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개인적으로 생각하길, 우리나라의 역사는 한반도 밖을 나간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잠시 패전국 일본의 시민, 그것도 명망과 권위를 가지고 손자까지 본 일류 예술가로서의 희소한 삶을 훔쳐봄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런 식의 역사적 사료로도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그럴 것이 주인공 주변의 가족의 삶이나 딸의 혼담같은 사건은 매우 전통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책을 진정 관통하는 주제는 회복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러한 가치를 품은 책을 당본 외에도 여러 권을 쓴 바,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그 중 전쟁으로 파괴된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파괴된 일본이라고 해도 전쟁 소설을 방불케 하는 참혹함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전혀 조명되지 않는다. 그런 가난은 그저 유쾌하게 그려지는 빈민이 더럽게 사는 모습과 다른 마을의 번영과 대비되는 어느 번화가의 쇠락이 전부이다. 사람은 전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오히려 더 풍족해졌을 지도 모른다.
공습피해는 수리했고, 전쟁으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은 제 삶을 찾았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진정으로 파괴되었을까.
회복은 앞서 파괴라는 인과를 필요로 한다. 파괴의 대상은 비단 물질 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영혼이 되기도 한다. 또한 파괴는 화약, 원자력, 납알이나 남성만이 가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정신 따위도 그 모체를 고문할 수 있다는 사실은 끊임없는 자책으로 소모적인 상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도구를 자처해오던 우리에게 익숙하다.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한다. 타인에게 비난 받고, 자신을 비난 한다. 결국 현실적인 최선을 다했음에도 무자비한 파괴를 당하는 개인은 극단적으로는 자살이나 뼈아픈 후유증을 호소한다.
그런 사람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작가는 모든 서사를 꺾인 제국의 역사를 빌려 그려내며, 주인공 예술가의 입을 빌려 이 고통을 회복할 대안을 외친다.
그 대안은 성숙하고 이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를 말하는 인물이 지나치게 독선적이라는 감상 역시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대안을 제시하는 모든 활자들이 작가 본인에게 일어난 파괴로 출혈한 피를 잉크로 쓴 것 같으므로, 독선은 그저 인물의 강직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확신한다.
파괴로 고통받는 모든 평범한 이들에게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추천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