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일 2020/10/23
- 100일차 2021/01/30
- 오늘 읽은 책
안읽음
-100일차,
힛갤간 독서마라톤을 보고 "개쩐다 나도 해야지" 라고 아무 생각없이 시작한 마라톤을 벌써 100일이나 달렸습니다.
뛰기 싫어서 걸은 날도 있고, 걷기도 싫어서 질질 끈 날도 있고, 질질 끌기도 싫어서 주저 앉아 드러누운 날도 있었습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못 읽고, 안읽은 날을 주섬주섬 주워 모아보면 1,2주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그 날에 하루를 더해서, 책은 옆에다 덮어두고 100일간의 마라톤 후기를 써내려 가겠습니다.
우선 오늘까지 달린 거리를 세어보면 총 4970페이지를 읽었습니다. 대강 5천 페이지라 잡고, 100일동안 달렸으니 열흘에 500페이지, 하루에 50페이지 읽은 셈이네요.
역시 세어보진 않았지만 제일 적게 읽은 날은 6페이지, 제일 많게 읽은 날은 150여 페이지 정도로 기억합니다.
하루에 500페이지를 읽던 독붕이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숫자이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 하루에 50페이지를 읽어가다 보니 완독한 책도 벌써 15권이 되었습니다.
100일간, 약 세달간 15권을 완독했고, 꾸역꾸역 발걸음을 내딛다가 해가 넘어갔으니, 올해 들어선 1월 중에 세권을 완독했네요.
그렇게, 책장에 완독한 책들을 순대로 꼽아두고 가만히 쳐다보면 참 뿌듯한 마음도 들지만은,
벽돌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작품 수로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내심 고작 이거뿐? 이라는 자괴감 비슷한 마음도 드는 것이
아쉽다기도 뭣 하고, 시원섭섭하다기도 뭣하고, 먹기 좋게 식은 것 보다 살짝 더 식은 뜨뜨 미지근한 국밥을 한 술 떠먹는 느낌도 듭니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 만큼은 정말 뿌듯한데,
깊은 어둠의 동굴 속, 골룸의 손아귀에서 잊혀져 가던 절대 반지처럼 사놓고 몇년이나 묵혀놓은 반지의 제왕 세트를 거의 다 읽었습니다.
매번 1권만 찍먹하다 말고, 찍먹 또 하다 말고, 1권의 절반을 채 못 읽고 있었는데, 지금은 6권으로 분권된 세트를 거의 다 읽어 마지막 한권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프로도는 빌보가 샤이어를 떠난 뒤, 그를 따라 모험을 하고자함에도, 50살이 되도록 한참의 시간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운명이 그를 샤이어 바깥으로 내몰았고, 프로도는 동료들과 함께 수 많은 역경을 해치고 모르도르까지 도달했습니다.
프로도가 그 여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마지막 남은 한 권을 다 읽어야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집을 나서 멋지고, 또 위험하며, 한편으론 많이 걷고 밤마다 숙영을 하듯 지지부진하고,
또 한편으론 소중한 선물들을 받을 수 있는 모험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저와 같다 생각하니, 모험이야기는 정말로 이런 맛을 느끼게 해주는 구나 싶습니다.
마라톤을 뛰다보니 이렇게, 이전에는 도전조차 하지 못했을 두꺼운 벽돌들을 하나씩 깨는 맛이 참 좋습니다.
권당 400페이지짜리인 6권 세트의 수용소 군도도 벌써 세권 분량을 읽어냈고, 이제 줄어만 가는 쪽수를 보니 더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 읽을 책들도 벽돌이지만, 피핀과 메리도 모험을 통해 강해져 두려움을 이겨내고 명예로운 업적을 세웠듯,
저도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는 것 같아 자신감이 생깁니다.
사실 그냥 달렸으면 더 많이 읽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왕 시작한 김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하고 싶어 독서 일기를 꾸준히 썼습니다.
