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영국의 문학자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은 『시를 어떻게 읽을까』에서 오늘날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불안감을 다음과 같이 유머러스하게 묘사했다. “문학 비평가들은 영원한 두려움의 상태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어느 날 관공서의 어떤 말단 직원이 한가하게 문서를 넘기면서 우리가 실제로는 시나 소설을 읽으면서 대가를 받는다는 난처한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이다.” 공무원들의 실용주의적 깐깐함 앞에서 ‘문학 나부랭이’나 붙잡고 있는 문학인들은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자신이 몸담은 학문이 어쩌면 엄밀 과학으로서의 학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문학자들의 불안감은 사회학자들 역시 공유하는 것이다. 사회학을 과학의 영역으로 ‘상승’시키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Bourdieu) 역시 자신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던 『구별짓기』에서 자신의 작업이 과학임을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의 작업이 과학임을 애써 주장하는 과학자는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사회학의 애매한 지위와 그로부터 오는 불안감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 앞에서 보여주는 과학의 의기양양함이, 과학은 ‘현실(사실)’을 다루는 반면 인문학은 ‘허구’ 내지 준(準)-사실을 다루고 있다는 판단에서 오는 것이라면, ‘사회적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은, 사회학을 과학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업이기 이전에 과학과 과학의 대상인 현실이 무엇인지를 메타적으로 논의했던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살론』은 사회학적 또는 사회과학적 저서이기 이전에 과학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메타-과학적 저서이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둬야만 뒤르켐이 『자살론』에서 자신의 방법론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1부 ‘외부적 요인’에서 자살이 개인의 신체-심리적 요인과 물리적 환경에서 기인한다는 통념들을 비판한 뒤, 본격적인 분석이 시작되는 2부의 첫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료를 보고 연역할 방향을 잡고, 자료에 있는 사례를 연역해서 설정한 유형이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하여 원인에서 결과로 나아가게 될 것이고, 원인론적 분류는 형태학적 분류를 통해 상호검증을 할 수 있으므로 완벽하게 마무리 될 것이다. 모든 면에서 이와 같은 역방향 방법은 우리가 설정한 특수한 문제에 적합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의 방법론은 흔히 사회학에서 ‘가추(abduction)’ 내지 ‘역행추론(retroduction)’이라 불리는 것이다. 가추추론은 경험적 자료(예컨대 자살통계)로부터 일정한 유형 혹은 규칙성을 파악한 다음, 현상(예컨대 자살)을 발생시킨 객관적 실체(즉 사회)와 인과구조를 가설적으로 상정하는 추론방식이다. 그가 이러한 복잡한 방법론을 선택한 이유는, 실험실과 달리 ‘사회’ 분석에서는 변인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지역, 성별, 계급, 자본 등 수많은 요소들에 의해 중층적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리트머스 시험지로 산성을 측정하듯이 실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회학자는 그 자신이 분석대상인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메타적 사회분석은 불가능하다.
뒤르켐은 프랑스의 자살통계로부터 4가지 유형의 자살형태(이기적, 이타적, 아노미적, 숙명론적)를 가정한 뒤, 각 유형의 자살에 대응하는 사회적 조건과 사회적 집단을 논증한다. 그러니까 뒤르켐의 방법론은, 실체로서의 사회를 선험적으로 규정한 뒤에 자살 유형을 연역하는 대신, 자살 유형으로부터 사회적 실체를 역추론한다. 그렇다고 그의 방법론이 귀납적인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경험적 사례로부터 일반적 법칙을 추론하는 귀납적 방법은 언제나 새로운 반례에 의해 논박될 수 있다는 ‘귀납의 오류’에 봉착하고, 경험 너머의 실체로부터 경험을 설명하는 연역적 방법은 관념론이라는 비판에 봉착한다. 뒤르켐은 경험자료로부터 ‘사회’를 추론해 낸 뒤, 이 사회야말로 모든 개별현상의 ‘보편적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에게 사회는 일반적(general) 실체가 아니라, 보편적(universal) 실체이다. 현상(자살)으로부터 추론된 본질(사회)이 보편적일 수 있는 것은, 뒤르켐의 연구가 강력한 설명력(explanatory)을 갖기 때문이다. 그는 통계자료들을 해석하며 자신의 결론이 ‘과학적 사실’임을 논증한다.
