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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힌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거의 한달음에 완독했다.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독특한 매력 때문에 읽을수록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결코 밝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초반부터 후반까지 등장인물들이 죽어나간다. 죽음의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다.
'또 죽어?'란 탄식은 후반부에 가서 '또 죽여?'라는 분노로 변할 지경이었다.
매력적이고 그만큼 아까운 캐릭터들이 자꾸만 죽어나간다.
사실 산 놈이든 죽는 놈이든 죄다 비정상이다.
마치 내일이 없는 인간들처럼 무의미하게 허덕이는 인간들이다.
이것이 절박함인지 체념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박경리가 말했던 일본의 '가냘픈 센티멘털리즘'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나오코'와 요양원에서 벌어지는 대목은 꿈 속을 헤매는 듯했고
'레이코'씨가 어린 소녀에게 '당하는'(?!) 대목은 흑마술에 당하는 느낌이었다.
기막힌 필력이었다.
그나마 '미도리'가 등장하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다.
미도리 역시 아픔이 많은 인물이지만 거의 유일하게 죽음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봄날의 곰'처럼 산뜻하고 생명력 넘치는 반가운 인물이었다.
마루야마 겐지가 그랬던가, 하루키의 소설도 그걸 읽는 놈들도 죄다 남성미 없는 나약한 새끼들이라고.
그 말이 타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노르웨이의 숲>은 공허하고 궁상맞고 맥빠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놈이라 그런지 <노르웨이의 숲>이 좋다.
나는 아예 이 시대, 이 공간에 가서 이 인물들과 몇 달 살고 싶다.
와타나베와 맥주를 마시며 '개츠비'를 이야기하고 싶다.
미도리네 놀러가서 정갈한 관서식 정식을 얻어먹고 싶다.
나가사와와 도시의 밤을 즐기고 싶다.
나오코네 요양원도 찾아가고 싶다.
그리고 우울증 걸리기 전에 도망쳐야겠지,
미쳐버리기 전에, 죽기 전에 이들로부터 도망쳐야겠지.
그렇게 도망쳐서는 오랫동안 이들을, 이 시대를 그리워하게 되겠지.
소설의 분위기에 감염돼서인지 괴상한 감상이 만들어졌다.
책을 다 읽은 지 오래인데도 가슴 한복판이 뻥 뚫린 기분이다.
정말 외롭다 외로워.
나가사와 선배와 와타나베가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맺어졌듯,
언젠가는 나도 <노르웨이의 숲>을 세 번씩이나 읽은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겠지.
독붕이들은 모두 너의 친구야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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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 프렌즈 브로
나오코'와 요양원에서 벌어지는 대목은 꿈 속을 헤매는 듯했고 '레이코'씨가 어린 소녀에게 '당하는'(?!) 대목은 흑마술에 당하는 느낌이었다. 기막힌 필력이었다. 동감 !
내가 쓴 놀숲 리뷰 읽어봐봐 너랑 쓴 감상이랑 되게 비슷하네
오우 진심 잘 읽었다. 내가 빠뜨린 부분이 참 많다는 걸 느꼈어. 무엇보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주제(?)를 빼먹었네. 댓글 달아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