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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는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장편 소설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그의 대표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폭군 엄석대가 '일그러진 영웅'이라면 장편 소설 중 최고봉인 『황제를 위하여』의 주인공 황제는 '만들어진 영웅'이라고 할 만하다. 황제는 아버지 정 처사의 헛된 욕망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왕도의 길을 걷도록 강요당했고, 그 때문에 황제 자신도 조선의 왕이 될 운명이라는 것을 믿었고 이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믿음을 본인의 말년을 제외한 모든 기간의 생애에서 붙잡고 있었다. 정 처사도 흰돌머리 내에서 힘깨나 쓰는 지역 유지였고, 황제 본인도 충분히 영특한 축에 드는 인재였기 때문에 너무 높은 이상을 바라보고 갈구하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자신의 공동체를 잘 운영할 수 있었으리라는 내 생각에 대해 현실성이 모자라다는 등의 딴죽을 걸기 힘들 것이다.
황제는 현실적인 한계로 왕의 자리에는 미치지 못했더라도, 분명 흰돌머리라는 조그만 공동체에 국한되기에는 과분한 능력자였다. 그가 만주에 가 있을 무렵 아내가 황제의 열렬한 추종자 우발산과 정을 통해 생긴 아이를 자신의 축지법 덕분에 생긴 아이라고 말해 아내를 옹호하는 등 위정자로서의 덕이 범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고, 약자의 아픔에 분노하고 일제 강점기와 6.25 등 여러 폭력적인 사건에 신음하는 국토와 백성들을 가슴 깊이 걱정했다. 다만, 황제는 백성들과 국토를 열렬히 원했지만, 20세기의 대한민국은 황제처럼 전통적 가치가 충만한 위정자보다는 격동하던 한반도를 최대한 안정시킬 수 있는 초인이 필요했다. 그는 봉건주의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군주의 재목을 지녔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꼴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끝내 깨닫지 못했으니 그는 명백하게 20세기 대한민국의 국운을 맡길 만한 인재가 아니었다.
황제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자기 자신이 왕의 재목이라는 믿음을 떨쳐내지 못한다. 황제에 호의적인 사람이든, 부정적인 사람이든, 황제를 찬양하고 깎아내리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황제를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본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그가 믿음을 저버리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황제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다. 이는 황제를 같은 눈높이에서 이해하고자 한 인물은 한 명도, 단 한 번도 없었던 것과 다름없다. 그를 긍정하는 사람은 당연히 ‘황제’로 우러러봤으며, 그를 부정하는 사람은 황제를 미치광이, 광인으로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심지어는 작가인 이문열마저도 그의 이름을 단 한군데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그조차도 황제를 균등한 높이의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누구에게도 ‘한 명의 동등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한 황제가 스스로가 왕의 재목임을 부정하는 것은, 곧 그의 충복인 우발산, 마숙아, 신기죽 등은 물론이고, 흰돌머리라는 고장 전체를 넘어 그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고와 충정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으며, 그의 부담감을 나눠서 들어주고 그의 처지를 십분 이해해 줄 사람은 그 중에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가 왕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열망은 그만의 것이 아닌지 오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는 자신의 말년에 땅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버릴지언정 우주를 바라볼 것을 천명하는 것에 그쳐 끝내 자신이 왕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은 버리지 못했다. 그에게 짊어진 부담감과 책임감이 막중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가 작품의 마지막에 “진정한 나라는 드높은 정신 속에 있고, 드높은 정신은 육신에 구애되지 않는 법”이라고 언급한 것은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열망이 아닌, 자신의 모든 추종자들의 열망을 내려놓기를 포기하지 않은 책임감으로 비춰진다. 이는 내가 황제를 여러 고난과 수모를 겪고 노쇠했음에도 끝까지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정신 도피를 시도한 미치광이로 바라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이 거룩한 발상이 한낱 늙은이의 정신 도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가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사람에게 얽매이는 것이 적으면 적어질수록, 잊으면 잊을수록 행복해진다고 주장한 것 역시 자신의 오랜 꿈이 기존의 권력층이 정한 사회적 규율에 훼방을 받은 것에 대한 분풀이라고 보는 관점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사람은 본래가 선하니 서로 돕고 의지한다면 나라와 법이라는 규율과 제약이 필요 없지 않을까’라는 그의 발상은 어떻게 폄하할 것인가? 자신의 꿈이 좌절된 것을 주변의 규율 때문이라고 바라보는 사람이, 사람들의 본성을 선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또한, 이러한 지배하지 않는 통치를 주장한 것은 도가적 관념인 무위(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행위가 없음)의 극치를 주장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의 일생은 ‘지배’라는 관념이 얼마나 인위적인지를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개인적인 사건과 역사적 사건을 고루 겪은 삶이었기 때문에, 이를 타파하고자 스스로 무위의 극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 미치광이의 미련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황제가 그의 말년에 지배하지 않는 통치를 바라봤다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건은 충신 중 한명인 변약유가 아들을 따라갈 것을 권한 일이다. 변약유의 아들이 변약유를 모시고 가기 위해 찾아왔을 때, 동고동락한 동료들은 물론이고 변약유 본인도 끝까지 황제를 따르고 싶어했지만, 황제는 변약유에게 아들을 따라갈 것을 간곡히 권해 그를 귀향시킨다. 그뿐만이 아니라, 변약유를 보낸 후 다른 이들도 떠나고자 하면 언제든지 떠날 것을 진심으로 권했으니, 이는 황제가 말년의 말년에는 지배라는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관계를 내려놓고 무위의 극에 다다랐다는 충분한 증거가 될 것이다.
황제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고 슬퍼하지 않은 채로 죽었지만, 그는 어떻게 보면 『황제를 위하여』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작중 최대의 슬픔을 짊어진 자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 정 처사의 헛된 욕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였고, 이 처지를 십분 이해해 줄 사람도, 굳건한 욕망을 진심 어린 충고로 깨뜨려줄 정도로 사람 ‘황제’를 위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황제를 위하여』의 막바지에서 황제가 체득한 깨달음을 내 능력 이상으로 두둔해 그의 일생 전반이 부정적으로 비춰지더라도 그의 마지막만큼은 폄하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작품 너머에 있는 나라도, 황제를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보고 존중해주는 유일한 사람의 역할을 기꺼이 떠맡아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황제를 위하여 꿀잼이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라는 문장 그 자체.
정말 코리안 돈키호테가 따로 없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