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논어 독회를 주관하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논어 독회 개최를 시도하고자 하였으나 참가 희망 인원의 부족으로 무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늦게 글을 올리게 된 것은 제가 그 동안 개인적인 사정으로 논어 독회를 신경쓰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확인하게 되어 결과를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글을 검색해 보니 어떤 분께서 논어 독회와 관련해서 관심을 표해 주셨는데
아마 독회가 성사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다만 몇몇 표현이 저에 대한 온당하지 못한 비판이라고 생각이 되어 몇 글자 적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책 선정부터 독단적이라는 표현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논어라는 책의 경우 시중에 유통되는 판본이 너무나도 다양합니다.
일단 크게 주석의 문제만 가지고도 주자의 논어집주, 다산의 논어고금주, 형병의 논어주소 등이 있고
당장 교보문고에서 논어라고 검색하면 대략 10종 이상의 논어가 나옵니다.
이들의 책이 누구의 주석을 참고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현대의 작품들 예를 들어 이번에 독회를 하는 율리시스의 경우 판본이 2종으로 보입니다.(청소년을 위한 이런 것을 제외하면)
제가 생각하는 독회란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당연히 판본의 제한을 두는 것은 독회가 성립되기 위한 조건이 아닐까요?
다른 분들은 판본의 제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시지 않았는데
다른 분들과 달리 동양고전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이 부족하셔서 그런지
아니면 제가 분명 독회 설립을 위한 글에서 쓴 것을 읽지 못하신 건지 알 수 없지만
동양고전의 경우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누구의 주석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내용의 책이 됩니다.
특히나 몇몇분께서 말씀하신 논어강설과 논어한글역주를 비교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같은 논어라고 보기 어려울 겁니다.
사실 읽지 않았기에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각각의 저자 성향상 논어강설이 논어한글역주에 비해 논어 본래의 텍스트 해석에 집중 했다면
논어한글역주는 논어를 통한 자기생각말하기에 더 치중 했을 겁니다.
또한 논어집주를 판본으로 정한 것은 논어의 다양한 판본 중
우리나라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주자의 논어집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논어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성리학의 유입과 함께 들어온 논어집주는
조선시대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까지도 논어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을 지닌 판본이기에 논어집주를 선택한 것인데
그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신 것에 대해 유감입니다.
둘째 만약 제가 선정한 판본에 불만이 있으시면 본인이 직접 독회를 개최하면 됩니다.
독갤에 저만 논어 독회를 개최하도록 정해진 바 없고
본인이 글을 쓰고 시일을 정해서 인원을 모으시면 됩니다.
본인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다른이가 하는 것에 대한 불만만을 제기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어 독회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 논어의 한 구절로 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네요. - dc App
맹자 존버하면서 싱글벙글하고 있었는데 ㅠㅠ - dc App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걸 까는 븅신이 있었어?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