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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일 2020/10/23


- 105일차 2021/02/04


- 오늘 읽은 책


1. 반지의 제왕 6권 - J.R.R 톨킨 -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김번, 김보원, 이미애역

215p ~ 285p - 71p



-105일차, 드디어 반지의 제왕이라는 거대한 이야기가 끝이 났다.


하.. 이 6권짜리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 경험이 얼마나 즐겁고 알찬 여정이었는지, 

그러면서도 호빗들이 처음 샤이어를 떠나 도로와 숲을 터벅터벅 걸어나갈 때 처럼 얼마나 지지부진하고 어려운 여정이었는지,

그럼에도 그 길을 걸어가다 예상치도 못하게 받은 선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반지의 제왕을 읽기 전의 나로서는 알지 못했을, 아니 느끼지 못했을 기분이다.


오랫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도 나오고, 감동도 했고, 무엇보다 즐거움을 가장 많이 느꼈지만, 

사실 이제서야 반지의 제왕이라는 두꺼운 소설을 읽어야 되나 라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소설은 노잼이고, 영화가 명작이고, 애초에 반지의 제왕 같은 게 흥미가 안 생기고 재미없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권유할수 있을까?


우리는 대중이 검증하고, 전문가가 검증하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검증한 멋진 작품들을 명작이라고 부르고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문화가 모든 개인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모두가 좋다고 할 때, 아니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

더구나 더 직관적이고, 더 쉽고, 더 자극적이고, 더 이 시대에 어울리는, 혹은 꼭 맞는, 혹은 선동적인 가치와 표현이 담긴 책들이 많으니까.


내가 사람들이 반지의 제왕을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유는, 이 책에 담긴 가치와 지혜가 지금 이 시대의 새로이 떠오를 수 있겠다 라는 믿음 때문이다.

심지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읽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강제로 읽게 할 수 없는 노릇이고, 강제로 읽힌다 한들, 독서란 다른 사람의 두뇌로 하는 사색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책을 읽는 당사자가 이 책의 가치를 다시 혼자서 사색해내지 않으면, 이 이야기에 담긴 많은 지혜들이 그저 오래전 노인네가 재밌게 쓴 활자 나부랭이로 남을 뿐이겠다.


그리고 대체 지혜랄게 무슨 소용인가? 서로를 혐오하고, 서로의 말을 듣지않고, 그러면서도 누군가 손내밀어 주길 바라고, 그렇지만 내민 손마저 뿌리치는 이 시대에 

지혜랄게 존재 할 수는 있는 것인가?


그래서 글 재주 없는 나는 이렇게 말 할 수 밖에 없다. 

프로도와 샘이 모르도르 한가운데서 모든 가능성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새로운 힘을 얻어 한발자국 한발자국 나아갔듯이.

모두가 연결되 있지만 모두가 만날 수 없는 혐오의 시대에서야 새로운 지혜가 나타난다고 믿는다.


아무런 지혜도 없이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지혜란 무엇인가? 고작 소설에서 우리가 지혜랄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지식은 형태가 있다. 활자가 되었든, 수치가 되었든, 몸짓 발짓이 되었든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가 있다.

정보를 인식해서 내가 써먹을 수 있게 머릿속에 저장해놓으면 그것이 바로 지식인데, 내가 써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는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어떤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식은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지혜는 턱없이 부족하고, 이미 존재하는 지혜마저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 빈자리를 더 나은 지식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무엇이 더 나은 지식인가?


그래서 우리는 지식을 겨루어야 한다. 지식의 군사경쟁이 벌어지고, 지식의 권력이 나타난다.

하지만 솔제니친이 묘사한 수용소 군도처럼, 모든 가치가 멸종하고 오직 권력만이 남은 생태계에서는 모두가 고통받는다. 

더 많이 아는 자가 더 적게 아는 자를 짓밟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한번 짓밟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것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나는 아닐거라 나에겐 그런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장담하지 마라, 수용소 군도의 주민들 중 많은 이들이 나는 아닐거라 생각했고, 

심지어 그 권력에 가장 충성했던 사람들조차 그러했다.


지혜 없이 지식만이 남는다면, 그 권력이 한낱 독붕이인 우리.. 그래, 니들은 아니어도 적어도 나를 고통으로 밀어넣을 것이다.

지혜를 잃어버린 지식이 우리를 늪에 빠트릴 것이다. 내가 더 높은 곳에 있어도 누군가가 나를 잡아 끌어내린다.

모든 것이 멸종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권력이므로, 권력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에겐 그 권력에 맞서 나의 위치를 가능한 안정적으로, 오래 지속할 수 있게 도와줄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끌어내려지면 안되고, 사람들이 나를 끌어내리게 하면 안되고, 

내가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 그사람이 말년의 사루만처럼 자신에게 조차 득될 것이 없이 그저 파멸을 위한 복수를 저지르게 하면 안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고,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줄 필요가 있고,

이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막을 필요가 있다. 그 방법이 바로 지혜이다.

무의미한 고통과 파멸을 막는 것이 지혜라 할 수 있겠다.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며 부조리한 현실에 무의미한 고통을 느끼는 주인공에게 공감하는가? 예술로써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

그렇다 해도 자신이 그 상황 속에 처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고, 처해 있다면 계속 그러한 상태로 있기는 싫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오늘 날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지혜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식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있지만, 지혜는?

