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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소!
......이단이다! 당신의 말은 이단자의 혀야!
......나는 하나님의 사자이다!
자리를 피하자, 이곳은 너무 시끄럽구나.......
한줄요약
광신과 이성이 빛났던 자리에 남은 건 덧없는 이름뿐
고전들을 독서하던 중에 "고전으로 남을 책"이라고 하는 평가와, 대략적인 줄거리를 접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읽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평가에 동의한다. 어쩌면 고전으로 남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미약한 실마리를 이 책에서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지적 추리소설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정의하자면 "너무나도 중세 같아서 중세 같지 않은 중세소설"이라고 하겠다. 느낌적인 느낌 같은 거다. 작가가 자신이 평생 배워온 무언가를 온전히, 그 전부를 활용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최대의 결과물이 아닐까. 장미의 이름은 그야말로 "소설가란 만물박사다"라는 옛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다.
이곳의 배경은 같은 지구와, 우리가 익숙히 경험한 겨울을 제외하면 사실 전부 우리와 상관없다고 볼 수 있다. 중세를 배경으로,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지금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는 중세의 믿음과, 아직 밝혀지지 못한 과학적 원리들, 중세 수도사들의 엄격한 생활과 타락, 묵시록적 살인들의 연관성, 그 결말까지도.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다. 무엇보다도, 이미 허구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 대해 진지하게 왈가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짓이다. 이 소설이 설사 기록이라 할지라도(작가부터가 작가의 말부터 컨셉을 잡고 있다지만), 이 기록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련성을 맺지 못한다. 그저 같은 인류의 카테고리에 묶인 동떨어진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다. 천주교 신자라면 얘기가 좀 더 다르겠지만, 피차일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지나치게 허구적이고 허무하다면 그건 또 아니다. 물론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다. 이름이란 기호에 대해서 에코가 남긴 말을 찾아보면 그 실마리가 잡힐 듯 말 듯하다.
(전략) 그래서 비로소 대답하거니와,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것들은 그 이름을 뒤로 남긴다. 이름은, 언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하다가 그 존재하기를 그만둔 것까지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나는 이 대답과 더불어, 이 이름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 해석에 대한 결론을 독자의 숙제로 남기고자 한다. (후략)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열린 책들, 890p
분명 이 책은 덧없는 책이다. 모두가 대칭되고 대비되고, 타자가 타자의 거울이었으니 말이다. 덧없는 몽상과도 같은 우연과 이름 속에서도, 우리는 무언가의 진리의 파편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덧없음 속에서도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장미의 이름 속에서, 그 결말에 대해, 그 총체적 내용에 대해, 내놓을 수 있는 결론은 이것이다. 덧없는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이라도 우리에게 하나의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광신에 대한 에코의 경고는 상당히 날카롭다고 볼 수 있다. 그 광신이야말로 '덧없음'을 주목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말을 아끼겠지만, 사실 이 소설은 스포일러가 의미가 없다. 말했다시피, 주제에서 비춰볼 때 덧없기 때문이다. 다만 읽을 때의 그 긴장감과 흥미를 위하여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읽기를 원한다. 읽게 되면 내가 얼마나 무의미한 방지를 하려 했는지 알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다큐멘터리 같은 고증과 주제의식을 설파하느라 생긴 재미의 공백이 있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에코의 필력을 믿는 수밖에 없다. 간헐적 만연체의 에코의 문장은 추리소설에 그리 적법하다 부를 문체는 아니지만, 최소한 사태의 극적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그로 인한 흥미를 붙드는 데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만연체이기도 해서 묘사는 두말할 것도 없다.
또한 "현대인"이 쓰는 "중세"인 만큼 에코의 센스가 엿보이는 설명과 반가운 물건들은 물론이고, 에코가 탈이탈리아의 면모와 동시에 이탈리아인스러운 면모도 같이 보여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영국인을 그렇게 완벽하게 고증해놓은 것도 신기했을 뿐더러, 이탈리아 특유의 선정성과 잔혹함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것도 놀라웠다.
지성의 작가 에코는, 어쩌면 작가의 이성이 있다면 에코가 그 이성을 최대치로 활용했다 말할 수 있다. 내게 있어서 에코는 가장 치밀하고 똑똑한 작가로 남을 것이다. 그건 정말 단순하게도 중세를 그토록 완벽하게 구성해놓았음이 이유지만, 그 바탕엔 치밀하고도 치밀한 계산이 전부 바탕에 깔려있었다. 그걸 보고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나는 신들린 필력도 얻고 싶지만, 에코가 선보인 작가의 지성을 견주라 한다면 지성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내겐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고, 그렇기에 난 에코의 책을 앞으로 더 읽을 것이다. 물론 더 많은 고전들을 함께 읽으며, 에코의 지성을 더욱 체감하게 될 그 훗날에 말이다. 그때가 되면 장미의 이름도 더 이상 덧없지 않을 것이다.
ㄱㅅㄱㅅ
재독한 적도 없고 작품 해석도 따로 찾아본 적이 없어서 뭔가 그럴싸한 해석은 못 하지만, 개인적으로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유럽이라는 바로 그 시대를 그려내기 위해 쓰여진 소설이라고 느꼈음. 이야기도 주제의식도 모두 그 시대의 것, 그 시대의 이야기임.
우리랑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만.
니덕에 도움이 되었다 푸코의 진자도 읽어봤으면 글써주라
언젠가ㅋㅋ 지금은 돈 없어서 못 사고...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였나? 비평가들에게 인물들의 발언이 지나치게 '현대적'이라고 지적받은 부분들을 에코가 다시 찾아보니 전부 13~14세기 문헌에서 가감없이 그대로 인용한 것들이었다고 함. 중세 암흑시대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소설인데 정작 중세 시리즈 서문에서 에코는 중세를 근대와의 단절이 아닌 연속, 어둠이 아닌 빛의 시대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도 소설의 주제 중 하나인 기호의 해석과 관련해서 보면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느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