분량도, 내용도 신경쓰지 않고 그저 솔직하고 정확하다면, 그러니까 정말로 진실하게 썻다면, 스탈린 씨발새끼 한마디도 상관없이 썻지요.
처음에는 마라톤을 이만큼 달렸다는 기준의 일환이 되겠다 싶어 일기를 쓴 것인데, 이것이 책을 이해하는데에 제 예상 이상으로 무척이나 큰 도움을 주었네요.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을 정리하든, 나의 생각을 정리하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머릿 속의 흐리멍텅한 생각을 구체화시켜,
그것에서 배우고, 또 그것으로부터 다시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점이, 제가 글쓰기로 부터 배운 가장 유용한 현상이자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프로이트가 다른 누구도 아닌 환자 당사자에게 꿈의 의미를 물었듯, 저도 제 자신에게 책의 의미를 물었고,
칼 융이 그 방법론을 꿈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게 함으로써 환자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게끔 햇듯, 저도 그 영역이 책을 너무 벗어나지 않게 애썼습니다.
엄격하게 따른 방법론은 아니지만, 이 또한 제가 독서일기를 쓰며 얻어낸 것이고, 독서일기를 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수백페이지, 수천페이지 짜리 책을 읽은 뒤 뽑아낸 가치가 고작 달랑 한 줄일 뿐이라도,
그것이 진실로 유용한 가치라면 그것만으로도 값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 내가 아무리 뻔한 생각을 하고 아무리 뻔한 글을 써도, 그렇게 다져놓은 발판에서 유의미한 방향으로 단 한발자국이라도 나아갔다면,
그 한발자국이야말로 진짜 가치있는 내 것, 진실로 내가 생각해낸 무언가일테지요.
아마 우리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병렬독서를 하면서 쓴 독서일기 덕분에, 알게모르게 이 책에서 뽑아낸 가치를게 저 책에서 써먹는 경우도 있었고,
그 한두줄 짜리 가치가 새삼 세상을 달리 보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컨데 목소리를 보았네 라는 책에는,
청각 장애인 아이가 언어 체계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명사, 즉 눈에 보이는 것이 기초가 되어 관념의 수준까지 받아들인다는 일화가 나와있는데,
반지의 제왕에서는 거의 모든 표현이 눈으로 본 것으로 이루어져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을 눈에 보이는 것들로 생생하게 묘사한 표현들을 보고 감탄을 하는 한편,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명사와 관념을, 땅과 하늘의 언어처럼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내가 일상에서 눈을 제대로 뜨고 제대로 보지 않고 있던 것은 무엇인가? 내가 외면하고 있던 것은 무엇인가?
내가 눈으로 확인하지도 않고 생각하고 있던 것은 무언인가?
칼세이건의 에덴의 용에서는 인간의 뇌는 파충류와 공유하고 있을 정도로 아주 오래되어,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신체의 기본 기능을 조절하는 구역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어보다 행동을 더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그것이 다시 반지의 제왕으로 돌아가 행동을 묘사함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전달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지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책에서 책이 연결되고, 책에서 나로 연결이 되는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마라톤을 얼마나 더 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달리지 않는 것 보다는 한발자국이라도 더 내딛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디서 본 문장인데, 길은 아는 것과 그 길은 걷는 것은 다르다고,
허구언날 효율적인 방법과 절대적인 진리를 찾다가 멘땅에 헤딩하며 나아간 사람 뒷 모습만 쫒아다닐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제가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고, 앞으도로 그럴지 모르니, 머릿속에서만 완벽한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줄 책을 읽고자 하고,
앎을 충족하려 책을 읽기 보다는, 내가 내딛을 수 있고 손 내밀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출판계급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독붕이들이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절판 뿐이요. 얻을 것은 할인이다
만국의 독붕이들이여, 단결하라!
오늘까지 달린 거리
4970 / 42195 (약 11.77%)
찬란하고 위대하도다 독갤러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있는 100일이었다. 응원하겠습니다
100일 추!!
모범이시다 - dc App
100일 ㅊㅊ
멋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