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만큼은 내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20대중반 생의 전부인 것 같았던 절절한 연애에 실패후 실연의 상처를 품고 읽었던 터라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던 남자는 와타나베를 닮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역시 미도리나 레이코는 더더욱 아니었다.
으레 많은 여자들이 미련하게 구는 처음 몸을 내어 준 남자가 아니었음에도 그 남자와의 이별은 내게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었다.
당시에 나는 마음보다 영혼을 다친 것 같은 기분이었고 그런 기분은 나를 절망에 가두어뒀다.
내게 좋은 것이란 하나도 없는 희망,사랑,의지,삶,자유,시간,사람등 모든 관념 적인 것들은 내게 이미 죽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정신적으로 모든 게 피폐해진 그런 내가 읽어내려갔던 책이 우연히도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다.
문학사상사의 파란 표지의 상실의 시대
책장에 오래도록 묵혀있던 책이었고 왜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하루키의 책을 펼쳐 들었다. 아니 펼쳤었다.
사실 당시의 나는 방탕하지도 음흉하지도 않았은에도 와타나베가 마치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에도 안정을 느낄 수도 느끼지도 않고 누구도 그렇게 해줄 수 없는 결핍의 상태.
지극히 허세스러운 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무도 없는
학교의 공실에서 책을 읽으며 펑펑 울었다.
지나가던 동기가 엉엉 우는 나를 보고 들어와 어쩔 줄 몰라 할 만큼
오열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장면에서 감정의 복받침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와타나베였고 와타나베인척했다.
와타나베가 개츠비를 좋아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겠지만.
20대 중반 한 사람과의 끝이 세상의 끝이 되어버렸고
그 어두었던 마음들이 쌓이고 나를 공격해서 지금의 내가 되어버린지 오래이고 너무도 오랜시간이 흘러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 시간의 치유가 너무도 완벽히 들어맞은 나는 아직도
20대 중반에 읽었던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만나면 이렇게 묻곤 한다.
봄 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와 아직도 너무도 강렬하게 좆같은 문장임
나도 사랑에 실패했는디...읽어볼까
고딩~20대 초반에 사귄 여자는 죄 다 상실의 시대 팬이더라
영향 받아서 그런 건지 나도 서른 번은 읽은 듯...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어
나 20대중반 남자 최근 여친이랑 깨지고 마음이 아프다 읽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