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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감상문이라 해야하나..
내가 원래 소설 읽고 내 좆대로 소설 해석하는 걸 좋아해서 해봄
<제목 차례>
1. 시선 다이어그램
2. 뫼비우스의 띠
3. 뫼비우스 띠로 시선 다이어그램 설명하기
4. 자유 상태의 함정
5. 거짓 이중성과 흉내
6. 시선 제거
7. 놀이가 아닌 현실, 부락의 역할
8. 결말에 대해
9. 주인공이 원했던 삶
1. 시선 다이어그램
소설의 등장인물은 2명으로 나눌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이다. 소설에 나오는 장소를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회와 모래구덩이, 그리고 여자가 헤맸던 폐허와 남자가 헤맸던 황무지로. 시선 다이어그램은 장소를 4개의 영역으로 분류 한다.
1.1. 두 가지 상태
시선 다이어그램은 장소를 2가지 상태로 나눈다. 정착상태와 유동상태가 그것이다, 이는 어느 한 군데에 정착하는 생활 방식을 가질 수 있느냐로 결정 된다. 남자는 과거 사회에 속해 있었다. 그 때의 남자는 ‘정착’상태에 속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남자가 갇힌 모래 구덩이 또한 ‘정착’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집이 있고 일이 있고 여자가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과거 떠돌이 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여자가 떠돌아 다녔던 폐허는 ‘유동’상태라 고 볼 수 있다. 또한 남자가 모래 구덩이를 탈출한 후 헤맸던 황무지 또한 ‘유동’상태라고 볼수 있다.
1.2. 상태의 두 가지 특성
각 상태는 다시 두 가지 특성으로 나뉜다. 자유특성 와 ‘구속특성이 그것이다. 남자는 사회에 있으면서 비교적 자유를 누렸다. 따라서 사회는 ‘자유-정착’상태라고 볼 수 있다. 남자는 모래 구덩이에 갇힌 채 외부와 단절되었다. 따라서 모래구덩이는 ‘구속-정착’상태에 분류할 수 있다. 여자가 떠돌아다녔던 폐허와 남자가 헤맸던 황무지 또한 ‘구속-유동’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 설명은 후에 설명할 뫼비우스의 띠 개념을 통해 보충하겠다.
1.3. 시선
시선 다이어그램에서 인물은 ‘시선’을 가진다. 남자는 ‘정착-자유’상태에서 사회를 잠시 벗어 나는 ‘유동-자유’를 꿈꿨다. 여자는 떠돌이 생활, 즉 ‘유동-구속’상태에서 걷지 않아도 될 자유, ‘정착-자유’를 갈망했다. 각 상태에서 다른 상태를 바라보기 때문에 ‘시선’을 가진다고 볼 수 있고 시선이란 갈증의 방향이다.
과거의 시선 다이어그램은 위와 같이 그릴 수 있다. 남자는 사회에 있었고 여자는 폐허에 있었다. 남자의 시선은 ‘자유-유동’을 향하고 여자는 ‘자유-정착’을 향했다.
남자가 여자가 있는 모래구덩이에 갇히고 나서, 시선 다이어그램은 위와 같이 그릴 수 있다. 남자는 원래의 사회를 갈망하지만 여자는 아무런 시선도 가지지 않는다. 남자는 이런 여자를 벌레 같다고 느낀다.
결말 부분에서의 다이어그램이다, 모래구덩이로 새끼줄이 내려오고 모래 구덩이는 자유 특성을 얻는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와 같이 더 이상 아무런 시선도 가지지 않는다.
1.4. 시선의 성질
시선 다이어그램을 보면 시선의 굵기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선이 동경 또는 갈망이 라는 두 가지 성질로 나뉘기 때문이다. 구속인 상태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갈망이 된다. 그러나 자유인 상태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동경에 그치게 된다.
남자는 자유-정착에서 자유-유동을 동경했다. 때문에 남자에게 자유-유동은 잠깐의 흉내로 그치는 놀이에 불과하다. 반면에 여자는 구속-유동에서 자유-유동을 갈망했다. 때문에 여자는 구속-유동인 상황에서도 순응하고 살아간다.
