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sf 영화나 만화에서 흔히들 하는 상상이 있다. 지구보다 작은 중력을 가진 행성에 가면 인간이 초인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중력의 임무는 거꾸로 지구보다 중력이 최대 수백배까지 더 강력한 행성에서 진화한 초 외계생물들이 지구인들의 부탁을 받아 항해하는 이야기이다. 이 행성에 착륙한 좆간은 중력이 강한 지역에서는 숨이나 겨우 쉬는 꼴이다. 그러나 이 책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물리적 고증을 따져, 이 행성의 강력한 중력에 적응하기 위해 외계생물들이 강력한 힘과 단단한 외골격을 갖도록 진화압을 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중력가속도 때문에 이 생물들은 조금만 점프해도 추락사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설정이 있다.
작중에서는 메스클린 인에 대한 묘사를 낮게 기고 원통형 몸통에 다리가 여러개며, 그중 한쌍은 집게발을 지닌 외골격 생물이라고 서술했었는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메스클린인에 대해 이렇게 상상했다.
이 책의 줄거리는 중력이 몹시 강하고 엄청 빠른 자전속도를 지닌 외계행성 메스클린에 지구인의 우주선이 불시착하게 되자 지구인들은 고대 ~ 중세시대 수준의 문명을 가진 메스클린에게 부탁하여 북극에 추락한 우주선을 찾아가달라는 것이다. 주인공 메스클린인인 발리넌은 대항해시대를 연상시키는 무역선의 선장으로써 지구인에게 그 댓가로 항해에 필요한 정보를 부탁한다. 그러나 지구보다 훨씬 큰 메스클린의 북극을 찾아가는 일은 험난하기만 하고, 발리넌이 항해 도중 위험이 발생할때 마다 인공위성과 무전기로 지구인들은 그들을 관측하며 월등한 지식으로 발리넌을 돕는다.
중력의 임무는 물리학적 고증을 철저하게 지닌 하드 sf라고 해서 기대하며 읽었는데 정작 나는 읽는 도중 상당히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물리학적 고증은 뛰어나나 생물학적 고증은 별로란 것이다. 메스클린의 행성은 지구에 비해 몹시 기온이 낮으며, 지구를 뒤덮는 물 대신 메스클린에는 액체 메탄으로 뒤덮혀 있으며 메스클린 인은 수소로 숨을 쉰다. 그러나 메탄같은 경우 무극성 물질이라 각종 이온화된 원소들이 잘 반응하지 못할테고, 물 대신 메탄을 매개체로 삼는 생물은 탄생하기 힘든 점, 메스클린처럼 엄청 무겁고 큰 행성은 그 중력으로 인해 행성이 평탄화되어 바다행성이 될 가능성이 높으나 정작 작중에는 멀쩡하게 육지가 나오는 점 때문에 조금 아쉬웠다.
실망스러웠던 점은 생물학적 고증뿐만이 아니다. 사실 결국 하드 sf라고 해도 결국 픽션이고 이 책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물리학적 고증을 잘 지켰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불만이었던 점은 이 책이 철저한 고증을 지켰지만 정작 하는 이야기가 고루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지구 환경과 완전히 동떨어진 행성과 그곳에서 진화한 외계인이 어째서 이리도 친숙한 것인가. 외계인의 신비함이나 미지와의 조우같은 감격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지구 반대편 외국인이 이 메스클린 인들보다 더 낯설고 신비로운 존재일 것이다. 또한 이 책 내용은 메스클린인들이 항해하는 이야기가 절대 다수이며 어쩌다 위기에 마주치면 지구인들이 그들을 돕는다는 단조로운 이야기이다. 대항해시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굳이 저 멀리 외계행성 설정에 머리 끙끙 싸맬 필요 없이 몇백년 전 대항해시대 지구인 이야기를 하면 되지않은가? 그게 아니라면 고작 월등한 과학지식으로 뒤떨어진 문명을 가진 외계인들을 돕는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세세한 설정을 짠 것인가? 얼핏 보면 서로 대등한 계약관계로 보이는 지구인과 메스클린인의 관계는 월등한 과학 지식의 차이와 정보를 주는 쪽과 받는 쪽이라는 관계 때문에 미묘한 상하관계가 형성된 것도 읽는 도중 눈에 계속 밟혔다. 그래서 나는 읽는 도중 조금씩 불만을 갖고 읽게 되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 책을 읽던 도중 느낀 소감은 이 책의 이야기가 맹꽁이 서당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이야기. 낮선 이방인들과의 만남과 갈등. 그리고 적절한 협상과 싸움으로 위기 탈출. 뭔가 친숙한 재미가 느껴지는게 딱 맹꽁이 서당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기이한 행성과 생물체들의 설정을 짜는데 나름 머리 끙끙 싸맺을 것인데 그렇게 고생해서 지어낸 sf에서 친근하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가..
그러나 내 이런 불만은 결말부를 읽고 완전히 사라졌다. 우주선이 추락한 북극에 도달하자 발리넌은 통신기의 렌즈를 가리고 지구인들에게 빅딜을 건다. 상인인 발리넌이 요구한 것은 다름아닌 과학지식. 사실 메스클린의 행성은 지구에 비해 메탄이 액체가 될정도로 낮은 온도와 흉악한 중력과 자연환경 때문에 과학이 발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발리넌은 항해 도중 지구인들이 발휘한 지식에 본능적인 거부감과 동시에 과학에 대한 위력을 감탄하며 자기들도 과학을 발전시킬 비밀스러운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리고 우주선을 볼모로 삼은 협상을 시작하자 그제서야 메스클린인과 지구인 사이에 형성된 미묘한 상하관계가 사라지고 처음으로 대등하게 서게 되었다. 과학지식에 대한 이 외계인의 장광설이 짧은 지식과 판단력을 갖고 입이 삐쭉 튀어나오며 책을 읽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더불어 멍청한 외계인들과 이를 도와주는 착하고 똑똑한 인간이라는 단순한 서사에서 탈피하여 좀더 입체적인 이야기로 변하였다.
읽는 도중 계속 심술이 났었는데 결말부 적절한 반전으로 아주 만족스럽게 책을 닫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