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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서점은 낡은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지상으로 두 층밖에 되지 않아 납작하고 밋밋한 케이크처럼 보이는 상가 건물의 지하층을 사용하는 가게였다.
로 시작하는 이 단편소설은 요즘의 여느 한국소설과 마찬가지로
나름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특별히 크게 잘못한 일은 없는 것 같은데
내 인생은 좆됐구나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이다.
많은 한국 소설과 마찬가지로 부모 중 한 명은 아프고 나머지 한 명은 배우자를 건사하는데도 힘이 부친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는 건 언감생심이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유지하는 것에 급급할 수 밖에 없는
우울한 20대 여자의 이야기다.
그래도 이 소설이 여타의 다른 많은 소설과 달리 그나마 거부감없이 읽혔던 이유는
작가/캐릭터의 태도에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사실은 그리 예민할 것도 없는 사람이 애써 예민한 척하면서 자기가 아픈 것을 왜 몰라주는지에 대해 징징거리지 않는다.
(그런 징징거리는 많은 한국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들에 대해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나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값싼 위로나 헛된 희망은 사양하지만,
그리고 씩씩하고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처지이고 이 처지가 앞으로도 별로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것까지도 이제는 알지만
그래도 여전하게 그냥저냥 그럭저럭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의 태도에 걸맞게도 소설의 문장 역시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게 눈에 거슬릴만큼,
그래서 오히려 점점 더 문장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부자연스럽고 가식적으로 보이는 미문을 만들어내는데 노력하지 않고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담담한, 과장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어쩔 수 없는 것은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체념
그리고 그 체념이 결코 인생의 패배나 무의미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미약하나 당연한 삶의 의지
그리고 그걸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문장이 이 소설의 장점이고,
그런 미약한 차이가 바로 다른 수 많은 징징이들이 쓰는 한국 소설과 이 소설을 결정적으로 구분시켜주는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작 년년세세가 꽤 좋은 모양인데 언젠간 한번 읽어봐도 되겠네라고 생각했다.
개추
오뺘야 피터슨을 그분들이 비추 먹이러 온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