남자와 여자의 시선의 성질에 대한 차이는 다음 두 문장에서 광분과 동경으로 구분된다.
"십 몇년 전, 저 폐허의 시절에는 모두들 걷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찾아 광분했다."P87
"소풍을 동경하는 어린애라도 미아가 된 순간에는 엉엉 우는 법이다."P88
2. 뫼비우스의 띠
소설에서 '뫼비우스'라는 남자의 동료 교사가 등장한다. 뫼비우스는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남자가 거의 유일하게 신뢰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동료교사의 이름은 뫼비우스의 띠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 뫼비우스의 띠는 소설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뫼비우스 띠의 특징을 3가지로 정리해봤다.
2.1. 이중성
소설에서는 반대의 특성을 가지는 두 개가 실은 한 몸을 가지는 비유가 많이 나타난다. 그것은 뫼비우스 띠의 한쪽 면과 그 면의 배면을 떠오르게 한다.
2.2. 궤환
내가 아는 단어 중 가장 적절해 보이는 것으로 선택했다. 공대생 이라면 궤환이란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피드백이라고도 한다, 즉 출력 신호를 입력 측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여기선 원래 뜻에 한번 꼬았다는 의미를 추가해 띠를 ‘한번 꼰 후 시작점과 도착점을 연결했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겠다. 궤환된 뫼비우스의 띠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안쪽과 바깥쪽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영원히 이어진다. 뫼비우스 띠의 한쪽 면을 걷는 사람은 언젠가 끝이 있음을 예상하지만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2.3. 궤환-거짓 이중성
뫼비우스 띠의 궤환은 뫼비우스 띠의 한 면과 그 배면을 하나의 면으로 연결한다. 안쪽과 바깥쪽은 존재하지만 반댓면은 존재하지 않는, 궤환은 거짓 이중성을 만들어낸다. 한번 꼬아진 뫼비우스 띠의 면을 따라가다 보면 바깥면은 안쪽 면으로 휘어 들어가게 되고 우리는 배면에 도달 했다고 믿게 되지만, 그것은 휘어진 앞면일 뿐이다.
2.4. 그렇다면 소설에서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지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어떻습니까?......나는 인생에 기댈 언덕이 있다고 하는 교육 방법이, 도무지 미덥지가 않은 데-그러니까, 없는 것을 말입니다.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환상 교육이죠.......그래서 모래가 고체면서도 유체역학적인 성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 아주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p96
2.4.1. 모래
모래는 고체와 유체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는 '이중성'을 지닌다. 모래의 두 특성은 뫼비우스 띠의 안쪽 면과 바깥 면이다. 모래의 고체 특성은 사람을 가두고 천천히 압사 시킨다. 모래의 유체 특성은 한 없이 유동 하며 움직이지 않는 집들을 부수고 썩게 만든다.
2.4.2. 남자와 여자의 갈증 방향
"한없는 유동...그것은 걷지 않아도 되는 자유에 매달려 있는 네거필름 속의 뒤집힌 자화상이다."P88
남자와 여자는 각각 '정착'과 '유동'상태에서 '유동'과 '정착'상태를 바라보았다. 이 시선 다이어그램의 두 상태도 뫼비우스 띠의 '이중성'을 가진다. 뫼비우스의 두 면, '정착'상태는 모래의 고체특성과 '유동'상태는 모래의 유체특성에 대응된다.
2.4.3. 노동
시지프 신화를 떠올려보자. 시지프는 언덕 위로 바위를 굴리는 노동을 한다. 시지프는 무엇을 위해서 그런 노동을 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바위를 언덕 아래로 다시 굴러뜨리기 위해 서이다. 노동을 위한 노동, 시지프 신화에서 노동의 행위는 뫼비우스 띠의 '궤환'특성을 가진다. 소설에서 남자의 노동 또한 같다. 남자는 한 없이 밀려오는 모래를 퍼낸다.
