부장들>같은 책도 YS가 집권한 후 과거사를 조망하는 연재 기사를 모은 책이었습니다.
위에 김지하의 석방을 청원한 남재희 (4선 의원, 노동부장관)부터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본래 남재희 의원은 서울대 의대를 다니다가 중간에 법대로 전과하여 서울대 법대를 나온 사람인데,
이승만 정권 시절 이기붕의 아들이자 이승만의 양아들이었던 이강석이 서울대 법대에 부정 입학하자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데모를 주도하다가... 간신히 제적만은 면하였고 정부에 찍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법대 졸업하였지만 이승만 대통령 양아들을 학교에서 몰아냈으니 법관이 되어 봐야 인생 잘 풀리기는 틀렸고,
그래서 신문사에 취직하여 리영희와 더불어 조선일보의 '좌청룡' '우백호'의 우백호로 이름을 날리는 기자가 되죠.
재미있는 것은 모두가 아는 좌파의 리더 리영희 교수 역시 남재희와 더불어 조선일보에 오래 재직했다는 것입니다.
- 남재희와 리영희는 건전한 라이벌 관계였고, 둘은 사이 좋게 김연준 한양대 설립자가 운영하던 대한일보로 옮깁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조선일보의 기자들이나 국장급들의 라인업은 어마어마해서...
당대 좌파의 리더 '좌청룡' 리영희 교수, 라이벌 '우백호' 남재희 의원과 같은 기라성같은 인물은 물론이고,
훗날 송건호와 더불어 한겨례신문사를 세웠던 임재경 한겨례신문 부사장까지 당시 조선일보에 오래 있었습니다.
(하긴 일제시대에는 벽초 홍명희 선생이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남로당 총수 박헌영, 죽산 조봉암을 기자로 거느렸죠)
당시 한양대를 설립하여 운영하던 김연준 총장은 창간한 지 10 년이 다 되던 대한일보를 더 키우고 싶어했고,
"신문은 사람이 만든다"는 판단 하에 탐나는 인재들이 많았던 조선일보에서 사람을 하나 둘 빼내오기 시작하여서
좌청룡 리영희 교수, 우백호 남재희 의원, 임재경 부사장 등을 빼 왔고, 그들의 리더 김경환 편집국장도 빼내 옵니다.
그래서 1960년대부터 조선일보의 어마어마한 라인업이 죄다 대한일보에 그대로 옮겨 오는 상황이 펼쳐졌는데...
'윤필용 사건'에 연류되어 윤필용 장관과 친분이 있었던 김연준 총장이 "수재의연금을 유용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정부에 의해 졸지에 대한일보가 폐간되는 돌발적인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 화려한 라인업이 순식간에 공중분해되죠.
리영희 교수는 당시에는 학력도 그렇고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기반이 약한 편이었지만,
똑똑하고 딱 부러지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 무엇보다 고향이 평안북도였던 이북 출신이었죠.
한양대 설립자 김연준 이사장은 고향이 함경북도 명천으로, 바로 북청 상단의 후예였습니다.
그 무거운 물을 등에 지고 산골을 돌아다니면서 물을 판다는 세상에서 가장 독한 "북청 물장수"의 후예죠.
그래서 리영희 교수가 이북 출신인 것이 다른 곳에서는 불리할 지 몰라도, 김연준 총장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리영희 교수는 대한일보가 공중분해된 후 오히려 김연준 총장의 비호 아래 한양대 신문학과에서 교수직을 얻게 되죠.
북청 상단의 자금으로 설립된 한양대는 북한을 고향으로 두고 내려온 실향민 중 지식인들을 교수로 많이 임용하였죠.
한국에서 처음 경영과학(Operations Research)을 미군 연구소에서 배워 도입한 김만식 교수도 평양 출신이었고...
리영희 교수는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좌파 학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니, 대한일보 폐간 사태가 전화위복이 되었죠.
남재희는 대한일보가 윤필용 사건에 연류되어 폐간되어 버리자 서울신문으로 옮겨 갑니다.
리영희 교수는 이북 출신이어서 김연준 총장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한양대 교수직을 받게 되었지만,
그 라이벌이었던 남재희까지 한양대에 남겨 둘 이유는 없었거든요.
이후 서울신문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신문사 기자들과 회식을 하며 한 마디씩 듣는 시간을 보내는데,
남재희는 (박정희 대통령의 비공식 사위였던) 한병기 의원을 국회에 둘 필요가 없다고 직언을 합니다.
당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금기였던 것이 한병기 의원이 박정희 대통령 사위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이었다는데,
남재희는 그러한 금기를 박정희 대통령 면전에서 깨버리고 할 말을 그대로 해버리는 바람에... 강렬한 인상을 주죠.
그리고 얼마 후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 받습니다 - 대통령이 직접 찍어서 출마를 종용하였고, 그렇게 정치인이 됩니다.
이후 남재희는 주로 강서구에 지역구를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고,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에서 의원 생활을 하였던 여당 국회의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재희 의원의 스탠스는 꽤 묘해서...