그의 연구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과학자들에게 폐쇄체계로서의 실험실이 필요한 이유는, ‘현실’이 체계간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개방체계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깃털과 쇠공이 같은 속도로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순수하게 중력법칙을 파악하려면 진공이라는 통제된 환경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갈릴레오의 ‘피사의 사탑’ 실험이 과학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뒤르켐은 『자살론』을 통해 환경을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자연과학만이 ‘사실’을 다루는 엄밀학문이라는 통념을 깨부쉈다. 이런 의미에서 『자살론』은 과학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하는 과학이다.
『자살론』이 과학 너머의 과학이라는 것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으로 이해되는 자연과학과 달리, 그의 연구가 자유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근대를 극복하는데로 향해 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가 자살연구에 천착했던 이유는, 근대에 들어서 사회가 병리화됨에 따라 개인들을 하나로 통합시켜주던 힘이 사라지게 되었고, 이것을 결정적으로 증거하는 것이 자살현상의 급증이었기 때문이다. 자살 자체는 문제라 할 수 없지만, 전례없는 자살의 급증은 근대사회에 고유한 병리적 현상이다. 현대의 개인들은 사회를 자신의 본질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개인과 사회는 불화하고 대립한다. 또한 자본축적의 끝없는 회전운동과 그로 인한 원심력으로 개인들은 사회 바깥으로 튕겨져나간다. 자살은 이 모든 병리적 상황으로부터 기인한다. 뒤르켐은 ‘규율’, ‘건전한 규제’, ‘외부적 개입’ 등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들은 오늘날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용어로 이해되지만, 결코 부정적, 억압적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도덕적 개념이다. 즉 뒤르켐에게 사회는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도덕적인 것이다. 그는 『분업론』에서 "도덕적 성찰은 곧 기술인 동시에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사회가 과학적 실재이듯이, 도덕 역시 과학적 실재인 것이다. 진실로, 과학으로서의 도덕이 필요한 때이다.
쌌다 시발...
내일 주문함
ㅋㅋㅋㅋㅋ최고의 감상평이네 땡큐 ㅋㅋ 근데 좀 책이 딱딱해서 재미는 떨어질거야
표백 쥔공이 읽어봤을 법한 책이네. 잘 읽었습니다
장강명 표백말인가요? 읽어보진 않았는데 언급 많이 되는거보니 재미있나보네요 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후감만 읽고 느낀점. 과학은 실증적이니까 귀납이 전제 아닌가? 현상을 보고 일반이 아닌 보편을 이야기 하는건 직관의 개입이 있을 수 밖에 없지 않나? 직관을 과학이라고 할 수 있나?
그리고 뒤르켐을 진짜 잘 모르고 그냥 사회학의 아버지니까 오래된 사람이다라고만 알고 있는데 규율하고 건전한 규제를 이야기 하는 걸로 보아 옛날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련이나 지금 중국이나 아니면 유대인 잡아가던 히틀러를 목격했으면 절때 그렇게 못말했을듯.. 또 시대차이가 많이 느껴지는게 포스트모던한 요즘의 시대에 보편을 이야기 할만큼 용감한 사람은 찾기 힘들거 같음. 무식하게 그냥 떠오르는대로 쓰는말이지만 많이 부족한 내가 읽고 느낀점
ㅈㅐ밌게 읽었씀다
댓글 잘봤음. 답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공부한 부분 내에서 답해드림. 1) 과학은 실증주의가 아님. 콰인이 말한 관찰의 이론적재성 개념(모든 관찰은 실은 이론에 기반한다는)을 떠올려보면 대답이 될 듯. 순수한 객관적 관찰은 허구임. 모든 관찰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 위에 놓인 이론에 기반한 것. 그런 의미에서 직관이 과학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님.
아울러 실증되는 것, 수리화 할 수 있는 것만이 엄밀과학이라는 것 역시 근대의 산물임. 이진경에 따르면 케플러나 다윈 등의 연구는 수리적 모델과는 거리가 멀었고, 갈릴레이 이전에도 비의적 형태로 과학에 이바지한 사람이 많음.
2)로이 바스카에 따르면 실재는 층화(분화, 구분)되어 있음. 그 최종심급에 사회라는 기제가 놓여있음. 뒤르켐과 바스카, 그리고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동의하는 건 이 "사회(또는 역사)"라는 최종심급 위에서 인간의 삶이 움직임.