3. 뫼비우스 띠로 시선 다이어그램 설명하기
시선 다이어그램의 두 상태인 유동/정착의 이중성에 대해 집중해 보겠다.
여기서 뫼비우스의 궤환 여부가 다이어그램의 자유/구속 특성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결정된 자유/구속 특성은 그곳에 속한 남자와 여자의 시선을 동경/갈망의 성질로 결정한다.
3.1. 상태의 특성-자유/구속
"편도표란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맥락 없는 생활을 뜻한다."P154
'구속'이란 오늘과 내일이 이어지지 않는, 뫼비우스 띠의 '궤환'성질이 제거된 것으로 볼수있다. 궤환의 부재는 거짓 이중성의 부재를 뜻한다. 뫼비우스 띠의 한 면, '유동'상태에서의 '구 속'이란 항상 유동만이 존재하는 끊어진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영원히 걷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소설에서 여자가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한없이 떠돌아다닌 것으로 표현된다.
뫼비우스의 다른 면, '정착'상태에서의 구속은 소설에서 모래구덩이로 표현된다. 모래구덩이 에서는 영원히 '정착'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유 특성은 뫼비우스 띠의 '궤환'성질이 유효하고, 거짓 이중성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정착과 유동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점을 생각하자. 이는 후에 다루겠다.
3.2. 시선의 성질-동경/갈망
"실제로 편도표를 손에 쥔 사람은 절대로 노래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은... 더는 걸을 수가 없다... 그들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왕복표 블루스다."P154
"편도표를 손에 쥐고서도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왕복표를 거머쥘 수 있는 사람에 한한 다. 그렇기에 돌아오는 표를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지 않도록, 주식을 사고 생명 보험에 들고...편도파들의 아비규환을 듣지 않기 위하여..."P154
자유 특성에서 반대 상태의 거짓 이중성을 가지는 '자유 상태'에서, 인간은 뫼비우스 띠의 바깥면으로 잠시 떠나는 왕복표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인간의 시선은 '동경'에 그친다. 그들에게 시선이 향하는 곳은 그저 유행가의 한 구절이 될 정도로 가벼운 것이다.
특성의 궤환 성질이 제거된 '구속상태'에서 인간은 편도표만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의 왕복표 블루스(자유)를 향한 시선은 노래로 만들어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 않다. 그것은 갈망이 된다.
4. 자유 상태의 함정
거짓 이중성은 시선 다이어그램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남자는 자유-정착에서 자유-유동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결핍을 뜻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상태라면, '시선'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삶에 기댈 언덕이 있다면 거기에 누워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가 자유로웠다고 믿는 사회에서 남자는 항상 욕구 불만인 상태였으며,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통해 자신을 찾으려 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정신적인 성병 환자였다.
그 해답은 앞선 개념들로 설명할 수 있다. 동일한 정착상태인 사회와 모래구덩이를 구별 짓는 자유/구속 특성, 자유라는 특성은 궤환으로 인한 이중성의 유무로 결정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이중성이란 궤환의 허상이기 때문이다.
시선 다이어그램에서의 '자유'개념은 그 자체로 불완전한 의미이다. 서로 상반된 개념인 정착과 유동이 한 몸으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제와 오늘이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와, 떠돌아다니는 상태를 뜻하는 유동이란 서로 결합될 수 없는 모순된 관계이다. 시선 다이어그램의 '자유'개념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구속과 유동은 결합될 수 있다. 이미 남자와 여자는 끊어진 띠 위에서 '구속-유동'을 경험했다.
실제로 시선 다이어그램으로 분류 가능한 4가지 영역 중 '자유-유동'영역에 대응할 수 있는 소설의 장소는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남자의 동경 속에서만 간접적으로 나온다. 고체와 유체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 모래 위에서 모래의 어떤 성질에 집중하더라도 기댈 언덕은 없다. 남자는 있을 수 없는 곳을 바라보아왔던 것이다. 연결된 뫼비우스 띠의 한 면에서 결코 그 배면으로 이동할 수 없듯이.
