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팡세의 1회 독회날입니다. 서론과 순서의 장에 관련된 내용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2/4 예정되어 있습니다.
주최자의 판본은 민음사로, 본문에 표기되어 있는 숫자들에 관해서는 을유판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10 - (197) - 파스칼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자아의 탐구를 매우 중히 여긴듯 보여진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고 누구인가? 이를 정의내릴 수 있는 날이 찾아올 수 있을까?
파스칼의 이런 태도는 12 - (195)에 있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파스칼은 자신이 스스로의 존재를 고민하지 않고, 삶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하려 하지 않고, 삶을 오시하며 죽을 때까지도 "나는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갔다. 이것은 내 삶에 있어서 큰 자랑이다" 라는 식의 삶의 태도를 가지는 이들에게 큰 반감을 드러냈다.
반면 자신을 탐구하고 고뇌함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낄 뿐이었다.
이렇듯 삶에 있어서 진실하고 민감하며 동시에 삶 그자체를 기만하거나 오만히 여기지 않고 살피는 것, 즉 삶 그자체에 충실한 자를 파스칼은 좋게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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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을유로 읽었는데 을유판은 서론이 없네... 미리보기로 보니까 민음사 '순서'가 을유 '차례' 같은데 일단 차례만 읽어본 바 역시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 낙서 같기도 하고, 중얼거림 같기도 하고 본문에서 말하는 '기계'가 뭔지를 모르겠음. 이거 아는 사람 있으면 좀 알려주셈... 두번째로 파스칼에게 있어 종교란 선험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음.
경험이나 지식으로서 이해되는 앎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하나의 당위라고 할까? 믿음과 증거를 하느님이 주신 것과 인간적인 부분으로 나눴다는 점에서 특히 그런 경향을 강하게 엿볼 수 있는 거 같음. 파스칼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믿음은 그에게 당연시 되는 거지 결코 증명하거나 알아가는게 아니라는 것.
나도 이"기계"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더라 :( - dc App
오호라... - dc App
흥미로운 점은 파스칼이 종교를 경멸하는 자들은 종교가 진실일까봐 두려워한다고 말했다는 부분. 즉, 나는 신이나 종교 자체는 나(파스칼)에게 절대 진리라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짜인데 종교를 믿지 않는 자들은 애써 이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점이었음. 베버의 신념 윤리가 생각나는 부분이라 특히 더 재밌었음.
기계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 장치의 신)'의 기계인지 뭔지... 내가 배경지식이 후달려서 그런가 이 부분은 본문만 읽어서는 이해가 안되더라...ㅠ
방금 읽어보다보니 느낀건데 기계적으로 같은 지점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닐까 생각이 든다.신을 찾아도 아무것도 없다 > 무엇이라도 믿을 수 있다면 좋겠다만 그럴 수 없다면 믿지 않는 것이 차라리 좋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결국 의구심과 회의적 태도로 인한 같은 심적 구간의 반복을 기계로 본 건 아닐까 조금 생각해봤어... - dc App
먼저 대략적인 감상으로는, 기독교인으로서 공감가는 구석도 많았으나 비 기독교인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올 글은 아닌 듯함. 물론 이 글이 완전한 형식의 글이 아닌, 메모를 이어붙였다는 것을 감안해둬야 하겠지만...
17번에서 자연적 논리로써 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신을 논리적으로 증명한 데카르트에 대한 비판으로도 보임. 기독교의 신은 기하학적 진리, 원소들의 질서와는 다른 영역에 있다고 덧붙이며, 신학과 이성을 분리해서 보고 있음.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는 데카르트에 의해 신학은 이성에게 편입되었고, 도스토옙스키와 니체에 의해 다시 광기로 돌아갔으며,
그 중간 시기에 파스칼은 데카르트에게 반기를 든 드문 사례라 표현하였는데, 대충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것 같음.
15번에서 회의주의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는데, 파스칼은 몽테뉴를 비롯한 회의주의자들을 비판했음. 회의주의를 통해서는 자연만 알 수 있을 뿐, 그 너머의 세계를 바라볼 수는 없기 때문임. 아마 이 부분은 뒤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음.
