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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마이클 셔머를 위대한 사이비 과학 그리고 사이비 종교의 회의자로서 그의 업적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관용적이고 이해심이 많은 기독교 회의론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분명 대단하며 뛰어난 석사 심리학자이며 그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대화할 상대로서 최고의 인물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 그의 책에서 심각한 실망을 했으며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지금 과거의 리뷰를 업그레이드할 생각이다. 그의 주장에 대해서 나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1. "오직" 이성과 과학만이 도덕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는 책에서 과학적 이성이 커질수록 인간이 도덕적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 예시로 똑똑한 학생들이 소설속의 인물들의 감정을 더 잘 알아냈다는것을 말하며 과학적 이성의 발전이 도덕 발전을 이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주장에 부분적으로 찬성한다. 왜냐하면 과학과 이성은 도덕 발전의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반발하는것은 유일한 원인이냐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만약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람들이 도덕적이게 된다면 이런 말이된다. 당신은 조선시대 사람보다 도덕적이고 더 남을 이해하며 훌륭한 인품을 가졌다.
아니면 이런 말이다 당신은 당신의 할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인성과 공감능력을 가졌으며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세상에 맙소사 이것이 사실일까?
그리고 이 말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평범한 인간들보다 더 우월한 도덕능력을 가졌다. 고지능자들은 우리보다 대체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맙소사! 그의 말에 따르면 명문대 대학생들은 우리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과학자들은 특히 그렇다.
내 생각에 이것은 경험적으로 터무니없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따르면 원자폭탄도 도덕적 진보다 왜냐하면 원자폭탄에 죽은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었으며 그리고 이 원자폭탄이 전쟁에 희생될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셔머는 이 비참한 상황을 이렇게 본다는 것인가? 그에게 원자폭탄에 끔직하게 죽은 사람들과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그에게 멘발의 겐은 그저 "필요한 희생에 불과하다" 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인 발상인가? 일단 그가 원자폭탄에 희생된 사람들을 앞장에서 동정한긴 했지만 그의 결론은 이렇다 "필요한 희생이었다" 이게 그의 결론이다. 그의 도덕은 그저 공리주의적으로 돌아간다 이에대해서 다음장에서 다뤄보자
원자폭탄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 내가 이것을 알았다면 내가 과거에 쓴 그 공식을 찢었을것이다" 우리는 원자폭탄이 도덕적 진보라고 말해야한다면 이렇게도 말해야한다. 2차세계대전은 필요했다.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 2차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핵전쟁을 일을켰을것이다. 누가 우리에게 한국인에게 625전쟁은 도덕적 진보라고 말하면서 이유가 그 전쟁이 빈부격차를 없에서 한국인들을 평등하게 만들어서 능력주의 사회를 만들어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었으니 고마워해야한다고 말한다면 바로 그 사람의 뺨을 칠것이다. 마이클 셔머에 말에 따르면 우린는 핵전쟁을 않했으니 도덕적으로 진보시켜줬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공포 통치 덕분에 사회의 치안이 좋아진걸 칭찬하는것과 동급이다. 과연 사람들이 전쟁의 위협과 인류전멸의 위협중 고르라면 무엇을 고를까?
그리고 과학과 이성은 도덕을 발전시켰지만 퇴보도 시켰다. 바로 그런 예가 있다. 바로 우생학
http://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8568
http://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8420
http://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8344
놀랍게도 미국의 90퍼센트의 학교들은 우생학을 교과서에 집어넣었으며 하버드대 총장이 우생학을 옹호했으며 헬렌켈러 같은 양심적 지식인들도 우생학을 옹호했다.
그리고 미국과 스웨덴은 단종법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거세 시켰다. 이 얼마나 끔직한가? 그리고 이것들을 과학자들이 주도했다. 마이클 셔머는 이것을 사이비 과학이라고 하겠지만 우생학의 원리를 생각해보자 원리는 열등한 유전자들의 비율을 인위적으로 줄일수 있다는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나중에 이것을 사이비 과학으로 부를수는 있지만 이 원리는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로 우생학은 사이비 과학이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뉴턴역학도 사이비 과학이며 고전 진화론도 사이비 과학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이비과학이 준 혜택을 인정한다. 아니면 부정하던가 기독교의 마녀사냥만큼 비도덕적인짓을 과학자들이 태연히 했다. 그리고 이런 우생학을 국시로 삼은 나치는 몇천만을 죽였다. 얼마나 끔직한가?
2. 종교는 도덕 발전에 하는게 없다.
셔머씨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는 도덕 발전에 도움을 준적이 없으며 마녀사냥을 하며 노예제를 허가하는 인간들이다 그리고 기독교이 좋은 구절들은 다 현대에서 재해석한것이며 원래 예수에게 이웃은 유대인만을 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십계명은 종교를 강요한다.
먼저 반례를 하나 들까 예수는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이웃은 사마리아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무엇을 뜻한는가?