"고독은 환영을 좇기에 충족되지 않는 갈증인 것이다."P203
5. 거짓 이중성과 흉내
남자는 뫼비우스 띠의 안쪽 면에서 바깥 면으로 움직인다. 그곳은 거짓 이중성으로 인한 '자유-유동'의 모조품일 뿐이다. 그러나 남자는 다시 안쪽 면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남자의 시선은 동경에 그친다. 따라서 남자는 그저 '자유-유동'의 모조품을 향유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남자에게 사회의 떠남은 그저 잠깐 동안의 흉내나 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동시에 그것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남자를 구별 시키며 남자 스스로를 차별화 시켜준다. 흉내의 반대는 현실이다.
6. 시선 제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생각했던 것 만큼의 저항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변화의 원인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 배급이 중단될까 봐 두려워서인가, 아니면 여자에 대한 자책감 때문인 가, 아니면 노동 자체의 성격 때문일까?"
시선의 제거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소설의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의 시선을 제거하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남자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살아가는 여자 보고 벌레 같다고 생각했었다. 여자는 이미 시선이 제거된 상태였고 시선이란 다른 상태를 바라보는 갈증의 방향이라고 설명했었다. 이런 시선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몇 가지 방법이 소설에서 소개된다.
6.1. 처벌
부락 주민들은 남자의 반항에 대한 처벌로 물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고통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6.2. 구속의 경험
소설에서 구속-유동을 이미 경험한 여자는 구속-정착의 상황에서도 순응한 채 벌레처럼 살아간다.
6.3. 흉내 내기
5에서 설명한 것처럼 흉내는 시선을 완화 시켜준다. 그러나 그 때 뿐이다.
6.4. 목적의 수단화
“그거야 말로 목적의 수단화에 의한 진통 효과야"
방법이 포괄적인 만큼. 소설에서는 여러 방식으로 수행된다. 그중 두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6.4.1. 노동
"과연 노동에는, 목적지 없이도 여전히 도망쳐 가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인간의 기댈 언덕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P153
"노동을 극복하는 길은 노동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노동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노동을 극복하는.......그 자기 부정의 에너지야말로 진정한 노동의 가치입니다."P153
본인은 군대 짬찌 시절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작업을 하면서 고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걸 왜 하는지 이해하려 하지 마, 이해하면 지는 거야‘
목적이란 수단의 도착지 이다. 만약 끝없는 노동을 수단으로 인식하고 목적을 기대한다면 뫼비우스의 띠는 끊어지고 노동은 구속이 된다. 그러나 목적이라는 띠의 끝자락을 노동이라는 수단에 다시 잇는다면 노동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뫼비우스의 띠는 연결되며 노동은 기이한 자기부정의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6.4.2. 차별화된 자아의식
차별화된 자아의식이 시선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보단 자아의식의 차별화를 실현하는 방법에 집중했기 때문에 여기에 분류했다.
희귀 곤충을 채집하는 것과 자동급수장치를 완성하는 것, 그러한 목적은 남자가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다. 이는 또한 시선의 갈증을 완화 시키는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이것들은 목적의 수단화를 통한 시선의 제거법이다. 이것이 기이한 이유는 그저 마음먹기에 따른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은 선임이 말해준 그 조언을 처음엔 무시했다. 목적 없는 수단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짬이 좀 차고 나서 불현듯 그 조언의 참뜻을 이해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바보 병신이 되는 방법을 연마했다. 그 결과 위병소 마스터가 되어 군생활 내내 위병소 땜빵을 스며 일과를 쨌다. 동기들은 나를 보며 자신 같았으면 미쳐버렸을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로지 정신 단위의 작용에 의해서 현실의 지옥이 일상으로 변모하는 것, 이것이 수단의 목적화가 가지는 기이한 에너지라고 할 수 있겠다.
