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미래의 어느 날 나는 나이면서 이 우주가 그때까지 마련하고 있을 놀라운 기억 재생장치-몇 천억 광년의 과거의 기억을 재생시키는 녹음재생장치-를 갖추기도 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겠지. 그때 이 바다의 지금은 이 무섭고 슬픈 기억도 물론 재생되어 그때 내가 들을 수 있고 어머니도 들으실 수 있겠지. 그러나 이 무서운 이야기도 우주의 힘을 제압한 진화한 인류가 되어 있을 우리, 그때의 어머니와 나를 절망시킬 힘은 이미 가지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무서운 과거를 우리는 무서운 남의 이야기처럼 감상하고 난 다음에 그 슬픔이 다만 과거의 슬픔의 기록에 지나지 않음을 다짐하는 의식처럼 어머니와 나는 아주 질 좋은 차를 마실 것이다. 먼 먼 미래의 어느날. 그러나 지금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아직 있을 때. 말할 수 있을 때.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기억이 아직 있는 지금. 이렇게 부르면서 이 스산한 이야기를 하지만 어머니가 현실로 들으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들으실 때는 우리가 이미 몇 십 광년의 저쪽 자기 전생의 육체와 정신을 되받아가지고 그 옛날 슬픈 이야기에 조금 슬퍼하면서도 이미 우리는 그 슬픔 따위가 어쩌지 못하는 힘 있는 종족이 되어 있을 때이겠으므로 어느 쪽으로든 어머니를 실지로 더 슬프게 할 염려는 없고, 그러나 아마 얼마 남지 않음 이 해체의 시간을 지나가면, 어머니,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는 너무나 오래 기다려야 할 지금, 그리고 그동안에는 제 이 부르짖음이 비록 바다며 별이며 바람이며 나뭇잎이며 어쩌면 별처럼 지금 내 의식에 끼어드는 저 넋두리처럼 나와 알지도 못하는 다른 어떤 남의 말에까지 변신해서 옮아다닐 수는 있어도, 그것은 여전히 이 지금 생생한 내가 부를 수 있는 이름, 어머니가 아니겠기에 나는 지금 어머니를 불러봅니다. 어머니, 들리지 않으시지요. 그래서 마음놓고 부릅니다. 어머니 부디 안녕히 계세요. 다시 만날 그때까지.
광장으로도 읽고도 그저 그랬는데.. 저걸 육성으로 읽으신 거 보니까 마음의 울림이 크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