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책상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였고, 어머니는 육체노동을 했다. 집안일은 언제나 어머니 몫이었다. 요즘 말로 워킹맘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술을 마셨다. 365일 중 364일을 마셨다. 어머니는 그 놈의 술마시는 남편이랑 일주일에 한번 꼴로 싸웠다. 하지만 싸웠다고 집안일은 줄어드는게 아니었고,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운명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집안일에는 자식들을 돌보는 것도 포함되었다. 집안일과 밥벌이를 동시에 하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애정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누군가는 매일 술이나 마시고 있는데, 밖에서도 집에서도 노동을 해야 하는 한 여성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나? 1987년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우리집까지 민주화시킬 힘은 없었던 듯 하다.. 필립 로스에게도 ’우리 가족의 과거를 담고 있는 보고(寶庫), 우리의 유년과 성장기의 역사가는 어머니(p.38)’였듯이 아버지는 아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유산>은 필립 로스의 아버지 허먼이 뇌종양으로 인해 죽어가는 과정을 그린 에세이다. 허먼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해야겠다. 허먼은 유대인이자 보험회사의 관리자로 한 평생을 일했다. 그는 외골수다. 필요 없는 물건은 다 쓰레기통으로 버려야 직성이 풀리고, 남자라면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하며,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쓰는 것은 죄악으로 여겼다. 와이프가 무슨 말을 할라치면 허튼소리 말라며 커트하기 일쑤였다. 허면의 첫인상은 꽤 불편했다. 아마 우리네 아버지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싫어했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필립 로스는 아버지의 고집과 습관 때문에 유년시절 화가머리 끝까지 나 방안에서 혼자 종종 책상을 내려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 아버지의 뇌에는 종양이 들어섰고, 필립이 그 종양을 보살펴야 될 때가 왔다. 종양은 허먼을 목숨을 단축하고 있었다.
뇌 속에 종양이 자라고 있는 그 때에도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그 습관은 변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물건은 버리고, 전기요금을 아끼고,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에는 잔소리를 한다. 필립이 굳이 그러실 필요 없다고 해도 그치지 않는다. 한번은 거의 폭발 지경까지 가서는 아버지에게 소리치려 하다 겨우 참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의 이 고집과 습관이 그의 평생을 지탱했고 , 그 뇌속의 종양과 싸우는 힘의 원천임을 깨닫는다. 그리곤 필립은 아버지의 쓸데없는 걸 아끼는 습관에 대한 일화를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일화가 꽤 웃기다.
허먼이 젊었을 시절 흑인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와서는 총을 들이 밀었다.
‘덤불 속으로 들어가’
‘나는 덤북속으로 안들어가. 너는 뭐든 원하는 걸 가져갈수 있어. 그런 거 들고 있지 않아도 가져갈 수 있어. 그건 치워도 돼’
아이는 총을 치웠고 허먼은 지갑을 넘겨줬다.
‘지갑이 필요없다면 돌려줘도 괜찮아.’
아이는 지갑을 돌려주고 달아났다. 그때 허먼은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가져갔니?’
‘어... 이십삼 달러요’
‘좋아. 어디 나가서 쓸데없는 데 쓰지마라’
‘흑인 소년을 위한 특별한 기부’ 쯤으로 제목을 뽑을만한 이 일화는 허먼을 고집스럽지만, 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걸 잘 포장한 사람은 아들 필립이지만.
허먼의 뇌종양은 필립에게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준다. 필립은 자긴 돈이 많으니 아버지의 유산(돈)은 다른 형제들에게 주라고 했었다. “네가 하랜대로 했다.” 허먼은 아들 필립의 말대로 했고, 필립의 마음속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마치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느낀 것이다. 완전히 뭉개져 버린 그런 느낌. 그리곤 ‘결국 내 기반을 이루는 감정이 가끔 내가 없는 도덕적 명령이라고 느끼는 것보다 관습 쪽에 더 다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p.123)’았다. 필립은 자기가 얼마나 비합리적인 존재이며 감상적인 존재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이고 싶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도.
뇌종양이 자라면서 필립이 신경써야될 것은 점점 늘어간다. 하지만 종양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를 둘의 인생에 어느때 보다도 가근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나는 틀니를 받아 호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놀랍게도, 그것을 손에 쥐었을 때 무척 기분이 좋았다. … 끈끈한 침이 잔뜩 묻은 의치를 받아 내 호주머니에 집어넣음으로써 나는 부지불식간에, 내가 소년기를 벗어나면서 우리사이에,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럽게 생겨났던 신처적 서먹서먹함의 분리선을 넘어가버렸다.(p.180~181)’
아버지가 죽기전에 다시 가까워질 수 있는 건 축복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기리는 글을 쓸 수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아들이 나를 기려주는 글을 쓴다는 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 나는 한번이라도 아버지에 대해 제대로 알아본적이 있었나?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에서 아버지란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배웠다. ‘나의 아버지는 그냥 여느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에게서 미워할 모든 것을 갖추고 사랑할 모든 것을 갖춘 바로 그런 아버지였다.(p.215)’ 아버지의 유산은 한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그 방법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였다.
양장이네
아버지란 참ㅎㅎㅎ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