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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슬픔이란 단순히 괴롭거나 고통스럽기만 한 일이 아니라 언젠가 마주치게 될 나 아닌 타인의 슬픔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시련이기도 하다. 슬픔을 위로하는 일이란 타인이 느끼는 감정의 무게를 함께 감당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될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통해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며, 그런 고통을 이해하려 몸부림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픔에 빠졌을 때 아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2. 태연한 인생 | 은희경


주인공 하나는 과거에서만 존재하지만 현재를 지배하고, 주인공 하나는 현재에서만 존재하지만 과거에게 지배받는다. 사회가 빚어낸 틀에서 탈출하려는 사이 사람이 빚어낸 틀에 갇힌 인간의 안타까운 일인극은 처절하다 못해 허망하게까지 느껴졌다. 그가 저항을 빌미로 저지르는 냉소를 멈추지 않는 한 그의 인생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냉소해야만 패턴을 뿌리치고 고유성을 지킬 수 있다. 읽다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허무에 젖어들고 마는, 그런 소설이었다.


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세상에 존재할 법한 인물상'들을 세계에 꽂아두고 이야기를 이끄는 쿤데라의 솜씨는 그가 작가라기보다는 진행자에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배경 지식이 있다면 조금 더 재밌게 읽히겠지만 없더라도 별 상관은 없다. 나는 보편적인 인물들로 심오한 결말을 도출해내는 작품이야말로 좋은 소설이라고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매우 교과서적인 좋은 소설이다. 읽는 사람마다 이입할 인물은 각자 다르겠지만, 읽고 나서 깨닫는 결론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4. 가면의 고백 | 미시마 유키오


당신이 이 책을 읽다가 한 번쯤 이야기의 갈피를 놓쳐버릴 것 같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작품의 화자에게 제대로 이입하고 있는 것이다. 서사를 떠받치는 흐름이 하필이면 자기기만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배려와 그다지 친하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의미를 구하기 전에 문장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야만 한다. 그러나 태생부터 보편성을 벗어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사유가 온전히 깃든 아름답고도 애절한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들은 그런 단점들을 충분히 변호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파도 속에서 의미를 건져낼 쯤이면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리라. 가면을 써야만 했던 화자를. 아니, 히라오카 기미타케를.


5.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장은 의미를 나른다. 우리는 문장을 봄으로써 문장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생각한다. 메시지가 담긴 문장이라면 메시지를 곱씹게 되고, 인물을 묘사하게 된다면 인물을 상상하며, 배경을 묘사하게 된다면 풍경을 생각한다. 그러나 독자를 책 속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문장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문장일까? 경이롭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영역에 다다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을 통해 우리는 설국을 읽으며 겨울의 고장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의 고장을 여행하게 된다. 다만 시마무라라는 가명을 빌려서.


6.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신형철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나의 비루한 글 몇 조각보다는 작가의 문장 하나가 '정확하게'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와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다.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