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개연성은 '얼마나 그럴듯해보이냐'는 것보단,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어떤 기대를 가지게 되느냐'와 관련이 있음. 가령 우리는 명확한 주제 없이 실없는 얘기를 늘어놓는 꽁트나 믿을 수 없는 화자를 내세운 글을 읽으면서 꼭 그럴싸한 내용만이 나오길 기대하진 않음. 하지만 이 경우에도 화자가 사용하는 어휘나 소재, 장르 등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내용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형성하게 됨. 물론 한국영화가 툭하면 초반에는 웃기고 후반에는 울리는 전개를 써먹듯이 이러한 기대를 의도적으로 비트는 것도 가능하고, 실제론 더 복잡함.

그 중에서도 서사적 개연성이라는 건 대충 플롯 위주의 시나리오나 줄거리만 봐도 이해되는 소설처럼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명확한 동기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움직임으로서 사건이 진행되고, 이런 도미노같은 사건의 연쇄가 관객이나 독자로 하여금 이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음(이 또한 실제론 더 복잡함). 일반적으로 서사적 개연성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나 작가주의 단편소설보다는 티비 드라마나 연재소설에서 더 중요한데, 왜냐하면 전자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작가의 전작, 반복되는 모티프와 같은 모호한 기대에 따라 읽어나가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데 반해, 후자는 당장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명확한 기대를 형성하지 않으면 도중에 하차할 수도 있기 때문임.

그런데 결말 스포당하고 보는 영화가 재미없듯이, 서사적 개연성이든 개연성이든 독자를 기대하게 만들더라도 그 기대가 지나치게 확실해서는 안됨. 그래서서사적 개연성에 의존하는 이야기일지라도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소재나적대자 편인지 주인공 편인지 모를 등장인물, 눈에 띄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각종 떡밥들을 통해 복합적이고 양가적인 기대를 형성하기 마련임.

책 이야기: 대충 로버트 맥기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좋다는 사람은 많지만 읽어본 사람은 드물 거고 나도 대충 읽어서 그랬는지 대부분 기억 안난다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