파스칼에게 있어서 신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종류에 가깝다고 보면 되는걸까? - dc App
ㅇㅇ 이성적으로 증명하기보단, 실존적으로 만나야 할 대상. 원래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한 은총론의 내용인데, 얀센주의자들이 이를 지지했다고 들었음. 신을 이성적으로 증명하려 한 아퀴나스, 데카르트와 대립하는 쪽인 듯...?
차례 마지막 부분 보면 파스칼은 이성과 신앙(믿음)을 대립하는 가치로 본 건 아닌 거 같음. 파스칼이 비판한 이성은 자연과학으로서의 이성이고, 오히려 이성로서의 종교를 말하는 걸로 보아 기독교적 가치를 올바르게 행하는 신념의 실천과 행위, 양심 등을 포괄해서 이성이라고 말한 거 같음.
나도 파딱쪽에 동의함. 파스칼은 감각과 이성과 상상력이라는 세가지 종류의 정신적 작용이 사람을 이룬다라고 말하는 거 같은데(본의 아니게 뒤의 파트 끌어온건 미안), 종교라는 게 흔히들 상상력, 감각 쪽에 머문다고 느끼는게 일반적이라면 파스칼은 이성에 있어서도 반하지 않는다고 말하구 싶어하는 거 같아
차례 마지막 어디 부분임...?
을유판으로는 12-46이라고 넘버링 되어잏음
을유판 14p. '사람들은 종교를 경멸한다. (중략) 이 점을 고치기 위해서는 종교가 이성에 상반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부분
조금 다른이야기인데 나 방금 이 흐름에서 판본의 통일이 왜 필요한지 느낀 거 같아... - dc App
어... 나 민음이라 페이지, 넘버링이 다른 것 같은데... 일단 밥 좀 먹고 와서 찾아보겠음.
아 그 부분 찾았음! 근데 전체적인 논지와 좀 다른 듯 해서 살펴봤는데... 일단 내 생각은, 당연히 종교는 이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고(신자가 기독교를 비이성적이라 할리는 없으니까) 인간에게 있어 이성이 중요한 것도 인정하고 있는 듯 보임. 다만 신을 이성으로써 증명하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인 듯 함. 신에 대한 믿음 없이는 신을 결코
만날 수 없다는 입장이므로, 이성이 있어도 믿음 없이는 신을 증명할 수 없다는 거지 ㅇㅇ 정리하자면, 파스칼이 신앙과 이성을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지는 않았으나, 이성으로 신을 증명한 데카르트와는 대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정도인 듯?
사실 나도 너무 헷갈리는 거시야...
오...나도 페이지 좀 알려주라 - dc App
아하 그렇다면 파스칼이 말한 이성이라는 말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가네.
민음 기준 43p 35번임!
읽어봤는데 감정과 이성이 향하는 방향을 동화시킨다 라고 해야할까, 믿게함으로써 이성적으로 이것이 올바르고 좋은 것이라고 깨닫게 하고 동시에 그 반대도 수행하게 하는... - dc App
찾아보니 "이성으로는 신에 대한 참된 인식에 이를 수 없다. 그렇다고 파스칼리 이성 자체를 부정한 것응 아이다.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성의 본래 역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런 글이 있긴 하네
오호... - dc App
이 책에 대한 지금 내 감상은 당황스럽다 인듯. 출간되기 위해 다듬어진 원고라기 보다는, 살면서 남긴 메모? 낙서를 끌어다가 출판 한거라, 아직까지도 이게 어떻게 하나의 편으로 구분된건지 그 기준조차 잘 모르겠음.
일반적인 책이 가지는 소위 "흐름"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결여된 느낌이라 그런가 봐. 맥락상 비슷한 생각들을 엮어서 일단 장으로써 붙들어두었다는 느낌이 좀 들기는 하더라. - dc App
차례 마지막글, 을유판으로 12-46이라는 넘버링이 부여된 글이 내 인상에 강하게 남음. 파스칼이 신실한 독자임이 느껴졌음. 그때보다도 지금이 종교에 대해 갖는 반감이 더 클텐데도, 그 방향은 지금과 비슷했나봐. 이 종교가 진짜일까 두러워하고, 싫어한다. 그래서 신실한 파스칼은 이 종교가 이성에 반하는 무엇인가가 아님을 증명키로 한거 같음.