"예수의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해하려면 우선적으로 사마리아인들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사마리아인은 아시리아에 의해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후 유대인과 타민족의 혼혈로 생긴 종족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피를 더럽힌 존재라 멸시받고 박해받았으며, 그 반목은 매우 깊었다. [6] 그러나 예수는 그러한 사마리아인이라도 진정으로 자비를 베푸는 자는 이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이웃이란 율법학자와 같은 유대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혈통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뜻을 행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어려운 이들을 돕고 사랑하는 자들이란 것이다. "
이렇듯 예수는 심지어 잡종 이방인들보다도 사악한 자들을 이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혁명이었다. 예수의 이 주장은 엄청난 혁명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그시절 도덕적으로 천박했던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였다. 그는 온 힘을 다해서 비루하고 버려진 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모든짓을 했다 그전까지 창녀와 세리는 차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창녀와 세리도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왕도 종교적으로는 창녀와 세리도 똑같다고 말했다. 조던 피터슨이 말하길 현대인들은 이 혁명을 체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문제는 사라지면 잊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예수의 혁신적인 주장은 세상을 영원히 바꾸었다. 심지어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주장조차도 인간은 신의 형상을 가졌다는 천부인권 사상에서 나왔다.
그리고 니체는 이것을 비판하면서 계몽주의자들의 주장이 기독교 윤리의 변형일 뿐이라고 말했으며 이것은 지금도 진실로 믿어진다. 실제로 유명한 철학자
위르겐 하머버스가 실제로 지금의 서구사회의 도덕 기반은 기독교의 사랑 용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그는 무신론자다.
노예제에대한 기독교의 관점은 사람마다 달랐다. 노예제를 도덕적으로 옹호하는것이 종교적 기반이라고해서 그것이 종교가 노예제를 허가하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것은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에 과학적인 구실을 댔다고 과학이 유대인을 죽이는것 아닌것처럼 말이다.
마녀사냥은 여러 주장이 있지만 오직 기독교인들이 멍청해서 터졌다고 보기는 힘든것이 중세에는 마녀사냥이 드물었다.
https://namu.wiki/w/%EB%A7%88%EB%85%80%EC%82%AC%EB%83%A5#s-2.2
실제로 마녀사냥은 근세 때가 절정이었다 그 이유가 종교라면 왜? 중세시대때 절정이 아니었을까? 그 이유는 이것이 순전히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는것을 증명한다.
참고로 십계명에서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유대교 공동체" 에만 적용된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신앙을 갖는 사람들 한테만 적용된다. 이것이 어떻게 현대의 세속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주장인지 모르겠다. 종교인들의 내부 지침에 왜? 간섭하는가?
3.도덕은 실재하며 이성만 있다면 우리는 공통된 도덕에 도달한다.
마이클 셔머는 도덕 실재론자이며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도덕의 근원은 어디일까? 우리의 도덕감이다 공감능력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의문을 품을수 있다. 도덕이 감정에 근원한다면 우리의 법정에서 살인마가 우리의 감정보다 더 나은 처벌을 받는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살인자를 잔인하게 죽이는것을 정당화 시키는가? 아니면 우리처럼 공감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에게는 그런 의무가 없을까? 우릐의 도덕감은 여러개다 복수,용서,형벌,구원 모두 우리가 느끼는 도덕감이다. 그리고 셔머의 공리주의도 있으며 의도주의도 있으며 여러 주의들이 있다 이것들중 무엇이 옳은 것일까? 우리의 도덕감은 혼란스럽다. 모두 우리의 도덕감에는 옳아보인다. 그렇다우리의 도덕감은 혼란스럽고 통일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기준은 공감능력인데 도데체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할것인가? 살인마? 아니며 살인 피해자?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이 도덕의 근원이라면 우리의 형법체계는 부서질것이다. 그리고 드는 의문은 왜? 도덕을 지키는가? 셔머의 말대로 우리의 도덕은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졌지 옳아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즉 우리의 도덕감은 욕심과 동일한 조건에 있는것이다. 우리가 왜? 도덕의 재배를 받을까? 이것은 왜? 정당할까? 사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진 진화상의 발명품을 지금도 위대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가? 도덕감이 욕망과 다른점이 무엇일까? 셔머는 이에 대해서 답하지 못했다 그저 도덕감을 따르자고 말할 뿐이다. 사실 우리가 모두 이성적이라면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것도 허황됐다. 그렇다면 윤리학자들이 왜 토론할까?
3. 1차세계대전은 종교적 이유로 일어났다.
이 주장은 내가 뭐라고 말할게 없다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결론
마이클 셔머의 도덕의 궤적은 대체로 맞는 주장과 가정으로 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다. 몇가지 오류가 있지만 이 책을 즐기는데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작년에도 비슷한 글에 댓글 단 것 같아서 검색해보니 역시나 이 책 읽고 똑같이 화낸 사람 있네
아 그때 글 쓴 분 맞구나. 본문 제대로 안 읽어서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