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모든 게 다 헷갈려서 그만뒀다.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혼절해버리거나, 피부톤이 비슷한 세 여자아이를 육망성 치킨마냥 조립해서 강간한다거나, 임신한 배를 갈랐더니 몇 권의 책이 나온다거나.
쓰쿠모주쿠는 온갖 황당무계한 사건들을 보여주고, 다음 챕터에서 이를 단순한 허구로 취급하며 해체해버리는 메타적인 구조를 갖고 있음.
중간에 동물포모를 읽는 장면이 있어서, 어떻게 엮어볼 수 있지 않나 싶었는데, 그냥 대략적인 구상만 말하겠음 ㅇㅇ
일단 쓰쿠모주쿠는 메타픽션이긴 하지만, 단지 작가-인물이라는 양자 구도는 아님. 쓰쿠모주쿠는 '세이료인 류스이'라는 실존 작가의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이고, 마이조 오타로가 이 캐릭터를 데려간 셈임. 즉, 마이조 오타로-쓰쿠모주쿠-세이료인 류스이 라는 삼자 구도가 성립됨.
아즈마 히로키는 동물포모에서, 서브컬쳐의 포스트모던적 특성으로 2차 창작을 꼽았음. 그의 시선에서 2차 창작은 장 보드리야르가 예견한 시뮬라크르의 문화산업임. 대충 오리지널과 복제의 구별이 한없이 약해진다 보면 될 듯.
뭐 이런 패러디에서도 서브컬처 특유의 포스트모던적 특징을 잡아낼 수 있고,
또 한가지 포스트모던적 특징은 허구 중시의 태도임. 이데올로기를 상실한 현대인들은 사회, 국가, 신의 공백을 서브컬쳐로 채우고자 한다는 의미임.
여기서 쓰쿠모주쿠는 과연 허구란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고찰하는데,
각 챕터에서 진지하게 다뤄졌던 모든 스토리들은, 그 다음 챕터에서 무의미한 허구가 되어버림. 주인공은 진실을 파헤치려 노력하지만, 그 모든 진상은 전부 말장난에 불과할 뿐임.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끝없이 무너져내리고 허풍만 남은 이 작품을, 기술발전에 의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사라져버린 3, 4세대 오타쿠에 대한 알레고리라 본다면 너무 비약적인가?
디시는 현실인가? 난 딴갤에서 자정 때마다 똑같은 사진을 올리는 갤러를 본 적이 있음. 당연히 사람인 줄 알았지. 근데 알고보니 매일 그 시간에 똑같은 글을 올리도록 설정한 프로그램이었다는 거임...
한편, 얼마 전에 다른 커뮤에서 이루다와 대화한 페메내역을 실제 사람인 줄 알고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도 보았음.
여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는, 더 이상 현실과 허구를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영역에 발을 딛었음.
쓰쿠모주쿠의 주인공은, 허구라도 좋다면서, "나는 (아내의) 구아바 향기를 잃고 싶지 않아! 관대정직성실(아들들 이름)을 잃고 싶지 않아!"라 절규하는데, 이건 무슨 의미일까?
허구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
아즈마 히로키는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에서 쓰쿠모주쿠를 오타쿠 비판적인 작품으로 해석했지만,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어쨌든 쓰쿠모주쿠는 게임적 리얼리즘에 기반함과 동시에 이를 해체해버리고, 결국 게임적 리얼리즘을 소비하는 현대인에게로 시선을 돌려버린 듯 한데, 이 과정 자체가 무척 대담해서 맘에 들었따.
마이조 오타로가 뭘 말하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음. 뭐 이런 게 진정한 포-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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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 홀 인 마이 브레인'도 그렇고 마이조 오타로가 우리의 세계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폭로하는 동시에 그런 환상?의 출처를 의식하면서 소설을 쓴다는 건 알겠는데, 역시 파우스트계 작가나 허무맹랑한 전기소설이나 서브컬쳐나 과몰입해서 따져볼수록 이상해지는 느낌이라 그걸 뭐라 불러야할지 잘 모르겠음
참고로 전 아즈마 히로키 책들이랑 쓰쿠모주쿠 안 읽어봄ㅇㄹ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일반 라노벨처럼 허구를 말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허구라는 걸 인식한 채로 허구를 소비하는 오타쿠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듯. 이러나저러나 이걸 eoe 같은 오타쿠 비판 계열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음.
머 난 에바를 비롯한 세카이계에서 (샤프트 애니에서 엑스트라 안 그리거나 실루엣 처리하듯이) 오타쿠의 비대한 자아가 '나와 너의 관계성'을 필터 없이 세계 전체로 확대시키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둥 하는 해석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오타쿠의 자의식이 단순히 가상세계에 매몰되지 말고 현실로 돌아가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함
그래? 난 파우스트 계열은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고... Eoe는 상당히 적나라하게 오타쿠 비판의 사례로 보았는데. 너와 나의 관계를 마땅한 개연성도 없이 세계 존망의 문제로 연결시킨단 것도 오타쿠를 겨냥한 적당주의식 전개라고도 생각함. 자의식 과잉이라 단정짓기보단, 걍 상업적 전략으로 보는 편이 맞을 것 같긴 한데
꼴랑 11편짜리 노이타미나 애니에 어울리지 않는 떡밥과 설정들로 인해 얼렁뚱땅 적당주의로 끝나버린 아즈마 히로키 원안의 세카이계 애니메이숀 프랙탈 보쉴?
오 뭐야 아즈마 히로키 이런 것도 했었구나 ㄷㄷ
eoe에 오타쿠 비판적 요소가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tv판에서도 at필드 따위의 설정에서 그런 암시가 존재한다고 해도, 저어는 역시 에바 같은 세카이계에 홀리는 이유는 그 일상 장면의 핍진성과 아동용 성장물에 만연한 사랑과 우정 따위의 관계성에 있는 것 같거든요. 머 그 핍진성과 관계성이 결국 서브컬쳐의 불안한 토대 위에 있다는 점은 프랙탈에서도 강조되는데
네가 말한 부분을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서 분석하는데, 상당히 설득력 있다 생각함 ㅇㅇ 일단 프랙탈 한번 봐보겠슴다
자세한 설정 얘기는 스포 투성이라 말 못하지만, 히로키도 세카이계가 서브컬쳐의 관계성을 불안한 토대를 무너트리고 일상의 관계성을 회복시키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긴 했다는 게 느껴지긴 하더라는. 물론 앞에서도 얼렁뚱땅 적당주의 전개라고 말했듯이 그런 떡밥과 설정들로 의도한 바와 별개로 후반부 전개와 결말이 다 마음에 들진 않았습니다만...
존재의 불안을 허구의 서사성에 몰입함으로써 해소하려 하지만, 허구임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허풍으로 전락해버리는.. 아몰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