ㄴ 그런 거 같아 ㅋㅋㅋㅋㅋㅋ 사실 이 책에 읽으면서 처음으로, 어떻게 읽어야하는가를 고민함. 흔히 읽는 책처럼 읽어도 되는 것인가? 한 넘버마다 고민하며 넘어가야 하는 것인가? 내가 파스칼이었다면 하고 상상하며 그 글이 암시하는 저 너머를 떠올려야 하는더
그런 의미에서 1장 제목이 차례(순서)인 것도 뭔가 아이러니함. 일관된 흐름으로 어떤 방향성이나 질서를 제시하는 건 아닌데 어떤 의미로 차례(순서)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궁금함..
나도 ㅋㅋㅋㅋ 차라리 2편 부터는 비참, 공허 이런식인데, 차례?? 차례가 무슨 의미지? 차례랑 차례편에 쓰인 글들은 무슨 관계지?... 차례 편에서 기이한 걸 고르라면 난 차례라는 제목 자체라고 생각함
민음사판 주석에는 "제1편의 표제어<순서>는 저자가 구상하고 있는,호교론을 담게 될 작품의 전체구도 또는 형태를 의미한다."라고 되어있는데 도움이 될까? - dc App
아~~ 전체적 구도라는 의미구나.... ㅋㅋㅋㅋ 민음사판 주석이 괜찮네
그런 의미였구만... 파스칼 머릿속에서는 나름 순서에 맞게, 차례에 맞게 짜여진 전체 내용을 메모 형식으로 보려니까 독자 입장에서는 읭? 할 수밖에 없긴 하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더듬어 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거 같아... - dc App
그 부분이 골 때린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파스칼이랑 어느 정도 급은 맞아야 얘가 흐리게 끝내놓은 글 뒤로 내가 이어가는데, 그에대한 대답 : 기계 해놓으면... 기계?... 뭔 기계?... 왠 기계?... 밥이나 먹을까... 하게 됨 ㅋㅋㅋㅋㅋ 난 씨발 파스칼에 비하면 먼지벌레보다 못하다고
이번 파트가 분량이 적어서 파스칼의 생각을 이해할만한 단서도 너무 부족했다는 느낌이 있음. 파스칼이나 팡세에 대한 배경지식이 아예 없다는 가정 하에 읽는다면 '저자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이러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구나...' 하는 단상 정도만 떠오른달까...? 아마 읽을수록 나아지지 않을까 싶음.
그랬으면 좋겠다...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끝나고 싶지는 않아유... - dc App
아, 그리고 게시글 마지막에 다음 독회는 며칠이라고 써주면 더 좋을듯. 다른 독회 보니까 그렇더라. 참가자들도 안헷갈리고ㅇㅇ
오 그래야겠다 독회초보라 모르는 게 많아서.. - dc App
일단, 파스칼이 종교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탁월함을 드는 게 재미있었음. 여기에 대해서 실존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를 믿음으로써 자기기만을 하려 한다는 사르트르 식의 비판이 생각났음.
'구속과 타락'이라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강조하며, 단순히 초월적인 신을 추종하는 것과 기독교의 차이를 말하는 부분도 흥미로웠음. 현대 기독교도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지 궁금함. 또 유대교와 기독교를 명확히 구분하던데 이 같은 뿌리를 지닌 두 종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분리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음.
마지막으로 종교를 알지도 못하면서 종교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을 호되게 지탄하는데, 정작 그런 말 하는 파스칼 자신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종교에 해박해서 기독교만이 진정한 종교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건지 의문스러움 ㅋㅋㅋㅋ
다들 여러생각이 많구나..나는 그저 무지할 뿐인데...ㅠㅠ - dc App
유대교랑 기독교의 차이점은 마지막 메시아를 누구로 보느냐가 가장 크지 않나 싶음. 예수님이 마지막 메시아고, 메시아께서 유대인만이 아닌 전 인류를 위해 희생하셨다는게 기독교라고 이해하고 있음
ㅇㅎㅇㅎ. 그럼 책에서 '유대인들의 신'과 '기독교의 신'을 구분한 건 파스칼의 독단적인 주장인가?
