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관심있었을 독붕이들 위해 서평을 남겨본다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2fa11d02831d5ca5516da218d33b13f2460bb125b37bc12ad7ce9e561c9eb23b85d1aa4be40981c96c9f30a0fd7a96120dac5691c177f9e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2fa11d02831d5ca5516da218d33b13f2460bb125b37bc12ad7ce9e561c9eb23b85d1aa4be40981c96c9f30a5b8efc672383c66c1c17f253

썰렁하다, 오후 저녁 겨울 햇빛이 어둡게 스며든 거실에 한기가 으스스하다.

작품전체의 플롯이 차갑고 쓸쓸하다 속내를 알수 없는 사람들 투성이고, 예민한 신경질의 테두리를 맞닿아가는 대화가 오간다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이 도는 숨죽이고 보게 되는 서늘한 대화들이 불안했다


창백하다는 작품의 제목, pale view라는 원제가 핵심이다

인간미, 우정, 온기, 위로보다는, 경계, 의심, 위선, 가식이 위주가 되는 관계들이 전후 일본의 폐허속에 가득하다.

원자폭탄에 의해 감정까지 파괴된 듯한 전후 사람들의 냉랭한 이야기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원자폭탄으로 끝난 전쟁의 참상에 고통받는 서민에 시선이 집중된 작품을 여럿썼다

결정권자들의 선택에 의해 고통에 내몰려 놓이게 된 "그냥 사람들"의 얼어버린 마음들이 안타깝다.

국가 발전과 세계 평화를 위해 죽이고 파괴하고 터뜨리는 전쟁의 모순처럼,

등장인물들의 모순된 태도와 감정으로 혼란스럽다.


속내를 알수없는 사치코와 망상에 정신이 온전치 않은 마리코를 의심하며 신뢰하는 젊은 에리코

딸의 자살사망에도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고 무표정하고 무감각하다 가끔 쓸쓸해할 뿐인 중년의 에리코

아들 지로와 그 친구 시게오의 민망한 모욕에도 담담한 웃음으로 농담을 던지는 오가타 상

아이가 사라지고 거처가 불확실한 걱정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을 아무일도 아니니 호들갑떨필요 없다고 활짝 웃어버리는 사치코

미워하는 사람을 정중하고 반갑게 맞이하는 시게오

민감한 사생활을 말로는 언급 안하지만 글로는 친절히 알려주는 니코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스스럼없이 마음을 보여주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어색하게 낯설게 가족을 대하고 친구를 대한다.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갑자기 바뀌어버린 처지와 일상에 넋이 나가버려 마음이 공허해진 사람들이 들려주는 그들의 듬성듬성한 이야기다. 전쟁으로 무너지고 부숴져 남은 구멍에 숭덩숭덩 이야기가 빠지고 사라져 어떻게 흘러흘러 여기까지 온건지 시간순서로 인과관계를 알기 어려운 시대의 이야기다.


에리코는 첫남편 지로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 아이 게이코를 자살로 잃었다. 재혼한 영국인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둘째딸 니코는 언니인 게이코와는 얼굴이 기억안날정도로 왕래가 없다 사망소식을 듣고 장례식은 건너뛰고 그 뒤에 엄마집에 방문한다. 자살한 딸의 마지막 죽음을 되새기며 게이코를 임신했을 시절 사치코와 마리코라는 모녀를 추억한다. 그리고 남편 지로와 시아버지 오가타상의 갈등과 남편의 친구 시게오와 오가타상의 갈등을 떠올린다. 회사일로 바쁜 지로는, 아버지가 부탁한 시게오에 대한 편지와 체스분석을 무시한다. 시게오는 오가타상을 전범으로 강하게 비판하고 오가타상은 자신이 일자리까지 알아봐줬던 아들의 친구 시게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찾아가 항의해보지만 더 큰 비난에 놓인다. 황량한 공터에 우뚝솟은 아파트와 그 공터의 먼 끝에 초라하고 어두운 오두막집, 그리고 강넘어 창백한 언덕을 주 공간으로 하여 기억은 구성된다.


미국인과 재혼하여 미국생활을 할거라는 사치코는, 그로인해 딸 마리코는 힘든 삶을 살수도 있겠지만, 모성애를 가져본적이 없다고 얘기하는 장면에서 영국인과 재혼하여 영국으로 이민온 에리코와 그로인해 힘든삶을 살다 자살해버린 딸 게이코의 관계가 겹쳐보인다. 그 시절, 국숫집사장님인 후지와라 부인은 임신한 에리코에게 "에리코는 좋은 엄마가 될거예요"라는 말로 에리코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이에 에리코도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 다짐하며 의심치 않는다. 이는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인간성, 모성을 강조하는 듯 하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원자폭탄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이들의 삶에 구멍이 나고 결핍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지로와 결혼하고 이혼한 후 영국인 기자와 영국까지 이민와서 살게된 에리코가 딸 게이코와의 불화로 인연을 끊고, 그로인해 혼자 살던 딸이 자살로 삶을 끝내게 만드는 모질고 비극적인 엄마는 안되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함축되어 있는 듯 하다.


모성애를 잃은 엄마들 에리코와 사치코, 그로인해 따뜻하고 안정적인 삶을 잃은 딸들 게이코와 마리코, 어른에 대한 존경심을 잃은 청년들 지로와 시게오, 그로인해 어른으로서의 위엄과 품격을 빼앗긴 노인들 오가타 상과 후지와라 부인.


전쟁은 이런겁니다, 제발 너네들 마음대로 전쟁을 결정하고, 전쟁터로 순한 사람들을 내몰지 마세요, 너네들 정말 천벌받을 거예요, 라고 작가는 조용히 끊임없이 저주한다

곧 다시 읽어볼 만한 책이다.