"의식은 야(野)에 있으나
현실은 여(與)에 있었다.
꿈은 진보에 있으나
체질은 보수에 있었다.
시대는 이런 사람에게 술을 주었다"라고
고은 시인이 <만인보> 중에 일부러 "남재희"라는 시를 지어서 노래했을 정도였습니다.
남재희 본인은 여당 의원임에도 그의 자식들은 모두 운동권에 투신하여 극렬 데모를 진두지휘하는 바람에
딸들을 붙들어다가 남재희 의원이 직접 삭발을 시켜버린 것 때문에 큰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고,
그 딸들은 또 다시 삭발한 대머리로 데모 일선에서 투쟁하러 나가서... 오히려 잔 다르크라고 추앙을 받기도...
훗날 노무현 정부에서 미국과 FTA 협상을 할 때 바로 그 남재희의 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실무자가 되었는데,
정작 남재희 의원은 프레시안 컬럼에서 "시기 상조이다 - 미국에게 말리기 쉽다"는 이유로 미국과 FTA를 반대했었죠.
남재희하면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이 "책 미치광이"입니다
일본에 고양이 빌딩의 주인이 있다면 한국에는 남재희 의원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죠.
"술 취해 집에 돌아가면
3만권의 책이 있었다.
법과 대학 동기인
아내와
데모하는 딸의 빈방이 있었다."
고은 시인이 만인보에서 남재희를 노래한 마지막 구절이 바로 이런 말도 안되는 남재희의 책 욕심이었죠.
남재희 의원은 워낙 책을 좋아해서 결국에는 자신의 본가인 저택에는 수 만 권의 책을 쌓아 놓고 혼자 살았고,
처자식들은 책더미에 밀려서 따로 작은 아파트를 얻어서 생활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책에 미친 양반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유력 정치가 중에서 헌책방 단골이어서 헌책방 주인과 스스럼없이 교유한 사람이 둘 있는데...
<공씨책방> 주인과 어울리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 주인이 사망하였을 때 추모글을 썼던 남재희 의원,
그리고 독립문 <골목책방>의 단골이어서 직접 "골목책방"이라는 나무 간판을 만들어 달아 준 박원순 시장이 있습니다.
전두환 아들내미가 <토지>를 열심히 읽어댄 덕분에 김지하가 석방될 수 있었던 것은...
실은 남재희 의원이 그 이전에 책에 미치다시피한 알아주는 독서광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남재희 의원은 언론인이었던 시절부터 소설가, 시인들과 아주 친밀하게 지냈는데,
그 중 가장 친한 사람이 소설가 이병주, 시인 김수영이었습니다.
지적으로 세상에 꿇릴 사람이 없다고 스스로 자부하였던 남재희가 유일하게 한 수 접었던 상대가 소설가 이병주였고,
김수영 시인이 뜻밖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까지 함께 술을 마셨던 사람이 남재희 의원이었죠.
남재희 의원은 조선일보에 문화면을 담당할 때 박경리의 소설의 연재를 맡았던 인연으로 박경리 선생을 아주 잘 알았고,
그래서 박경리 선생의 사위 김지하가 1970 년대 내내 투옥되어 옥살이하는 것을 안타깝께 생각하고 있다가
불쑥 전두환 대통령과 마주한 자리에서 "김지하를 석방시켜주십시오"라고 탄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애당초 문인들과 활발히 교유하지 않았다면 뜬금없이 문인을 석방시켜달라는 요청을 하기 어렵죠.
요행히도 전두환의 아들이 <토지>를 탐독하고 있어서, 전두환이 그 책 제목을 알고 있었던 것은 기막힌 행운이었겠지만...
진짜로 남재희 의원이 전두환 아들내미가 어떤 책을 읽는 지까지도 알고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이어령 선생을 전두환이 많은 면에서 의지하면서 1988 서울 올림픽의 기획을 맡기다시피 하였던 것도 있고,
남재희 의원이 워낙에 마당발에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토지>라는 키워드를 이용하면 김지하를 석방시킬 수 있다고 사전에 가늠하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 옛날 소련 시절에 고리끼와 그의 부인이 스탈린 치하에서 박해 받는 문인들 구명하느라 너무 바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들>을 쓴 자먀찐의 목숨을 고리끼가 살려낸 일화라든지, 솔제니친이 <수용소군도>에서 고리끼 부인의 노력을 칭송했지만...
한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화같은 게 별로 없는데, 그나마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남재희 의원이 김지하를 석방시킨 것이 되겠죠.
이어령 선생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주관하면서 개막식과 폐회식을 사실상 연출하고 감독하다시피 하였고,
그러한 인연으로 전두환 노태우 두 신군부 대통령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1997년 겨울 IMF가 터진 후 1998년 수 많은 책 도매 총판들이 일제히 집단 부도를 내면서 출판계가 붕괴할 때
이어령 선생이 시공사를 운영하는 전두환의 장남에게 "현금 가지고 있을 테니 제발 출판계를 살려달라"고 하여
현재 한국 최대의 서적 도매상이 된 동국출판판매를 시공사가 사실상 인수하여 운영되도록 합니다.