지혜는 형태가 없다. 형태가 없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올리버 색스가 쓴 목소리를 보았네라는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귀가 들리지 않아 언어를 배우지 못한 청각장애인 아이는 뒤늦게 수화 교육을 받아보았지만, 당장은 아무런 내용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의문문은 물론 과거와 현재 같은 시제 또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하나 이해해가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명사였다.

그 아이는 귀는 들리지 않았지만, 눈으로 세상을 훌륭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눈으로 본 것, 즉 명사를 이해하는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이윽고 많은 수의 명사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시작하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관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관념적 표현을 이해하고, 질문을 이해하고, 


사고하기 시작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바탕이 되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이 일화를 보고 나는 반지의 제왕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반지의 제왕은 눈에 보이는 것을 활용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었다.


지식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행동, 지혜는 그 행동에서 나타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러니 반지의 제왕은 행동으로 지혜를 보여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 형태없는 지혜를 글로 표현함으로서 눈에 보이게 만들어 손에 욺켜쥐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호빗들이 이웃들과 선물을 주고 받듯이, 나도 내가 쥔 것들을 나누고 싶다. 

그러나 내 글 솜씨는 한웅큼 가득 쥐어잡아 고작 손가락 사이로 바스러져 나오는 조각들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니, 

내가 이 책에서 받은 그 조그만 조각을 딱 하나만 표현해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호빗은 보잘 것 없는 종족이다. 먹고 자고 마시기를 좋아하며 싸움과 모험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욕심도 별로 없어 재산에도 관심이 없다.

빌보가 마지막 모험을 하러 떠난 후, 프로도는 사우론이 중간계를 지배하기 위해 세력을 키워나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사우론이 찾는 절대 반지가 바로 빌보가 가지고 있던 그 반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빌보는 떠났고, 간달프는 모험을 재촉한다. 사우론은 중간계를 파멸시키려 한다.

그것을 막기 위해선 절대 반지를 파괴해야하고, 절대 반지는 사우론이 지배하는 모르도르의 불화산으로 가져가야만 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것이 바로 프로도 뿐이라니? 왜 그가 그런 일을 해야하지?

왜 보잘것 없는 종족인 호빗 중 하나일 뿐인 프로도가 그런 일을 해야한다는 거지?

간달프나 요정들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들이 해야하지 않을까?


절배 반지는 누구나 손가락에 끼어 넣기만 하면 쉽게 그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반지는 모든 이를 유혹해서 악의 힘에 굴복시킨다.

이것은 그 누구라도 손 쉽게 악의 힘에 물들 수 있다는 경고이다. 악에 물드는 것이 그저 손가락에 끼우기만 하면 될 정도로 손 쉬운 일이라는 뜻이다.


간달프는 이 위험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반지를 건들이지 않고 프로도에게 맡겼다.


그렇다면, 이 힘을 다룰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자가 반지의 힘을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바로 요정의 여왕 갈라드리엘이 이러한 점을 미리 알고 스스로를 심판대에 세웠다.


갈라드리엘은 자신이 반지를 손에 넣는다면, 위험하며 아름다운 여왕이 되어 사우론을 물리치고, 도시를 번성시키고 요정들을 지킬 수 있었겠지만,

그것은 악의 군주 대신 악의 여왕이 도래했을 뿐임을 자각하고 반지를 거부한다.


이렇듯 그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자들은 악의 힘을 무기로 사용해 사우론을 물리친다 하더라도, 그 끝에는 또 다른 악의 군주가 탄생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지는 그 누구보다 약한 존재에게 맡겨져야했고, 싸움도 재산에도 관심이 없는 호빗들이 그 악의 힘을 누구보다도 더 오래 견딜 수 있었다.


가장 욕심이 없으며, 싸움을 원하지 않고, 파멸을 원하지 않는 존재가 악의 힘을 짊어지고 그것을 파괴할 운명을 지닌 존재라는 뜻이다.

더구나 프로도는 빌보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험에 대한 갈망을 키워왔다. 우리도 마음 속으로는 이 지루한 일상 속에서, 혹은 갑갑한 현실 속에서 

어느정도는 새로운 것을 바라고 있지 않나?


그러니 악의 힘을 짊어지고 모험을 떠나야 하는 인물은 나를 짓누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도와주는 다른 누구도 아닌 독자 자신이다.

미래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 내 안녕을 희생해서 새로운 곳으로 도약해야한다. 그 누구도 아닌 별볼일 없는 호빗인 나 자신이.


그 여정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고향, 나의 집, 나의 자아 속 고통을 치워버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나 자신과

그런 내가 새롭게 아끼고 가꾼 고향의 영원한 풍요로움이다.


프로도가 독자 자신임을 이해한다면, 더 나아가 프로도와 반지에 얽힌 인물들이 나 자신의 일부임을 이해한다면

반지의 제왕 속 모든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지혜 그 자체로서 전해질 것이다.


그 모든 여정을 기록한 붉은 책이 샤이어에 남아 오래도록 읽혀 사랑스러운 샤이어의 대지를 더욱 소중히 했듯이,

이것이 반지의 제왕이 전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지혜일지라도, 우리의 땅을 풍요롭게 해줄 영원한 가치를 지녔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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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한 책 - 16권]


1. 융 기본 저작집, 정신 요법의 기본 문제

2. 죄와 벌 (총 2권)

3. 체호프 단편선

4. 목소리를 보았네

5. 반지의 제왕 (총 6권)

6. 괴테와의 대화 1권

7. 에덴의 용

8. 수용소 군도 1권, 2권,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