"신종 하나만 발견하면,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도 곤충도감에 기록되어 거의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 비록 곤충이란 형태를 빌려서이기는 하나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면..."P15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즉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쪽이 되고 싶다는, 자기를 꼭두각시와 구별하고 싶은 에고이즘에 지나지 않죠."P1
차별화된 자아의식이 시선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보단 자아의식의 차별화를 실현하는 방법에 집중했기 때문에 여기에 분류했다.
7. 흉내가 아닌 현실, 부락의 역할
"소풍을 동경하는 어린애라도 미아가 된 순간에는 엉엉 우는 법이다."P88
시선 다이어그램에서 남자가 겪게 되는 구속 상태는 모래구덩이와 황무지이다. 두 장소는 부락으로 묶을 수 있다. 부락은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7.1. 현실, 모래구덩이의 역할
사회가 넓은 정착상태라면 모래구덩이는 축소된 정착상태라고 볼 수 있다.
사회에서 남자의 정신적인 성병은 부락 사람들과의 언어의 불통에서 오는 공포로, 사회에서 남자의 떠남 흉내에 대한 동료들의 시기는 부락 사람들의 폭력으로, 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보상은 부락에선 물 한 모금으로, 은유적으로 과장되며 축소된다. 그리고 현실로써 다가온다. 이것은 더 이상 흉내나 놀이가 아니다. 때문에 흉내를 위해 쌓아온 남자의 모래에 대한 지식은 무용지물이 된다. 남자가 더 이상 왕복표를 구할 수 없게 됨을 알아차렸을 때, 남자는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태를 가볍게 파악한 것 같다." p92
7.2. 발악
남자는 처음에 발악한다. 그것은 어제의 사회와 지금의 모래 구덩이의 연결점이 끊어짐으로써 구속 상태에 직면했기 때문에 공황에 빠진 것이다.
7.3. 탈출, 황무지의 역할
황무지 또한 현실로 다가온 축소된 구속-유동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유-정착으로부터의 자유-유동은 채집통을 들고 다니는 왕복표가 보장된 흉내였지만 황무지에서 구속-유동은 무기로 사용할 가위를 차고 다니는 사활이 걸린 현실이다.
남자가 처음 맞이한 현실, 구속-유동상태는 모래바람이 불고 자신의 흔적은 30미터도 못 가 없어져 버리며 들개가 어슬렁거리는 곳이다. 남자를 천천히 빨아들이는 모래의 유체성질 속에서 남자는 부락주민들에게 구해 달라고 애원한다.
7.4. 혼란
다시 잡혀 들어온 후, 남자의 시선은 망가지고 남자는 혼란에 빠진다.
"분명 적과 우방으로 구별되어 있던 작전 지도가 뿌연 중간색으로, 수수께끼 그림처럼 정체를 알 수 없게 모호해지고 말았다."P212
"그렇지만 이 생활과 저 생활이 있는데, 저쪽이 조금 낫게 보이기도 하고......이대로 살아간 다면, 그래서 어쩔 거냐는 생각이 가장 견딜 수 없어...... 어떤 생활이든 해답이야 없을게 뻔하 지만...... 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쪽이 왠지 좋을 듯한 기분이 들거 든......"P199
혼란의 내용은 시선 다이어그램에서 같은 '정착'상태로 분류되는 부락과 사회를 가름할 수 있었건 유일한 가치인 '자유'의 덧없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다.
7.5. 자유의 덧없음
"여자를 데리고 간 후에도 새끼줄 사다리는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P226
남자는 결국 부락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왕복표인 새끼줄을 통해 '자유'를 부여 받는다. 하지만 이제 남자에게 그것은 별로 큰 사건이 아니다. 남자는 자신이 알던 '자유'의 불완전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유란 그저 낡아 빠진 새끼줄처럼 보잘것 없는 것이다.
7.6. 정리
부락의 황무지는 더 이상 흉내가 아닌 현실의 구속-유동의 장소를 남자에게 제공함으로써 6.2구속의 경험을 통해 남자의 시선을 망가뜨리는 역할을 했다. 또 부락의 모래구덩이는 사회와의 궤환끊음을 통해 '자유'특성을 제거한 장소를 남자에게 제공했다. 그리고 구속 상태에서 남자는 제거된 시선을 통해 자유상태의 함정을 깨닫게 되었다.