이후 시공사는 동국출판판매와 리브로를 경영하면서 서적 유통망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지금 시공사 출판 그룹이 출판계에서 발을 빼면... 출판업계가 거지반 망해버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남재희 의원은 YS가 대통령 당선되는 데 공을 세우고, 노동부 장관까지 역임한 후...
정계에서 물러나 언론계의 원로이자 정계의 원로로 칼럼을 기고하면서 세월을 보냅니다.
기막히게도 남재희 의원이 주로 칼럼을 쓰는 매체는 대표적인 좌파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입니다.
여당 의원으로 4선하고,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프레시안>에서 오랫 동안 칼럼을 연재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좌든 우든 모두에게 환영받는 대인배이자 균형잡힌 시각의 소유자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겠죠.
저는 대략 10 년 가까이 남재희 의원이 <프레시안>에 쓰는 칼럼을 생각날 때마다 챙겨서 읽곤 합니다.
그 넓은 시각과 세계 각지의 근현대사를 세세하게 꿰뚫으면서 국제 정세를 내다보는 것에 자주 감탄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함께 생각해보면서 한국의 실정과 지금까지의 역사적 궤적을 두루 살피면서 글을 쓰는데,
서유럽은 물론 동남아, 남미 등 개발도상국이나 강대국에게 끼인 처지의 나라들의 역사를 소상히 꿰차고 있으면서
현재 글로벌 트렌드까지 함께 엮어갑니다 - 누구도 범접 못할 방대한 지식과 너른 시야에 압도될 수 밖에 없더군요.
남재희 의원도 은퇴한 지 20 년이 넘었고, 나이도 80 을 넘겼습니다.
이 양반 스스로 "20 년 기자하고, 20 년 정치하고, 20 년 칼럼 쓴다"고 말하고 있던데...
제발 오래오래 살면서 좋은 칼럼을 계속 <프레시안>에 써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글은 재미진 글이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기 늙어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김지하
글은 횡설수설하지만 남재희 의원 찬양인듯 ㅇㅇ 멋지네
재밌게 읽었네요.
김지하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었는데 글이 삼천포로 빠졌네요. 김지하 시인은 1980년대 초 직접 얼굴을 자주 보았습니다. 물론 어린아이였던 저를 김지하 시인이 인지하였을 리는 만무하지만서도... 실은 1980년대 초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장선우 감독이 살았는데, 김지하 시인이 장선우 감독 집에 종종 놀러왔었죠. (지금은 헤어진) 장선우 감독의 와이프가 집에서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여서 먹고 살았는데, 동네 친구들이 모두 다 그 학원을 같이 다녔거든요. 그래서 장선우 감독은 늘 보는 얼굴이었고, 종종 놀러오던 김지하 시인도 가끔 보았습니다. 장선우 감독의 외아들에게 "장또깐"이라는 아명을 지어 준 사람이 김지하 시인이었죠. 나중에 커서 그 때 보았던 시인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흥미로운 글이었다
재밌다
ㄴ문제가 뭐임
히야~ 시공사~ 마냥 욕할건 아니었구낭..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글을 보니, 근대사도 참 재밌는 일화들이 많아었군요. 계속 내려오는 동안 이렇게 실감나게 읽은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거기다 게시글 저자분께서는 김지하 시인을 또 만나보셨다니, 가히 이러한 영광이 있나 생각되네요. 비록 최근 행보에 대해선 그리 좋지 않게 평가받고 있지만 말이죠. 혹시 나중에 시간이 날 때마다 문학과 관련된 일화들은 여러 차례 올려주실 수 있나요? 국내든 해외든 상관없습니다. 너무 재밌어요. 나중에 저도 한 번 남재희 선생님의 글을 읽어봐야겠네요.
ㄴ 영광은 무슨 영광이라는 건지..웃음이....나네요 죄송합니다 근데 풉하고 터져버렸어요 ㅠㅠ
ㄴ아니 그래도, 뭐 지금은 그리 시선이 곱게 가고 있지는 않지만요.
썰 재밌네요
요런 썰 어디서 맛 보겟어? 독갤의 묘미?ㅋㅋ 주저리주저리 잼나면서도 살짝 지루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ㄱㅅ & ㅊㅊ. 독갤 사랑방 벽에 등 기대고 샬짝 졸면서 얻어 듣는 그런 기분ㅋㅋㅋ
게스커드님 글은 볼때마다 감탄을 하고 갑니다
박쥐같은 놈을 가렷어야지 김지하 선생처럼 깨닫길
대인배가 아니라 교토삼굴이나 잘하는 기회주의자겠지. 균형잡한 감각의 소유자? 아 그런사람이 프레시안에 천안함 음모론 떠듬? 시답잖은 옛날 신문 쪼가리 펴놓고 뭐하는 거이? 부끄러운줄 알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