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23
오늘 144
총 1229 / 45000 ( 2.73% )

동아 연세 초등 국어사전 40~44 / +5

데스노트 1363 ~ 1472 / +109

뭔가 니아랑 멜로는 L을 두 개로 나눈 기분임.



혼자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식 : 역사 151~179 / +29

실제로는 토지가 사유화되어 있으면서도 공식적으로는 토지 국유의 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왕토사상, 이것이 좁게는 동양식 토지제도의 본질이냐 넓게는 동양식 제국 체제의 골간이다. 현실의 경제는 민간이 주도하는데 명목상으로는 관이 지배하는 질서이며,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기본으로 하는 체제다. 원래 경제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정치는 인위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동양의 역사는 인위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을 지배해온 역사가 된다. 자연스러운 민중의 일상생활을 정치적인 지배에 복속시키려는 것이 유학 이데올로기라고 보면, 그런 역사의 흐름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동양의 제국이 개국 초기에 번영을 누리다가 이내 추락의 길을 걸은 것은 그때문이다. 개국 초기에는 건강하고 강력한 정치력의 뒷받침으로 각종 제도를 시행해 경제의 틀을 유지하다가 중기에 들어 그 틀이 무너지면서 몰락하는 식이다.

개국 초기부터 균전제가 붕괴하니 거기에 기반을 둔 정치와 행정도 더이상 버티지 못한다. 그에따라 외척과 환관이 다시 중앙 정치를 좀먹기 시작한다.

닫힌 세계에서는 아무래도 정치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마련이다. 권력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고 그 중앙 권력을 구심점으로 모든 질서가 동심원적으로 자리 잡혀 있다. 그래서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당연히 그런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밖으로 팽창하는 본성을 가진 경제, 외부와 접촉하고 교류하려는 성향을 가진 문화는 모두 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한 제국이 제국 체제의 토대를 닦아놓은 뒤 수백 년 간의 분열기를 겪고서 성립한 당 제국은 중국식 제국 체제를 상당 부분 업그레이드했다. 그러나 그 진보는 바꿔 말해 닫힌 세계의 완성이었으며, 언제든 대문만 열리면 무너질 수 있었다. 문제는 당 제국 초기의 번영과 안정에 매력을 느낀 중국인들이 그 뒤에도 계속 닫힌 제국 체제를 고집했다는 점이다.

--

오늘날 서유럽 세계의 각국은 때로 서로를 경멸하거나 증오하며, 국가 대항 축구경기도 전재어럼 치열하게 벌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유럽연합이라는 느슨한 공동첼르 구성하고 공통의 통화제도를 운용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차이와 동질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결과다. 반면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은 유럽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문자(한자)와 이념(유학)에서 동직적인 문명권을 이루어왔지만, 오늘날 '동북아연합' 같은 공동체를 구성하거나 공동 통화제도 같은 것을 꿈꾸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분산의 역사가 부재했던 탓이다. 늘 중국이라는 압도적인 힘의 중심이 있었고 중심/주변의 질서를 취했기에 수평적인 국제 관계의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 문명이 분산과 분열을 기본 노선으로 취했다고 해도 통합과 집중화의 흐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집중화는 문명권의 존속과 정체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분산은 차이를 낳고 통합은 동질성을 낳는다. 차이만 있고 동질성이 없다면 같은 문명권을 형성할 수 없다.

분산과 분권화로 나아간 중세 유럽 문명에 최소한의 통합성을 부여한 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로마 제국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다. 그것들이 있었기에 중세 문명은 역사적, 현실적 동질성과 함께 종교적, 정신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로마의 느슨한 제국 체제는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다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 문명권과 융합되어 로마 - 게르만 문명으로 형질 변화되면서부터는 분산화의 노선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래서 로마의 역사가 부여하는 현실 정치적 동질성은 곧 사라져버렸고 나머지 요서들(법 제도, 군대 조직)만 로마 문명의 전통으로 남았다. 그러므로 로마의 전통보다 더욱 지속적이고 강력한 동질성의 축은 그리스도교다. 말하자면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정치적 동질성이 크게 약화된 대신 그 빈자리를 종교적 동질성이 차지하게 된 셈이다.

강자가 약자를 흡수해버리는 동양의 경우와 달리 게르만 문명이 선진적인 로마 문명에 흡수되지 않고 화학적으로 결합한 이유는 토착 문명의 힘이 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노르만 문명도 마찬가지였다. 노르만은 독자적인 생활방식, 종교와 제도를 가졌을 뿐 아니라 달력도 만들어 썼다. 게르만족이 그렇듯이 노르만도 더 밝은 문명의 빛을 향해 남쪽으로 밀고 내려왓따. 또한 게르만족이 그렇듯이 노르만도 그 문명권에 편입되면서 로마 - 게르만 문명의 확장에 기여했다.

노르만의 이동이 게르만과 다른 점은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로마 문명과 대등한 관계에서 통합된 게 게르만이라면, 노르만은 이미 유럽 대부분이 로마 - 게르만의 새로운 문명권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이동한 탓에 그 중심부를 뚫고 들어가거나 중심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노르만의 이동은 게르만의 이동만큼 굵직한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어도 로마 - 게르만 문명의 취약한 주변 지대로 물이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침투했다.(러시아, 영국)

노르만이 동참함으로써 서양 문명은 지리적으로 완성을 이루었다. 이제 서양 문명은 유럽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유럽 문명'이 되었다. 오리엔트에서 남유럽으로 건너온 문명의 씨앗이 중부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다시 서유럽과 북유럽을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대륙 전체가 동질적인 문명권을 이루었다.



오늘 읽은 부분들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들만 가져왔습니다. 제가 쭉 읽어보고 느낀 건, 중화 문명권은 엉덩이가 무거워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다보니 이런 저런 잡음이 들려도 고개를 절래절래 저어가며 버티다가 의자가 무너지면 같이 폭싹 주저앉고서 "의자 수명이 다했네."라며 똑같은 의자를 튼튼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친 반면, 서양은 '네 의자 쩔더라?'를 시전하며 시행착오를 겪지만 새로운 의자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화 문명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게 된 이유도, 서양 문명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서 서로 다른 문명이 합쳐지고 밤의 역사를 이뤄 문명의 dna를 물려줄 수 있던 이유도 확고한 중심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재밌어요. 지금도 중국은 닫혀있다는 걸 보면 정말... 문명의 근친ㅅ...읍읍.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 게 맞나 모르겠지 뭐람.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