그리고 여러 종교를 알았느냐는건... 사실 1편만 보고서는 알 수 없고, 파스칼의 저서는 읽고있는 팡세가 전부라 모르겠지만... 톨스토이 처럼 돌고 돌아 결국 귀의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한 종교에 귀의하고 고민한 결과로 그런 결말을 갖는 사람도 있지 않나 싶음.
예수님이 기독교도의 입장에서는 "육화하신 하나님", 말하자면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가졌을 지언정 인간이 아닌 하나님 그 자체임. 예수님을 부정한다? 그건 기독교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거랑 같음. 그렇기에 부르기로는 야훼 라고 부를 지 언정 예수님=하나님을 부정하는 유대인들이랑 같은 신을 섬긴다고는 못하겠지
아 그런 거구나 ㅋㅋㅋ 설명 ㄳㄳ
글고 파스칼의 종교에 대한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 건, 약간 모순이 있지 않나? 싶어서였음.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를 믿는데, 그렇다면 내세를 주장하는 종교들 중에서 기독교가 가장 믿음직스럽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 부분이, 나도 고민을 해봤는데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전도를 받았음. 이게 바른 표현인가 고민되지만, 자연스럽게 라기보다는 내 뇌를 많이 거쳐서 전도가 된 셈임.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순서?같은 걸 고민하게 됐는데 그 첫번째가 하나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을 믿는 거라고 봄
나도 이 생각했는데, 여기에 덧붙여서 보자면, 파스칼의 논리는 순환논증의 오류를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함. 신을 찾아야만 신이 보인다는 논리는, 신을 찾지 못 찾은 사람에겐 "아직 못 찾은거야!"라는 무적의 논리가 됨... 반대로 이걸 알라나 조로아스터나 다른 신에게 대입해도 똑같은 결과가 되잖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사는 이를 구원하실 거라는 걸 믿는게 첫 걸음이니까, 신실한 교도로서 파스칼은 신앙의 기반을 말하는게 아닌가 싶음.
읽으면서 궁금했던 건데, "구속과 타락" 이라는 말이 종교에 속함으로서 안정되지만, 그탓에 구속된 사고에서 그런 시선에서밖에 보지 못하는 것과 그밖에 모든 것들이 타락으로 이어짐을 의미하는 걸까? - dc App
구속은 拘束이 아니라 救贖을 말하는 게 아닐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여 구원함'의 의미에서. 그리고 타락은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음 ㅋㅋ 항상 죽음으로 인한 불안에 떨어야 하는 인간의 숙명적인 죄? 원죄? 이런 정도로 생각해씀
ㅇㅎ...이런 뜻이 있었구나 ㄱㅅㄱㅅ - dc App
이건 기독교 신자와 비신자의 생각이 명확하게 다를 거 같은데 결국 종교가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관한 생각의 차이 아닐까 싶음. 누군가에겐 기독교 원리에 묶인 구속과 타락이 세상과 영혼의 안정을 의미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답답함과 무지함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고... 타락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본 세상 만물도 결국 그 틀안에서 정의될 수 있지 않
아 구속이 그 구속이 아니었구나 쉣ㅋㅋㅋ
나도 구속 뜻 하나밖에 몰라서 이지선다인가?하고 계속 궁금했는데 아니었나봐ㅋㅋㅋㅋㅋ - dc App
1편 1장 네이밍이 차례인건 흥미로운 부분. 대충대충 넘기다가 '진짜' 차례 인줄알았다
10-44 인간의 비참함이 이 모든 것의 근거가 된다. 사람들은 이 점을 보고 오락을 택했다. (을유판)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비참함'을 나는 선악과 얘기라고 생각했음.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또는 그의 말)을 의심, 불신했기때문에 선악과를 따1먹었고, 그건 결국 인간의 원죄가 되었지.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점을 보고 오락을 택했다." 이 말은 뭘뜻하는말일까..
오 나도 오락 이 부분 궁금했음. 오락이 뭐지..
이건 뒤에 "비참" 파트를 읽는게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