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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부조리의 추론>
- 1절 <부조리와 자살> (15~24)
1.
음. 우선 이 절의 전반적인 내용은 "앞으로 내가 무엇무엇을 하겠다"라고 밝히는 거야.
다행히도 이 부분에 어려운 내용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좀 이리저리 새면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음.
암튼 시작부터 그 유명한 문장이 나오지. 첫 문단 내용은 아래와 같음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 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 밖에, 세계가 3차원으로 되어 있는가 어떤가, 이성의 범주가 아홉 가지인가 열두 가지인가 하는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그보다 먼저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만약 니체가 주장했듯이, 어떤 철학자가 존중받는 존재가 되려면 마땅히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실천하여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대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대답 다음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행동이 뒤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마음속으로 느낄 때는 자명한 것이지만 막상 이성의 차원에서 분명히 밝히려면 깊이 파고들어가 연구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뭐 문장 단위에서 어려운 것은 없지.
까뮈가 하고 있는 말은 이런 거야. 철학이란 평소에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의심하고 생각하는 작업이잖아.
그렇게 존재란 무엇인지 생각하고, 이성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윤리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그렇게 면밀히 검토된 뒤에야 비로소 무언가를 지식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철학자는 "이 삶이 살 만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선 대답을 해야한다는 거야.
보통 사람이 그냥 산다면, 적어도 철학자는
"이 삶이 살 만한 것인가?" -> "그렇다" -> 산다
"이 삶이 살 만한 것인가?" -> "아니다" -> 자살한다
라는 두 가지의 경로 중 하나를 무조건 거쳐야만 한다는 거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혹은 질문해보지도 않고) 그냥 산다면, 이는 철학자로서 불법적인 일이지. 적절하다고 검토되지 않은 행위를 막 하는 거니까.
그리고 만약 삶이 살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놓고도 계속 사는 사람이라면, 사기꾼이거나 최소한 철학자로서는 실격인거지.
왜냐면
"속임수를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바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옳다는 것을 우리는 하나의 원칙으로 세워볼 수 있다." (19)
니까.
그치만 이런 철학자 자신의 의무와 관련된 문제 말고도,
까뮈는 이 질문이 시급히 다뤄져야 할 이유 하나를 더 제시해.
"나는 존재론적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중대한 과학적 진리를 주장한 갈릴레이는 그 진리의 주장 때문에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자신이 주장한 진리를 너무도 쉽게 부인해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잘한 일이다. 그것은 화형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진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구와 태양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의 주위를 회전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말하자면 하찮은 문제인 것이다. 반면에,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죽는 사람들은 많다. (...) 그러므로 내가 판단하건대, 삶의 의미야 말로 질문들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16)
즉, 어떤 질문은 중요하고 어떤 질문은 덜 중요한데, 그것은 그 질문을 대하는 사람의 행동에서 드러난다는 거야.
"지구와 태양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의 주위를 회전하느냐"라는 문제는 그것을 위해 죽음을 감수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지.
그리고 다른 많은 진리에 대한 것들도.
하지만 유독 "삶은 살 만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목숨을 건다는 거야.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지. 그래서 다시 인용하면
"삶의 의미야 말로 질문들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삶의 의미"라는 단어를 일단 체크해두자.
2.
그래서 까뮈는 스스로 그 탐구를 시작하고, 그 출발점을 "자살"이라는 행동을 분석하는 것으로 정한 거야.
까뮈의 논리는 이런거지.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정당한가?" -> 그럼 나도 자살한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정당하지 않은가?" -> 응 그럼 살자 (휴 다행이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논리를 일단 분석해보는데,
우선 사람들은 대부분 철학자가 아니므로 깊은 고찰 끝에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얘기를 하지.
"깊이 반성한 끝에 자살하는 일은(그렇다고 이 가설이 전연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다." (17)
그리고 대신 "거의 언제나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위기의 발단이 된다."(17)고 말해.
아주 납득이 가는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이, "삶이 살 만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살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
다만 "자살이라는 행동 자체에서 그 행동이 가정하는 결론들을 끌어내는 것은 보다 용이한 일"(18)이라고 말해.
그러니까 우리는 자살을 한 사람들은 모두가 아주 미묘할 수도 있는, 그리고 각각 다른 많은 이유들로 자살했다는 점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그런 행동으로부터 그들이 공통적으로 "삶은 살 만하지 않다"는 어떤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는 거지.
"다만 그것은 '굳이 살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데 불과하다. 물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위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그중 첫째 가는 이유가 습관이다. 고의적으로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습관의 가소로운 면, 살아야 할 심각한 이유의 결여, 법석을 떨어가며 살아가는 일상의 어처구니 없는 성격, 그리고 고통의 무용성을 본능적으로나마 인정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18)
그러면 그들은 왜 그런 생각에 도달했을까?
이에 대해 까뮈는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는데, 어쨌든 결론은 "정상적인 사람이면 누구든 한 번쯤은 스스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 터이므로,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감정과 허무에의 갈망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쯤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해.
이에 대한 그 간략한 설명이 19페이지 첫째문단의 내용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뒤에 덧붙이도록 하겠음. 축약하면 우리가 삶의 부조리를 느낀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들이 자살한 이유는 근본적인 층위에서는, 세계의 부조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거지.
