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요약과 설명
<슬픔의 위안>은 사별한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부모, 자식, 친구, 연인 등 사랑하는 이들을 테러, 살인, 사고 등으로 너무 이른 시기에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들은 “우리는 슬픔에 관한 책을 쓰는 중입니다”라고 자기네의 글을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이 책은 사별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전반적인 슬픔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이별의 슬픔이든, 실패의 슬픔이든, 병환으로서의 슬픔이든 말이다.
책은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이름은 차례대로 “슬픔에 맞닥뜨리다”, “슬픔에 빠지다”, “슬픔에서 빠져나오다”, “슬픔의 흔적이 남다”이다. 챕터마다 “무거움”, “신뢰”, “자연”, “종교” 따위의 단어로 이루어 진 짧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단어가 총 29개다. 책은 슬픔의 시작부터 그 의미, 그리고 슬픔에 빠진 이들이 어떤 상황을 겪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위안을 얻고 힘을 얻어서 슬픔을 빠져나오는지 차례대로 이야기한다. 이 모든 상황을 자기들이 조사한 슬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학작품으로 엮어낸다. 여느 파스텔톤 에세이와는 다르게 문학적이며 여느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서적과는 달리 친절하고 쉽다. 그래서 더욱 위안이 되는 책이다.
짧은 감상
신형철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자기가 읽은 최고의 논픽션이라길래 빌려 읽어봤다. (그런데 사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다 못 읽고 책을 덮었다.) 신형철의 극찬처럼 최고의 논픽션인가 싶기는 하지만, 좋은 글이라는 생각은 든다. 특히 슬픔이라면 할 말이 참 많은 나기에, 더 쉽게 읽어나갔던 것 같다.
전에 어디서 봤는데, 감상문을 쓰기 힘든 사람이라면 먼저 책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따로 모아놓으라고 하더라. 그걸 모아놓은 게 감상문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구절을 다섯 개 정도로 추리고, 더 나아가서 거기에 대한 내 짧은 감상을 달고, 더 나아가서 그 글을 늘리고 형식을 잡으면 그것이 감상문이라고 하더라. 감상문을 쓰기 어려워하는 나이기에, 책 속 문장을 빌려서 짧은 감상이나 하나 적고 마치련다.
111쪽 (신뢰) "남에게 밧줄을 던져줄 때는 반드시 한쪽 끝을 잡고 있어라."
우리는 비탄에 빠져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이 표현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느 심리학자가 즉석에서 한 이 말이 우리에게는 경험칙이 되었다. 의미는 단순하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슬픔에 빠진 누군가에게 입증할 수 없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그녀는 더 좋은 곳으로 갔어요"라고 한다면, 이때 이 사람은 이 밧줄의 반대쪽 끝을 잡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갔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만약 누군가가 "걱정 말아요, 괜찮을 거예요"라고 한다면 이 사람 역시 붙잡을 수 없는 밧줄을 던지는 것이다. 스스로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괜찮을 거예요"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반면에 "당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겠어요"는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말이다. 누군가가 다른 쪽 끝을 잡고 있으리라 믿고 붙잡을 수 있는 밧줄이다. "밤새도록 휴대전화를 쥐고 있을게요. 당신 전화번호가 뜨면 언제라도 받을게요"라고 말해준다면 한결 더 낫다. 이는 그 사람이 알 수 있는 사실이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다. 신뢰해도 되는 밧줄인 것이다.
우울에 빠진 이의 사고회로는 부정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돌아간다. 반 쯤 찬 물컵을 보고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하는 게 아니라, 가득 찬 물컵을 보고 “어차피 저 물도 곧 다 사라질 거니까, 없는 거나 다름없어.”하는 식이다. 눈이 녹고 봄이 올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확신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슬픔이다. 자신을 걱정하는 100명보다 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 1명에 집중하며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 우울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거기에서 꺼내 주고 싶다면, 그냥 있어줬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해보려는 노력, 그 노력은 당신의 사랑을 쉽사리 우울에서 꺼내오지 못할 것이다. 해도 해도 안 되는 노력은 절망으로 다가오기에, 그래서 내게서 멀어지는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절망스러운 것은 없기에, 그저 곁에 있어준다는 약속 하나만 하고 그 약속만 지켜줬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슬픔이라는 놈을 잘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여러분의 주변에 만연한 슬픔을 자연스레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자신의 슬픔이든 타인의 슬픔이든 말이다.
뜬금 없지만 정호승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이해 없는 세상에 나만은 네 편임을 잊지 마라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