그런 의미에서 사회는 일반적 실체(예외가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보편적 실체(예외없음)임. 사회를 벗어난 인간이라는 것 역시 부르주아적 환상임.
3) 규율과 규제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 의미는 아닌듯 함. 거칠게말하면, 개개인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의 원칙과 규칙을 규율과 규제라 부름. 그런 의미에서 뒤르켐에게 님이 말하는 "요즘의 시대"는 병적인 시대일 뿐임. 왜? 전부 자기가 왜 사는지도 모르고 그저 히키코모리처럼 사소한 취미만을 삶의 의미로 착각하며 살아가니까
나아가 그런 취미들조차도 사실은 진정한 내 것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점에서(우리는 우리의 취미가 진정으로 자발적인 것이라 확언할 수 있는지?) 오늘날의 사회는 병리화된 사회임. 그건 뒤르켐의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철지난 이야기처럼 들린다는 점에서 확신할 수 있음. 맑스와 뒤르켐의 이야기는 결코 고전이 아님. 철학자들에 의해 지금도 지속적으로 부활함..
스마트폰으로 쓰고, 또 덧글이라는 한정된 공간이라 비문도 많고 비약도 많네. 감안해서 봐줘. 읽어줘서 고마워!
오 감사합니다. 1) 직관이 과학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걸 설명해주시니까 많이 이해가 되네요. 특히 다윈이 갈릴레이 예시를 들어주시니 어떻게 직관이 과학에서 배제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었음. 2) 사회를 벗어난 인간이 환상이란거에 동감해요. 사회 없는 인간을 상상하는것은 부자연스럽다각해요. 3) 이 부분은 전제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모르고 사소한 취미를 삶의 의미로 착각한다는거라는 점이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말씀해주신 부분은 퇴락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것을 해결하는 주체가 개인이 아닌 사회라는 점이 신기하네요. 개인적으론 사회학의 관점이 생소하게 느껴져요.
답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부끄럽게도 제가 부족해서 이해를 많이는 못하네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궁금했던 부분 해결됐어요. 다음에도 요약한 내용 올려주시면 재밌게 읽어볼게요. 꾸벅 (__)
간만에 흥미롭게 읽었습니닷
감사합니다!
너무 잘 읽었어요. 글빨도 출중하고 지식도 많으시네요! 부럽습니다... 한데 마지막의 '과학으로서의 도덕'이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아 그러는데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덧붙여 윗댓 보니 과학철학..?이나 기타 사회학적 논의에 대해 두루 소양이 있으신 듯한데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사회학도 과학철학도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에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학으로서의 도덕이라는 개념을 저는 다음과 같이 이해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사건으로 보이는 자살조차도 사회적 문제다. 자살은 사회에 윤리적, 도덕적 결함이 있음을 알려준다. 즉 올바른 사회란 도덕적 사회이다. "
"그렇다면 사회학이 과학인 것처럼, 사회의 규칙, 규제라 할 공동체(=사회)의 도덕, 윤리를 연구하는 것 역시 과학의 임무일 것이다. 도덕, 윤리는 단순히 착해지려는 마음을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우리는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듯 이것를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이런 뉘앙스로 이해했습니다.
사실 전 국문학도라 딱 기초적 수준에서만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음 제가 읽은 책이 몇 안 되지만, 조은주의 <가족과 통치>, 김명희의 <통합적 인간과학의 가능성>, 홍성민의 <취향의 정치학>(이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해설서입니다), 앤드류 콜리어 <비판적 실재론> 정도가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부르디외나 뒤르켐, 푸코, 베버, 프레드릭 제임슨 등 좋은 사회학자들이 많지만, 번역문제(특히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는 원서 안 보면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오역심각)도 있고 가독성도 떨어져서 쉽게 추천을 못 드리겠네요. 우선 2차텍스트 먼저 보시고 천천히 1차텍스트를 건드시는 걸 추천드릴게여!
그러니까 윤리, 도덕도 인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엄밀하게 사회적 문제로 다루자는 얘기로 이해하면 되는 걸까요? 여하튼 답변 감사 드립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 재밌게 읽어서 앞으로도 더 읽어 보려고요! 기타 국내 저자들 저작 참고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독갤에 남겨주세요!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정치는 잘 몰라서 급진공화파가 어떤 건지는 잘모르겠지만 좋은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아하 그렇군요! 몰랐던 사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