어쨌든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이 절의 핵심적인 문장이 나와.
3.
"이 시론의 주제는, 바로 이러한 부조리와 자살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 자살이 어느 만큼이나 부조리에 대한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려는 데 있다." (19)
여기에 짚고 넘어가야 할 세 가지 내용이 있어.
첫째, 세계의 부조리라는 것은 까뮈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어느 정도 감각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하는 내용이라고 전제한다는 것,
둘째, 까뮈 자신이 그 세계의 부조리에 대해 이때까지 많은 말을 해왔고 독자들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안 다고 전제한다는 것,
셋째, 그 부조리라는 것은 정확한 내용이 어찌됐든 언뜻 보기에는 삶을 포기할 정도로 비관적인 내용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런 거야. 세계의 부조리라는 게 있어. 그건 너무 견디기 힘든 거고, 어찌할 수 없는 거고, 또 그렇다고 말한 게 바로 까뮈 자신이야.
까뮈가 보기에, 자살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자, 그것의 해결책으로서 사람들이 선택하는 어떤 행동이야.
그러므로 여기서 까뮈가 논하고자 하는 정확한 질문은 "삶이 살 만한 것인가?" 보다는, 바로 앞에 인용했듯이
"자살이 어느 만큼이나 부조리에 대한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할 수 있지.
자살은 세계의 부조리를 정말 말끔하게 해결해주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까뮈는 자살하는 것을 택하겠지.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해야겠고.
4.
하지만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게 꼭 간단한 건 아니야.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이라는 게 자명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
"자명한 문제는 다른 자명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그릇된 짐작을 한다. 선험적으로, 그리고 문제의 항을 뒤바꿔서 생각해본다면, 사람은 자살을 하든가 안 하든가 두 가지 길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듯이, 철학적 해결에도 긍정과 부정 두 가지밖에는 없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쪽이나 저쪽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여전히 의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도 고려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 (20)
라고 말을 해.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여전히 의문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인데, 내가 보기엔 논리의 전개가 정확히 맞지는 않아.
왜냐면 문제는 "철학적 해결에도 긍정과 부정 두 가지밖에는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 수 있는지를 밝혀야 하는 상황에서
까뮈는 긍정이나 부정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행동의 패턴들을 나열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철학적 해결"의 양상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동에 대한 분석일 뿐이니까.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어쨌든 '대답의 양상이라는 것이 다양할 수 있다'는 논지를 뒷받침해주는 내용들이야.
(간접적으로라는 단서가 붙는 건 '철학적 해결로서 대답의 양상도 다양할 수 있는가'를 직접적으로 말해주진 않기 때문이지)
아무튼 "삶은 살만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이쪽이나 저쪽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여전히 의문 상태"에 빠져 있기도 하고,
또 "부정적으로 대답한 사람도 마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20)하기도 하지.
또는 "이와 반대로 자살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삶의 의미를 굳게 믿는 경우가 자주 있다"(20)
이렇게 모순적인 태도를 이율배반이라고 부르는데,
까뮈는 "언제나 이와 같은 이율배반은 흔히 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토록 논리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 이율배반이 심한 경우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20)라고 하지.
5.
"그렇다면 이와 같은 온갖 이율배반과 혼미 앞에서, 사람이 삶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견해와 그 삶을 버리는 행위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믿어야 마땅할 것인가? 너무 이런 방향으로 과장할 일은 못 된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하여 가지는 애착에는 이 세상의 모든 비참보다도 더 강한 그 무엇이 있다. 육체가 내리는 판단도 정신이 내리는 판단 못지 않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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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근데 너무 길다.
한 절에 한 편은 택도 없을 것 같네. 아무튼 이제 1절은 두 페이지 남았는데,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회차에 나머지 부분 독해와, 부조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 같음.
이런 형식 글을 처음 써보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그리고 쓸데없는 부분을 너무 상세하게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다음 글부터는 진짜 전체적인 논리의 흐름만 딱딱 짚으면서 가야 할 것 같다.
피드백 주면 감사히 받겠음 ㅠㅠ
정셩추
공성추
글고 길게 썼지만 추천은 그냥 하지 말아줘 ㅎㅎ; 너무 도배느낌될까바
정독했어 쏙쏙 이해되고 재밌다 계속 해줄 거지????? 본문 내용 써주는 거 넘나 좋아 - dc App
카뮈가 공감능력 하타취네 이리도 자살자들의 속내를 모르다니
뭔 논리적분석을 하고있어 뭐? 반성적고찰 니미
책오면 읽고나서 볼게 지우지마
호에에엥 / ㅋㅋ 잘 이해됏다니 ㄱㅅ.. 계속 써야징 ㅇㅇ / 글케 생각할수도 ㅋㅋㅋ 근데 내가 너무 축약적으로 써서 그런 뉘앙스가 더 강해진 것 같기도 함 세리에 / ㅇㅋㄷㅋ
연재글 오우야
다 읽어봤는데 좋은데? 근데 다만 작성자가 많이 힘들겠네.. 이 정도로 친절하면? . ..
여기에 댓글달려고 가입했어. 진짜 의미 깊은 책인데 다시 한번 들춰보게되네. 추천팡팡!
지우지마라 나도 책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