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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는 하나의 마도서이다. 수많은 마법사들과 음모론자들의 문헌이 그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이성에서 광기로 치닫는 서술은 하나의 절대적이고 핵심적인 세계의 비밀을 밝힌다. 세계에는 그런 비밀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비밀이자 모두를 미치게 만드는 최악의 주술이다. 곧, <푸코>는 오컬트의 규칙을 따른 채 오컬트를 해체하는, 연약한 내장을 가르는 내부로부터의 칼날과도 같다.
에코의 글들은 하나 같이 처음 읽을 때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소설의 배경과 이야기 자체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있었을 법한 일을 꾸며내는 평이한 방식이지만, 그것을 구축하는 방식이 범인의 방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돋는다. 그는 작중 세계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정보와 보조적인 텍스트들을 동원하고, 전문가가 면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실제로 이 땅에 한 때 있었을 현실을 고해상도로 그려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다른 수많은 정보들처럼, 은근슬쩍 에코가 이 분위기와 어조를 그대로 유지한 허구의 정보를 집어넣음으로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실제 과거를 글 속에서 조작해낸다. 그런 에코의 글쓰기 방식을 생각해보면, <푸코>와 같은 글을 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효과를 가장 잘 살려내는 글 역시 <푸코>이다.
<푸코>는 성전 기사단이라는 단체의 실제 역사를 연구하던 학생 카소봉이 어떻게 역사와 허구를 뒤섞어 생각하게 되고, 기어이 그 생각이 현실까지 잠식해 광란적인 삶을 살게 되는지를 그려낸 소설이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 나쁘고 불길한 이야기로만 들었던 오컬트스러운 이야기가 어떻게 삶에 점점 가까워지는지, 그것을 비꼬듯이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던 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실제로 믿게 되는지,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믿게 된 동료가 어떤 식으로 망가지고 최후를 맞이하는지, 그 모든 단계가 신비스러운 문헌들과 현실적인 사건들, 두 전혀 다른 흐름에 발 맞춰 진행된다. <푸코>는 일종의 마도서이자, 마도서를 쓰는 사람이 자신의 변천사를 기록한 수기와도 같다.
흥미롭게도, 이 마법과 오컬트를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바꾼다면 <푸코>는 보르헤스의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를 연상시킨다. <틀뢴>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괴상한 관념적인 것들이 실제처럼 기록된 백과사전을 읽던 주인공(저자와 동일시되는)이, 세월이 흐르며 어느새 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관련된 물품들을 파묻고 주인공이 본 것과 같은 백과사전을 유포하며 현실 위에 가상의 음모론적인 대안 세계를 드리우는 집단의 움직임을 느끼게 되는 단편이다. 에코는 보르헤스의 이 단편을 그의 기지와 지식을 총동원해 훨씬 더 크고 구체적인 형태로 부풀려낸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보르헤스가 <틀뢴>에서 어렴풋이 생각한 이상주의적인 발상을 증발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실제로 카소봉이 그의 두 동료와 함께 음모론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틀뢴>에서 나온 백과사전처럼, 총체적인 음모론/오컬트 전집을 집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의도적이지 않게 새로운 대안 세계를 위한 청사진을 짜게 되고, 이 청사진 속의 보다 더 의미 있어 보이는 세계에 한 번 빠지게 되자 그 청사진을 실제로 이루는 음모론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휘둘리게 된다. 그렇게 장난스러운 행동은 순식간에 의도에서 벗어나고, 대안 세계는 현실을 급속도로 대체한다. 국소적으로,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들에게만.
이 점이 중요하다. 상술하였듯, <푸코>가 일종의 마도서라면 그것이 제공하는 마법은 모든 마법을 풀어 헤치는 반-마법이다. 그저 놀이거리로만으로라도 마법과 음모를 다뤄보려는 사람에게, 그런 반어적인 관심조차 일종의 관심인 것은 분명하며 결국 순수한 관심으로 이것을 연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효과를 주리라 경고하고 있다. 왜냐면 결국 의도가 어떻든, 어떤 식으로 무언가를 해석하는 방식에 익숙해진다면 다른 때에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한 사고 방식을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늘 볼트를 조이는 동작에 익숙해진 노동자의 손이 온갖 것에 같은 행동을 하듯이 말이다. 차별적인 커뮤니티에서 아이러니컬한 방식으로 차별적인 농담을 하는 것이 결코 그 사람이 차별적인 사고 방식을 갖지 않도록 방지해주지는 않는 것과도 같다. 이것은 위험한 놀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이것은 실제 사례와 이해 관계를 무시하고 모호하고 추상적이지만 보기에 좋고 이상적인 거대 담론에 의지하는 것과도 같다. 실제로 <푸코>에서 주인공 카소봉보다도 훨씬 더 깊게 '놀이'에 빠지게 되는 벨보는 2차 대전과 68운동을 거치며 자신이 이러한 거대한 '운동', 파시즘과 반문화라는 흐름에 진심으로 빠져 보지 못한 것을 늘 후회하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세상에는 더 이상 이런 '역사'가 남지 않았고 이 축제 끝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지루한 일만이 남았다. 벨보가 자신만의 축제를 머릿속에 그리고 그것을 대안적인 현실로 삼고자 하는 것이 이상할까?
<푸코>는 신비로운 책이다. 이것을 표면적으로 오컬트와 신비주의, 음모론에 대한 책으로만 읽어도 좋고, 저자가 그 위에 드리운 현실과 이것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를 생각하며 읽어도 좋다. 에코의 글쓰기 방식이 늘 현실과 허구가 텍스트 상에서 교차하는 것을 전제로 두고 있는 것을 감안해 봤을 때, 이 두 종류의 독법이 공존하는 <푸코>는 틀림 없이 에코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소설이자, 최고가 될 수 밖에 없는 소설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P.S. 이번에 <푸코의 진자>를 읽을 때 2/3을 최근 나온 리커버 합본으로 읽었고, 나머지 1/3을 세 권으로 분리된 구판으로 읽었다. <장미의 이름>도 같은 버전으로 읽었어서 괜찮을 줄 알았건만, 웬걸, 그것보다도 훨씬 더 두꺼운 탓에 독서대로는 도저히 이걸 읽어나가기 어려웠다. 덕분에 내 독서대 고정대가 살짝 헐렁해진 것 같기도 하다.
아 한정판 배아프네
이거 나도 가지고 있지 ㅎㅎㅎ
너무 방대해서 소화불량 걸릴것 같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