부락의 역할은 남자에게 축소된 현실을 제공함으로써 남자에게 '자유'의 불완전함을 계몽 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뭣도 모르고 편도표 블루스를 흥얼거리던 왕복파를 참교육한 것이다.
8. 결말에 대해
'자유'의 불완전함에 대해 깨달았지만, 그것이 6.2구속의 경험을 통해서였기 때문에 남자의 시선은 딱 초라한 까마귀 덫만큼 병신이 되었다. 까마귀 덫을 이용한 탈출은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며 남자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남은 시선을 제거하기 위한 자위용일 뿐이며 탈출이라는 목적은 시선의 제거라는 수단으로 전락하였으므로 그것은 탈출 시도가 아닌 6.4목적의 수단화의 일종이다. 그것은 나중에 자동 급수장치를 통한 6.4.2차별화된 자아의식으로 완성된다.
"그는 모래 속에서 물과 함께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을 발굴해 냈는지도 모른다."P224
8.1. 생각난거
초반에 남자는 여자 보고 벌레 같다고 했다. 책을 읽는 나도 여자가 존나 답답하고 짜증났었다. 하지만 사실 여자는 남자보다 앞서 2.2)구속의 경험을 통해 이미 '자유'의 한계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남자가 어린이였다면 여자는 산전수전 다 겪은 현자였다고 볼 수 있겠다. 남자도, 나도 벌레보다 한 수 아래였던 것이다.
9. 주인공이 원했던 삶
그럼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정착-유동이라는 뫼비우스 띠의 두 면을 감싸는 거짓 자유 껍질 바깥에 위치할 것이다. 시선은 그쪽을 향해야 하는 걸까?
내가 햄스터를 키우는데 집을 아무리 큰 걸 해주고 놀이기구를 놔둬도 계속 탈출하려 한다. 탈출구를 막으면 끊임없이 땅을 파고 벽을 핥고 반복 행동을 한다. 이것이 자기 부정의 에너지...? 인터넷에 물어보니 골든햄스터는 탈출본능이 있어서 방 한 칸을 줘도 탈출하려 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고실험으로 햄스터의 시선을 제거해보자.
9.1. 처벌
이것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일 뿐이다.
9.2. 자아의식 차별화
할 수 없다. 햄스터는 자동 급수 시스템을 만들 능력이 안 될 뿐더러 자아가 없기 때문에 자기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9.3. 흉내
쳇바퀴를 달아두었다. 햄스터는 쳇바퀴를 돌리며 넓은 벌판을 자유롭게 달리는 상상을 할 것 같다. 그러나 쳇바퀴 돌릴 때는 거기에 몰두하지만 안 돌릴 때는 다시 탈출시도를 한다. 흉내가 아닌 6.4.1노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햄스터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까..
9.4. 구속의 경험
그렇다면 케이지의 뚜껑을 열고 햄스터에게 편도표를 쥐어주면 어떻게 될까? 한번 따뜻한 집구석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의 단맛쓴맛좃맛 다 씹고 뜯고 맛보고 경험한다면 순한 양이 되어 다시 케이지로 되돌아올까? 아닐 것 같다. 햄스터는 아마 고양이한테 잡아먹힐 때까지 자유롭게 동네를 떠돌아다닐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햄스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바로 진정한 자유인 것이엇다
저번에 독후감 대회할때 참여했으면 꽤나 볼만했을것 같다
그런거 있는지몰랐음..
이건 독후감이라기 보다는 연구 아니냐;
연구라기엔 조잡하지.. 영화 함 봐봐야겠다
모래의 여자는 영화가 더 재밌음
안 본 책이어서 진짜 아쉽다
이이...이게 머노?
와 ..방금읽었는데 이해안가다가 이글보고 이해감....
독서의 깊이가 남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