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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유사역사학 비판, 역사비평사, 2018.

친부는 책을 좋아했다.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그의 서재는 문학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얼마 안 되는 비문학은 강준만과 신영복의 책을 제외하면 거의 역사책이었는데 개중에는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 책들도 더러 있었지만 많은 책들이 환단고기류의 서적들이었다.

내가 역사교육과에 진학하고 난 뒤 친부는 술에 취해 내게 대한의 한이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 아느냐 물었고 나는 내가 아는대로 정설을 얘기했다. 친부는 혀를 쯧쯧 차며 장차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자식이 그것도 이 애비보다 모르냐며 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인가 뭔가를 건넸다. 거기에는 김진명 스스로 자신이 한국 사학계 전체를 뒤집을 진실을 천신만고 끝에 밝혀냈다는 내용들로 가득했는데 여러 사학자들과 연구자들의 팩트체크 결과 전부 허구로 밝혀진 것들이었다.

고등학생때는 역사 사회 선생들과 친해 쉬는 시간에 종종 그들의 교무실에 세봉에 오천원짜리 옛날과자를 뇌물로 삼아 찾아들고는 수다를 떨곤 했다. 언젠가 고2때 1학년때 역사 선생이 짜증을 내고 교무실에 들어오더니 내게 너가 교장이랑 말 좀 해보라, 우리 말은 도통 듣지를 않는다 했다. 무슨 얘긴고 하니 당시 교장은 개량한복을 입는 국수주의자로 환단고기를 신봉해 역사 과목 선생들이 왜 우리 위대한 역사를 식민사학으로 가르치고 있냐며 쪼았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얼떨결에 교장과 삼십 분가량 얘기를 나눴는데(내 손에는 나무위키에서 뽑아 온 환단고기 비판이 있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은 일체 얘기하지 않고 역사가 바로서야 국민과 국가가 잘 된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한 채 내게 돈까스를 시켜주어 함께 먹었다.

대학을 대전으로 오고나서는 환단고기류의 총본산인 증산도와 그 계열 방송국인 상생방송이 대전에 있기에 내 동기들과 나는 길가에서 환단고기 관련 서명을 받는 이들을 종종 발견하고 비웃곤했다.

이렇듯 내 삶은 남들보다 유사역사학과 부딪힌 적이 많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유사역사학을 타파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그러한 타파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바로 초록불의 하루일기라는 이글루스 블로그였다. 그의 블로그는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하나하나 사료비교까지 해가며 독파해나갔는데 나는 그 블로그의 매력에 푹 빠져 입대 전까지 게시글들을 읽어나갔다.

그러다 군에 있을 때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초록불 선생이 책을 냈다며 이 책을 소개하는게 아닌가. 그길로 주문해서 부대에서 한숨에 읽고는 감격을 했다. 아 정말 이 책 한 권이면 모든 유사역사학의 주장은 반박되겠구나, 더이상 유사역사학이 설 자리는 없겠구나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저자의 이와 같은 이십 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유사역사학의 마수는 뻗어나가고 있다. 당장 한국 근대사에서의 선구적인 연구로 명망높은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도 중앙일보에서 훈족이 고조선의 후예니, 스페인의 바스크족이 고조선 아발족의 후예니 하는 소리들을 연재하고 있다.

유사역사학의 문제는 단순히 역사를 잘못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 국수주의적인 사고관은 단지 역사이해에만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세계관 전체로 확장되어 세계화와 다문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강대 사학과 학위만 있는 사람으로 학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지금이야 젊은역사학자모임 등 학계에서도 유사역사학에 대응하는 편이지만 이십년 전에는 거의 전무했다. 학계를 대신해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뜻을 잃지 않은 그에게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