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no=24b0d769e1d32ca73dec82fa11d02831d5ca5516da218d33b13f2760b81b5b3702d90501a91ee9d24290dc3b2c3e682353dd2342a563406c37f13aa005a82727f922265cb1b221674dbccecaf3ed


김세영·허영만, 사랑해 1권-6권, 김영사, 2006.

1월의 마지막 독후감이다. 그래서 그냥 만화책으로 때우련다. 거기에 1월 결산 권수 뻥튀기까지 일석이조 ㄱㅇㄷ ㅎㅎ 불만제기 대환영.

허영만이 그린 것치고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 만화를 나는 고등학교때 시립도서관의 만화책 코너에서 발견했다. 이 만화의 매력은 잔잔한 스토리와 썰렁한 2000년대 초반의 개그도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 석철수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수많은 문인들과 가수들의 감명 깊은 문장들이다. 난 그 문장들에 감동해 수십 개를 자그마한 노트에 써서 고등학교 내내 들고 다녔다. 결국 그 노트는 이동식 수업을 했던 관계로 어느 책상 서랍에 놔두고 까먹어 영영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총 12권의 책을 오늘 6권까지 읽었다. 책의 주인공은 유서깊은 커플링인 석철수와 나영희. 둘의 나이 차는 자그마치 14살, 주민등록상으로는 15살이다. 이 철수와 영희가 만화로만 봐도 귀여워 미치는 딸내미 석지우와 알콩달콩 살아가며 사랑을 예찬하는 게 이 만화의 주된 내용이다. 2000년 일간신문을 통해 총 800회 이상 연재한 이 만화는 그 시대의 특성상 가부장적인 모습이 꽤나 보이지만(다른 것도 아니고 삼종지도를 진지하게 얘기한다. 여성은 어려서는 아빠를, 젊어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그 고리타분한 개소리 말이다.) 그럼에도 그 단점들을 보완해줄 아름다운 문장들이 그것을 상쇄한다.

나는 한때 만화작가이자 아마 바둑고수, 핑계의 제왕이자 뭐만 하면 소설가와 시인, 가수의 말을 인용하기 바쁜 주인공 석철수처럼 살고 싶었다. 그는 물질적 걱정이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엉뚱하고 아기같지만 때때로는 그 누구보다 진지한 얘기를 건네주는 사람이다. 그 격차가 너무 커서 아내인 나영희도 가끔 당신이 아기처럼 굴 때마다 너무 안 어울린다고 얘길한다. 하지만 아기같다는 말처럼 요즘 시대에 희귀한 수식어도 없지 않을까.

아기는 솔직하다. 아기들의 거짓말은 눈에 훤히 보인다. 아기들은 물욕이 없다. 아기들이 장난감 따위에 얼마나 애걸복걸하는지를 몰라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기들은 정확히 자신이 소비할 수 있는 만큼만을 욕망한다. 오만원 짜리 지폐와 오천원 짜리 싸구려 인형 중 전자를 고를 아기는 많지 않다. 나도 아기같지만 가끔은 진지한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것이 별로거나 잘못된 삶이라 여겨서가 아니라 내 성정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나는 좀 더 영악한 초등학생의 삶을 살고 싶다.

6권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영희가 철수에게 죽을 때까지 함께 하길 맹세한다고 얘기하자 철수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문장을 인용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문장은 다음과 같다.

네 대답은 충분치 않다!
나의 질문을 잘못 알아들었구나!
나는 죽음을 건너서까지 함께 가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실제 내가 저런 문장으로 답을 들었으면 뺨 한다구 때렸을 멘트지만 이 얼마나 매력있는 캐릭터인가. 혹시라도 여즉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